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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라지 비유 (마 13:24-30)

첨부 1


구약의 끝인 말라기와 신약의 마태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 간의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기간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400년의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400년 동안의 일을 모른다고 해서 우리 구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메시야이시고 그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을 믿으면, 그의 죽음이 내 죄 때문인 것을 믿으면 우리는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 이사야,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는데 신구약 중간 400년 동안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선지자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못했을 때의 기간을 성경은 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을 선지자가 받아서 백성에게 다시 비춰 주었는데 그 등불이 없어졌으니 캄캄한 밤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400년을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에 암흑 시대라고 합니다.

1.바리새인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팔레스틴의 인구가 약 2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순수한 유대인을 50만 명에서 60만 명 정도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바리새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즉 경건한 사람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 선별된 사람들, 시리아에 대항해서 유대를 헬레니즘화 하려고 했던 것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5천명에서 6천명 정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절대 유일(唯一)한 신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모든 잡신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무척 좋아 보였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삶에서도 도덕적으로 살면 죽은 후에 하나님이 상을 줄 것이고, 만일 비도덕적으로 살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 이 세상에는 분명히 천사도 존재하고 마귀도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모세 오경과 시편, 잠언,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뜻을 계시한 성경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존중하면서 선지자 입에서 나오는 말까지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나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애쓰다 보니 형식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킬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데 모두 지키려고 하다 보니 형식적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몇 부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①조금 기다려라 하는 바리새인입니다. 즉 선행할 것이 너무 많아서 이것도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으니 항상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서 붙은 별명이 웨이트 어 리틀(Wait a litle.)입니다.
②피흘리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보면 음욕이 생긴다고 해서 눈을 가리고 다녔습니다. 여자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다니다가 넘어질 것 같으면 떠서 보고 또 다시 감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양의 피를 흘리는 것처럼 우리도 피를 흘려야 죄를 용서받는다고 생각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눈을 감고 다니니 벽에 부딪히게 되고 벽에 부딪혀 피가 나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③얼마나 어깨에 붙은 것이 많은가에 따라서 천국의 아랫목에 가느냐, 윗목에 가느냐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구멍을 뚫어서 돈을 손으로 붙들고 있다가 매일 하나씩 떨어뜨리고는 돈을 주은 사람이 “여기 돈 떨어졌습니다.” 하면 “가지시오.”라고 합니다. 돈을 주은 사람이 “감사합니다.”라고 하기만 하면 바리새인들은 주머니에서 별을 하나 꺼내서 어깨에 붙였습니다. 이렇게 어깨에 힘주고 다닌 쇼울더(Shoulder)라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일부러 돈 주으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④겸손을 나타내기 위해 어깨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다녔던 험블 백(Humb1e Back)이라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십 년씩 다니다 보니 아예 골격이 굽어 버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⑤내가 악한 일을 많이 했나, 착한 일을 많이 했나 계산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주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며 매일 계산해 보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착한 일이 적은 것 같으면 착한 일을 찾아서 해서 착한 일과 악한 일을 끊임없이 계산했습니다.
⑥하나님은 형벌하는 하나님이고 잘못하기만 하면 벌주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서하는 하나님은 모르고 벌주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 얘기만 나와도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바리새인도 있었습니다.
⑦그 중에는 순수한 바리새인이 있어서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이 있었는가 하면 예수님의 생명을 노린다고 알린 누가복음 13장 3l절에서 말하고 있는 착한 바리새인,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죄 짓고 난 다음에 인간들은 자기를 스스로 책임지려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지킴으로써 만족하는 사람인데 그들은 자신이 한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내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끊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즉 하나님의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2.사두개인
사두개인은 제사장의 후손이었는데 그들은 성전을 맡아 관리했으므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세(來世)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크리스챤 중에 어떤 부자들은 죽지 않으려고 별별 수단과 방법을 다 쓰면서도 정말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은 적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렇게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천사도 인정하지 않고 사단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세 5경만 인정하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으면 좋은 직장 생기고 잘살게 되는 데에 중점을 두며 용서받고 구원받는 데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3.서기관
서기관은 쉽게 말해서 부르는 것을 받아쓰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선생 노릇을 했으므로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는가 하면 예를 들어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디까지가 간음
입니까 손가락 끝만 건드렸어도 간음입니까 또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입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해석을 해주어야 되는데 그 역할을 서기관이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이론이 아주 해박했습니다.
