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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병이어의 기적을 위하여 (요 06:1-15)

첨부 1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의 성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가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몇 % 사람이 몇 % 협조해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100%, 나 자신이 100%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100%이고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잘못입니다. 신앙인의 일은 하나님 100%, 내 자신이 100% 합쳐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일의 신비입니다.
바울의 선교 역사를 보면 많은 성도들이 각처에서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지고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해집니다. 여기에 성령의 역사 50% 바울의 역사가 50%가 아닙니다. 온전한 성령의 역사요 바울 사도 역시 자신을 온전히 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실 때에 언제나 100%의 사랑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역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충성의 크기는 서로 달라도 퍼센테이지(Percentage)는 동일해야 합니다. 양으로 보면 30%와 70%가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일 때는 100%와 100%가 합친 것입니다.
신앙에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 내가 이 정도 할테니 하나님도 이 정도는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 100% 인간의 응답 100%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100% 은혜입니다. 그러면 행위는 필요없느냐 아닙니다. 삶도 100%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롬 12:1). 제사에 짐승은 온전히 드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나의 형편을 예수님은 잘 아십니다.
오늘 본문 속에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2절에 보니까 큰 무리가 따라 왔는데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남이 병을 고치든 말든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보고 내 병도 고쳐 주시겠구나 생각해서 따라온 병자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병자들은 가난합니다.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병인들, 굶주린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배부르기에 병든 사람,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극심한 기근이 월남에 있었습니다. 미국 타임지 기자가 월남에 들어가 한 처녀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나에게 평생 먹을 양식만 보장해 준다면 나는 그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먹는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몸이라도 팔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난이라는 것은 순결도 자존심도 팽개칠 만큼 절대적인 상황입니다. 본문 6:15을 보면 무리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는 예수님을 왕을 삼고자 했습니다. 굶주림의 문제만 완전히 해결해 준다면 “당신은 왕하고 나는 평생 머슴하겠습니다”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가난합니다. 가진 게 없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성전 건축을 제목으로 걸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무모한 것 같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성전건축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성구사전을 찾아보니 성경에 순수하게 ‘아시고’라는 단어는 28번, ‘보시고’라는 단어는 68번, ‘들으시고’라는 단어는 58번이나 나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세밀하게 아시고 보시고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성전건축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의 형편을 하나님은 모두 아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 3:7-8)”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기적을 남발하지 않으십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꼭 필요한 장소에서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꼭 필요한 시기에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남발하지 않으셨지만 필요할 때는 꼭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본문의 상황은 꼭 기적이 필요한 장소에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이 기적이 필요한 때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시기에 맞춰 기적을 베풀어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이 기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기적이 임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그리고 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힘을 내야 합니다.

2.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십니다.
5절 말씀에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재빨리 모인 회중의 수를 계산하여 이들을 먹이기에는 조금씩만 나누어 줄지라도 200데리나온의 돈으로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설사 돈이 있다 하여도 여기는 빈들이요 지금은 저녁이라고 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안드레는 작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 오병이어를 드리게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예수님이 먼저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빌립에게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그의 믿음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시험에 빌립은 탈락했고 안드레는 합격했습니다.
모인 무리가 얼마이고 그들을 먹이기에 얼마의 돈이 든다는 것은 예수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잘 압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전건축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에게 돈이 없고 사람이 없는 것은 주님이 먼저 다 아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오병이어가 없어도 능히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무엇이 있어야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찾으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어느날 두 소경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물으셨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말할 때에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라” 말씀하시고 저희 눈을 만져 고쳐 주셨습니다(마 9:27-31).
우리 각자는 빌립이 되지 말고 안드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릴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고 믿음만 있으면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인간적인 눈으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시고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께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오병이어를 드렸습니다. 당시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무리들이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마 9:36).
어린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에게 갔다 오겠다고 했을 때 아마 그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 아무도 주지 말고 너만 살짝 먹으라고 일러서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이 아이가 그걸 드리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드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굶을 것을 각오하고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부끄럽고 쑥스러워 자기가 직접 드리지도 못하고 안드레에게 말해 겨우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오병이어만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것입니다. 과부가 하나님 성전을 찾아 두 렙돈을 드렸을 때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기 소유의 전부를 드렸고 거기 모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이 드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끼니를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기근이 끝날 때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을 예상하고 드린 것은 아닙니다.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드린 것입니다.
성전건축을 위하여 우리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여 하나님 전을 위하여 드려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과 가정들을 축복해 주시겠지만 그것이 없다 해도 드려야 합니다. 어렵게 힘들게 가난하게 살 것을 각오하고 드려야 합니다.
제가 설교집을 내겠다고 했더니 그 소문이 퍼져서 여기저기서 염려하는 전화가 걸려 옵니다. 요즘 많고 많은 것이 설교집인데 잘 팔리겠느냐는 것입니다. 공연히 가난한 교회에서 빚만 더 걸머질 수 있으니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저도 10여권의 설교집을 가지고 있지만 거의 떠들어 보지 않습니다.
저같이 이름없는 개척교회 목사가 출간한 설교집을 누가 사주겠느냐는 따뜻한 충고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목사님들에게 말씀합니다.
“목사님, 교회건축을 할 때 목사가 앞장을 서야 하는데 저는 하나님 앞에 드릴 게 없어요. 어디 가서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드리려 해도 그만한 체력이 없고, 어디 가서 사정을 해서 갖다 바칠려고 해도 저는 그럴만한 분들을 알지도 못합니다. 매 주일 강단에서 예수님이 좋아서 외쳤던 말씀, 그 모든 말씀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그것이라도 묶어 돈이 된다면 그것이라도 바치고 싶어요”
이 설교집이 제게는 오병이어입니다. 부끄러워 흉이 잡힐 것 같지만 그래도 예수님이 좋아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내놓는 오병이어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 후에 제가 하나님께 드릴 만한 그 무엇이 생긴다면 제 생명과 함께 드리고픈 마음 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야 합니다. 쓰고 남는 것으로 아니라 고생을 각오하고 뼈를 깎는 희생으로 드려야 합니다. 마지막 끼니를 드리고, 두 렙돈을 드리고, 오병이어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은 비로소 산 믿음이 됩니다.

4.예수님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50명씩, 100명씩, 모여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떼어 나눠주도록 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먹고 남았습니다. 주님의 역사는 부족함이 없는 역사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었을 때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고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었습니다. 모두에게 흡족하게 채워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나눠주니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남은 것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거둔 것이 열 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남은 것을 버리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은혜를 경솔히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부스러기 은혜라도 귀한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와 같은 부정한 여인으로 대우받았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나이다 해서 그 은혜라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스러기라도 중요합니다. 부스러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은혜도 감사치 않고 보존할 줄을 모릅니다. 매일의 삶에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하십시오. 그것도 쌓이면 큰 것이 됩니다. 우리도 이와같이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광주리에 담아야 합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32 이하를 보면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가 남은 사건이 있습니다. 이 때도 주님은 남는 것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떡과 물고기가 처음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왜 처음보다 적게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은혜를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모인 무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은혜를 버리지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여 은혜의 그릇을 넓히고 받은 은혜, 주실 은혜의 소중함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기적을 바라며 기도하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가진 최선을 것을 먼저 바치라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기적을 베풀테니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 기적은 저와 여러분 앞에서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합니다. 최고의 행복이 혼자 만들어지지 않듯이, 최고의 기적은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100% 축복하시고 우리는 100% 헌신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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