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람을 대하는 태도 (약 04:11-12)

첨부 1


유대사람이 자기네 민족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지 적한 유대 사람들의 첫번째 특징은 불평을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 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얼마나 모세 를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았는지 모릅니다. 두번째 특징은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유대 사람과 한국 사람이 참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불평 불만이 많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성향이 다분히 있습니다.

혹시 당신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꺼리는 요인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자리를 피하려 하고,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면, 당신의 삶은 사랑이 메마른 삭막한 생활일 것입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다 싫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 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대부분 우리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딱딱하고 친절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당신에게 기분 좋 게 대할 리 없습니다. 얼굴 표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 표 정을 보면 밝고 환하고 웃음이 넘치는 평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언제나 기운이 없어 보는 사람까지 맥빠지게 만듭니다. 즐겨 사용하는 말투도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어느 지방 사투리를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 담긴 말을 하느냐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만 하여 듣는 이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 람은 친구가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승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가 어렵습니다. 상냥하고 덕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누가 비 판만 하는 사람을 상대하려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을 세워 주고 격려해 주고 돌보아 주는 친구를 원합니다. 그 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

신앙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은 복된 언어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 입술에서 우선 비난하는 말을 제거하라고 합니다.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11절).그리스도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름다운 언 어 사용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험악한 말을 하고 불평하고 남을 비방했 지만, 예수 믿고 난 후부터 변화된 말을 사용합니다. 비방하지 말라는 말은 헐뜯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주 좋은 표현이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인데, 헐뜯다는 단어는 헐다와 뜯다 두 동사의 합성어 같습니다. 타동사 헐다의 뜻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 면 집이나 쌓은 물건을 무너뜨리다는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최선의 노 력으로 완성해 놓은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뜻으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다는 풀이가 있습니다. 영어에서 남을 험담하는 뜻을 가진 단어는 backbite입니다. 말 그대로 뒤에서(back) 물어 뜯 는(bite) 것이 비방입니다. 공들여 쌓은 인간 관계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것이 뒤에서 남을 물어 뜯는, 헐뜯는 일입니다.

지혜롭게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뒤 에서 제 3자와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행위는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 당신이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날을 맞게 될 것입니 다.당신이 몰래 한 말이라도 반드시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 다.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뒤에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 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11절). 그리스도인은 형제를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가 무슨 판사나 되는 양, 옳다, 그르다, 잘했다, 잘못했다, 좋다, 나쁘다 따위의 판단을 하는 것은 교만한 증거입니다. 여자들은 주로 다른 사람의 옷 차림이나 외 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합니다. 상대방의 취향을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람마다 개성이 다 르고 제멋에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심미적인 것들은 전부 주관적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름답다, 추하다, 좋다, 나쁘다, 이런 것들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생각이 이러이러하다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절대적이고 단정적 인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곧 율법을 배상하 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율법이 할 일이지 불완전한 인간이 개인적으 로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죄인인 인간이 할 일이 아닙니 다.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12절). 이 세상에서 자기 자녀만큼 귀하고 예쁜 아이들이 없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집 아이들을 지나치게 애지중지하 면서 남의 집 아이들은 하찮게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신의 아내 나 자녀를 남 앞에서 자랑하면 흔히 팔불출이라고 놀립니다만, 저는 그렇 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내를 최고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멋있습니다. 내가 자녀와 아내를 자랑하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심미적인 것은 객관적 기준이 없습 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판자, 심판 자가 될 수 없습니다.구체적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성도들은 영원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영원한 형제입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비방하지 않습니다. 형제간에 의가 좋은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에 가족 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합니다. 부모와 형제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한 가정을 보면 참 기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부터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남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도 교인들 사이에 비난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얼마나 안 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면 같이 울어 주고 싶고 , 안아 주고 싶고,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교인이 실수를 하면 재판관이나 된 것처럼 그를 비난하 고 판단합니다. 제가 실수하는 사람을 자꾸 보호하니까 목사님은 사랑은 많지만 정의가 없습니다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하는 이 유가 있습니다. 제가 비판하지 않아도 우리 교인들이 저보다 앞장서서 그 사람을 정죄하고 심하게 몰매를 치기 때문에, 제가 반대편에 서서 보호해 주어야 균형이 맞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몰매를 맞은 사람에게 가 보면 이 미 그 사람은 너무 맞아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권고하기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11절 )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인들과 매주일 마주칩니다. 저녁 예배 때도 수요 일 예배 시간에도 심지어 새벽 기도회 때도 만납니다. 자신이 비난한 형제 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비난하지 않 아야 합니다. 내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전까지는 형제 사이가 좋았는데, 결혼하 여 새 사람이 들어오면 형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참 불행한 일 입니다. 당신이 결혼하여 다른 가정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 가정에 사랑 과 화목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로 가정의 분란도 말 때 문에, 가족의 누군가를 비난하고 비방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형제지간에 서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 니다.

둘째로,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행위이 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곧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 위와 같습니다.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는 행위는 대단히 큰 죄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다 율법을 지킬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 다(11절)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사람들이지, 이 웃을 재판하는 자가 아닙니다. 재판자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그를 판단하기 이전에 나에게 잘못이 없는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죄인이고 실수 많은 부족한 존재인데 어 찌 남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남을 심판하고 남을 재판할 자 격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아 함부로 형제를 비방하 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넷째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는(12절) 분이 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태도나 얼굴 표정이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 마디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방할 겨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남의 잘못이 눈에 보이면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늘 점검하십시오.

다섯째로, 우리가 남을 심판하면, 우리 자신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1,2).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처럼, 당신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당신이 칭찬 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격려하면 당신이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당 신이 불평만 한다면 다른 사람도 당신에 대해 불평할 것이고, 남을 헐뜯는 다면, 당신도 헐뜯길 것입니다.

당신이 형제를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그 누군가를 사용하셔서라도 그 저주를 갚으십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가는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왕을 저주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부하 장수가 왕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당장 죽이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 이라며 부하를 말렸습니다(삼하 16:5-14 참조). 다윗을 저주한 시 므이는 결국 죽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 그를 단죄했습니 다(왕상 2:36-46 참조).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생활화는 언어 사용에서 드러납니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당신은 형제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복된 언 어를 사용하여 이 메마른 세상을 윤기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바랍니 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