서기관들이 만들어 놓은 계율 중에 248개는 해도 좋다 라는 것이었고 365개는 하면 안된다는 수칙 사항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몸 한 부위가 곪았습니다. 그럴 때 “곪은 부위에 거즈를 올려놓아도 됩니까 아니면 올려놓지 말아야 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올려놓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치료하려고 올려놓은 것은 일한 것이 되지만 이것이 더 나빠지는 것도 일이 되니까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거기에 거즈 정도는 올려놓아도 짐이 아니라고 해석을 내려 주었던 것입니다. 또 “귀가 아파서 귀에 솜을 꽂았는데 그 솜이 빠져 나왔다면 그것을 다시 끼워도 됩니까 아니면 말아야 합니까” 물을 때 솜은 가벼우니까 다시 끼워도 된다고 해석을 내려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여자들은 거울을 보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왜 거울을 보지 말아야 합니까” 라고 물어 보면 여자들이 거울을 보면 흰 머리를 뽑고 싶게 되고, 뽑는 것은 일한 것이 되니 안된다고 하여 여자들은 거울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서기관들이 내리는 율법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있던 것을 놓쳐서 바닥에 떨어지려고 할 때 그 손으로 도로 잡으면 일한 것이 되지만 다른 손으로 잡으면 일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것까지 서기관들이 전부 해석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더니 저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바로 서기관들이 비서라고 하면 예수님은 임금과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서기관이 말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신앙과 율법 중에서 율법을 택한 사람이고 사두개인은 신앙과 현실 중에서 현실을 택한 사람이며 서기관은 신앙과 이성 중에서 이성을 택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도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세 개의 못에 박히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원치 않는 현실주의자들의 못이고, 또 하나는 자기가 스스로 행동해서 의로와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박히는 못이며,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으로 풀이해 내는 이성적인 사람들의 못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못박은 사람은 바로 도마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손가락을 예수님 옆구리에 넣어 확인해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손가락 끝, 즉 손톱으로 찔렀습니다. 손톱을 영어로 네일(nai1)이라고 하는데 못이라는 단어도 영어로 네일(naiI)입니다. 그래서 도마도 또 한 번 예수님을 찔렀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이 아닙니다. 율법적도 아닙니다. 오직 용서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에 의문을 붙이는 사람은 도마가 손가락으로 찔러 확인했던 것처럼 예수를 또 한 번 찌른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또 거기에 있는 사람 앞에서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을 읽을 때 이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국을 알려면 비유를 알아야 되는데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모를 자들에게는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또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저도 들어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지 기어코 알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첫 말씀부터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4절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은 신구약 중간 400년을 밤으로 표현했으며 암흑 시대라고 하는데 이 암흑 시대가 이해되어야 비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중간사를 모르고 비유를 보면 엉뚱한 해석을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말씀을, 신령한
말씀을 인간의 상식의 한계를 깨지 못하고 받아들입니다.

