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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딛 0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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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분단국가였던 독일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함으로 통일국가가 되었고 예멘 역시 남과 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서독은 당초 동독을 흡수통일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1조 마르크 정도로 잡았지만,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고, 약 2조마르크(약 9백 50조원)가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을 흡수통일 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인가에 대하여 [일본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는 2천억달러(약 160조원)로 추산했고, 국내 경제학자들은 40조원에서 많게는 6백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통일을 위한 비용이 천문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도 엄청난 생명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마시는 물, 산소, 심장이 뛰고, 위가 수축작용을 하고, 세포가 생성되고,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고, 그것이 열량으로 변해 각 기관에 보급되고, 자동으로 손, 발가락이 움직이고, 듣고, 보고, 걷는 것 등.
돈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하루에 1000만원 정도의 시설비와 유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달이면 30억이 되고, 1년이면 360억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병들면 돈내고 병을 고치면서도 매일 1천만원 정도의 생명유지비를 공짜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남북한 통일의 경우 1인당 비용을 산출하면 890만원 꼴이 된다고 합니다.
죽을 내 생명이 죄사함 받고 다시 살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본문은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했습니다. 돈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란 조건부가 아닙니다. 조건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십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은혜라든지 거저 주신다든지 하면서 싸구려인양 치부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받는 나는 은혜였고, 거저 받은 선물이었습니다만 그 은혜와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며 죽게 하시고 그 공로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값싼 은혜도 아니고 싸구려 상품이 아닌 것입니다.
고층 빌딩마다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돈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본 일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무역센타빌딩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받습니다만 그러나 대부분의 빌딩은 공짜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베이터 자체가 공짜인 것은 아닙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당 5천만원 1억 혹은 2억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내가 그 엘리베이터를 공짜로 탄다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공짜인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 받기까지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에서의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보내셨고, 죽게하신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인종과, 지역과, 계급과, 성분과, 출신을 포괄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십니다. 단,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어느날 밤 관장이 야순을 돌다가 도둑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관가로 데려다가 엎드려 놓고 볼기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갑자기 “아이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볼기를 치자 도둑 역시 계속하여 “태조대왕 등뼈 부러진다”며 자기가 태조대왕의 후손임을 암시하는 바람에 풀어주었습니다.
그 기발한 소문을 듣게 된 어떤 도둑이 밤에 도둑질을 하다가 야순관리에게 붙잡혀 관가로 끌려가 볼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볼기를 내려치기 시작하자 그 도둑은 “아이구 염라대왕 등뼈 부러진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제딴에는 아무려면 태조보다야 염라대왕이 더 높겠거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때리던 관리는 염라대왕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그 도둑은 염라대왕 덕택에 반쯤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0:13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고, 사랑받고, 복을 받게 됩니다.

2. 우리를 양육해 주십니다.
12절을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영적으로 출생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태어난 생명은 양육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부산 일신병원에 갔다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신생아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생명이 인큐베이터안에서 보호받으며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일정기간 동안으로 끝나야 합니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태어난 새 생명은 엄마의 품속에서 고동소리를 들으며 사랑받고, 보호받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자라고 신앙이 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양육되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누구의 보호를 받고 양육받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간수의 경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지키는 사람은 마귀의 소유인 것입니다.
1800년대 미국의 시인이었던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보통 종이 위에 그의 시를 써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그의 시는 6천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0불 미만의 종이 위에 그렸던 모나리자나 만종은 지금 수십만 달러의 명화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것이 되느냐, 누구의 보호를 받느냐, 누가 나를 키워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키워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강조입니다.

3.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경건하게 살고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하고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호화여객선 [아틀랜틱호]가 핼리팍스 해안에서 조난당해 수백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살아남은 생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우체국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전보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구원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길이 간직하기 위해 전보용지를 액자에 넣어 사무실벽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구원 받았다”는 전보내용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의 채찍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청년들의 모임에서 바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은적이 있었습니다.
참석했던 젊은이 90%가 잘 사는 것보다는 바로 살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잘 사는 것과 바로 사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잘 사는 것
① 잘 먹고, 잘 쓰고, 잘 노는 것이다.
② 하고픈 짓을 다 하고 사는 것이다.
③ 제 멋대로 사는 것이다.
④ 남의 간섭을 배제하고 사는 것이다.
바로 사는 것
① 자기를 통제하며 사는 것이다.
②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사는 것이다.
③ 가치있게 사는 것이다.
④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점과 해석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자녀된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바르게 삽시다.

4. 선한 일에 열심이기를 원하십니다.
14절 끝을 보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구라파를 휩쓸던 나폴레옹이 1백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러시아를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러시아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워털루 전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그는 외쳤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각자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라”고.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는 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믿으면 산다.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산다.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최종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일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영국 웨스터민스터 교회 목사인 [모건]박사에게 한 소년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지난 밤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한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로 나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까지 편지를 읽은 모건박사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설교를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지다니… 그러나 그 다음을 읽는 순간 기쁨이 되살아났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토록 슬퍼하는 이유는 제 아버님이 아직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사는 날 동안 해야할 가장 귀하고, 크고, 위대하고, 절실한 선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를 주님앞으로 인도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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