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들 (행 02:46-47)

첨부 1


성령의 부어주심, 성령 세례는 성화의 과정도 조건도 아니다. 물론 그것은 직접적인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간접적인 효과로서 성화를 촉진하며, 자극케 하는 효과가 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5:18)”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체험과 경험을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성화와 성령충만에 관한 것이다. 성령충만 즉 성화의 결과, 즉 성령의 열매가 있다. 여기는 분명한 사랑이 있다. 성령의 은사는 받았으나 사랑은 없을 수 있다. 성령충만=성화는 반드시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성령의 은사’, ‘성령세례’,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우리가 부정적인 그릇된 선입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큰 이유이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그는 사랑을 소유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성령 세례나 은사나 성령의 나타나심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깊으신 뜻대로 행하신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성화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우리의 의지와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쏟아부어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왜 주시는가 성령의 부어주심으로써의 성령 세례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역에 대한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능력이다. ‘성화’가 개인적인 인품과 신앙 인격에 관한 문제라면 이 ‘성령세례’는 제 삼자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의 구원의 사역에 대한 증언을 능력있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시는 은혜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증인되는 일에 있어서 이 성령세례는 필수적인 힘의 원리이다. 그러면 이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내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외적으로는 어떤일이 발생하는지를 살펴 보자.
먼저 내적인 면으로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첫째는 내적으로 자기의 내면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감지가 생긴다.
즉 하나님 존재에 대한 자각이 생긴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말씀’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원하시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려내는 것은 ‘언어’ 밖에는 없다. 그러나 언어가 내용에 대하여 잘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그 내용을 가슴으로 깨닫고, 우리의 모든 전인격을 뜨겁게 하는 그런 힘과는 다르다. 내용을 논리적으로 잘 이해하고 자세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언어가 가진 힘이지만, 우리 전 인격을 감동시키고,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그런 힘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하여 지적으로 동의케 할 수 있는 힘을 언어가 가졌지만, 우리의 심령을 파고드는 힘은 언어가 할 수는 없다.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이 필요한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

-18-
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비천함에 대한 자각이 생긴다. 이 두가지는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알게 되고 거기에 비해서 자신의 처절한 모습을 알게 된다.
둘째로 내적으로 기쁨과 거기에 수반되는 확신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2:46,47)”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의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2-5)”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이 말로만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고, 그것을 받을 때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받았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죽은 생명에게 전달시킬 때 우리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손에 붙잡힌 막댓기에 불과하다. 막대기를 쓰는 사람이 없이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성령께서 직접 간섭하셔서 성령의 나타남을 나타내실 수 밖에 없다.
세째로 성령 세례를 받은 본인에게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주를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20)”
넷쩨로 빛과 이해가 있다.
빛이라는 말은 어둠을 대신해서 쓴다. 즉 진리에 대해 깨우침이 있고, 비범한 이해가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어떤 영적인 밝음을 소유하고 명쾌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제는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 어떤 외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가를 살펴 보자.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세례를 허락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의 구원 사역에 대한 증거를 능력있게, 권능있게 하시기 위하여 허락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어떤 현상들 효과들 내용들이 있다는 측면에서 외적증거이다. 성령 세례를 받은 본인들에게는 물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우리는 성령의 부어주심의 외적 현상에 있어서 너무 듣는 쪽만 강조하여 방언을 너무 많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방언은 ‘성령세례’의 현상이기보다는 ‘은사’쪽이다. 외적 현상 중에 “얼굴이 달라진다”는 현상도 있다.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대면하고 말씀을 받고 내려오자 자신은 몰랐는데 그를 본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 대해서 모세의 얼굴에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 신앙이 진전되면 얼굴이 변한다. 성화로써 얼굴이 변한다.
다음에는 말이 달라진다. 말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하는 언어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 말, 즉 그 내용이 능력있게 된다는 것이다.

-19-

제자들을 보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음이 없이는 그들의 사역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3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배웠고 준비되어 있었고, 부활을 친히 목격했으되 능력을 입히우기까지는 그들은 증인으로서 그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갖고 있는 실력과 방법으로서 실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성령께서 직접 이 구속 사역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도리를 듣는 심령을 움직이며 귀를 열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그들은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행 4:29)”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 4:33)”
제자들은 분명히 성령으로 힘있게 권능을 부여받아서 그전의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담대한 모습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그 담대함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에게 그들만이 아닌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서 기인한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 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3-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우리는 계시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계시는 내용 면에서 완성되었다. 성경 외에 다른 내용이 또 있다고 하면 이단이 된다.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가 다 계시인 것이다. 다른 내용이 또 있을 수는 없지만 계시한 내용을 밝히시는 하나님의 간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서신서를 보면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요구는 없다. 오히려 그것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권면하고 있다. 왜 그런가 성령 세례를 받는 일이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인들에게는 성령세례가 있느냐부터 확인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령 세례로 말미암아 생기는 부작용이 싫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큰 부작용이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그러므로 그런 시행착오를 안 저지르는 자리에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패한 것이고 가장 비참한 것이다.

-20-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