성경에 보니 “사람들이 잘 때에”라고 했는데 그것은 신구약 중간 400년 사이, 즉 선지자가 없었을 때를 말합니다. 원수는 마귀입니다. 마귀가 와서 곡식 가운데 씨를 뿌렸습니다. 이때 곡식은 유대인을 말합니다. 유대인 가운데 가라지를 뿌렸다고 했으니 가라지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을 갖다 뿌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 암흑 시대에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가라지입니까 예수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로 의로와지려고 하며 자기 현실에서 혼자 잘먹고 잘살고 자기 똑똑한 것 드러내려고 했던 사람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은 구원하시는 예수님, 피 흘리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리새인도, 서기관도 예수님을 피 흘리실 예수님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도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했으니 가라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들은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박은 한쪽 못은 율법으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못이요, 또 한쪽의 못은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못이요, 그리고 발목에 박은 못은 배운 것이 있다고, 아는 것 좀 있다고 이론으로 따지는 못인 것입니다. 이 세 종류를 덧뿌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피 흘려서 그들을 용서할 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연적으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는 바로 마귀가 갖다 뿌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어 싹이 났는데 결실할 때 보니 알겠더라 그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에 크리스챤이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예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예수 이름은 기도할 때 맨 뒤에 마무리 말로 붙이는 것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예수를 모르면 가라지인 것입니다. 가라지는 겉으로 볼 때는 곡식이나 똑같아서 구별할 수 없는데 익을 때 보니까 가라지가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들이 “뽑아 버릴까요”라고 말하니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뽑으면 바로 된 사람까지 다칠까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갈라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천국은 좋은 씨를 말합니다. 좋은 씨는 예수로 구원받은 씨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인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제 밭이라는 것은 그 땅 주인의 땅이라는 뜻도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 씨에 맞는 밭이 제 밭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벼를 산비탈에 뿌렸다면 그것은 제 밭에 뿌린 것이 아닙니다. 벼는 논에 뿌려야 그 씨에 맞는 밭에 뿌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제 밭에 뿌린다는 것은 바로 그 씨에 맞는 토질의 밭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본문에는 밀을 뿌렸다고 되어 있는데 밀의 제 밭은 마른 밭입니다. 그리고 땅콩은 부슬부슬한 모래 속에 심어야 되고, 벼는 물논에 심어야 되며, 콩은 잎으로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즉 논두렁, 밭두렁에 뿌려도 되고 밭 사이에 뿌려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자연을 예로 들어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서 거기에 예수를 기다리는 그 소망을 집어넣으신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이스라엘에는 벼가 없습니다. 물이 없으니 논에 벼 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겨울에만 한꺼번에 쏟아지고 여름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호밀을 심어서 그들에게 곡식이라고는 호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도 호밀 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라지와 호밀은 구별할 수 없게 생겼습니다. 아무리 전문적인 농부라고 해도 얼핏 보면 그게 그것 같아서 잘 보아야만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싹이 났을 때는 뽑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미리 뽑을 수 없는 이유는 가라지와 호밀은 뿌리가 서로 새끼줄처럼 꼬여 있습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고자 하면 호밀이 같이 뽑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참 크리스챤과 예수 믿고 잘살기 위한 사두개인 같은 사람과 정죄하기 위해 나타난 율법적인 사람과 서기관과 같이 머리로 따지는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습니까 서로 얽혀 있을 때는 알아볼 수 없으나 결실할 때가 되면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밀은 결실할 때가 되면 알맹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가라지는 알맹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예수 믿게 만들 수 있지만 반면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절대로 전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하라고 해서가 아니고 알곡은 전도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에서부터 예수의 진액이 흘러나오니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좋은 소식(Good News)인데 소식은 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비유를 보십시오. 100배, 60배, 30배 결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파되는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가만히 보면 크리스챤들은 전부 열심은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처럼 열심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유대인들 속에 같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도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유대 민족 속에서만 그렇게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언제 생기고 누가 바리새인이 되어 사두개인이 되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밤에, 즉 선지자가 없을 때 생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가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신을 믿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모르면 그냥 가라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모르고 예수의 구원을 모르고 예수의 용서를 모르면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서기관들이 이 땅에서 열면 하늘 문이 열리고 닫으면 하늘 문이 닫힌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라는 이 말씀은 서기관들이 쓰던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이 말은 서기관 같은 머리를 가지고 이론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자에게 준 권세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이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주겠다는 엄청난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를 알아야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대로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열매 맺지 못한 가라지들이 있는 가운데에서 열매를 맺어 가며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사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자신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 열매 맺는 것 보았습니까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는 사람, 윤리적이고 이론적인 사람 열매 맺는 것 보았습니까 용서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열매 맺고, 예수의 진액이 올라오는 사람만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알곡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그가 정말 열매 맺고 있는가 그가 정말 열심히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데려와서 열매 맺기를 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이기주의로 살고 있는가 자기 욕심으로만 살고 있는가 똑똑한 자기 머리만 믿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천국이냐 아니냐로 갈라지는 엄청난 뜻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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