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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양과 이리 (눅 10:1-16)

첨부 1


이 말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예수님의 사역의 특수성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협력 선교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언제나 주님은 사역에 있어서 적절한 동역자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십니다.

둘씩-열 두 제자를 파송할 때처럼(막 6:7) 이번에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떠나게
하신다. 제자들을 둘씩 파송한 것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유효한 증인이 되게 하기 위
해서다(민 35:30;신 19:15;전 4:9;마 18:16;딤전 5:19). 이것은 후에 제자들의 설교나
초대교회 선교의 모델(model)이 되기도 하였다(행 3:1;4:1,13,19;13:1-3;15:40;15:27,
39,40;7:14-22).
..... 이 부분에 대해서 특별한 해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당시에는 이미 예수님의 이런 팀 사역이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 협력 신앙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사상은 본문 2절과 연계해서 우리 스스로도 항상 더 많은 일꾼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선의 기도는 항상 이런 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한 사람의 열심보다 열 사람의 협력을 구하는 마음가짐입니다.
.......
일꾼들은 자기의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주인에게 일꾼을 증원(增員)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며 일꾼들은 제자들이다.
다만 일꾼을 보내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으며 그분이 보내주는 일꾼만이 진정으로
그분의 추수를 돕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
제자들의 첫 사명이 바로 다른 일꾼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지요)

자기의 한계를 잘 느끼는 것입니다.
예) 교수님의 명강의
어느 목사님의 간증(신유의 은사)

본문 3절은 우리가 가야하고 해야 하는 일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구절입니다.
즉, 인간적인 시야로는 도저히 어울려 보이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의 사역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리가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을 믿는다면, 이제 인간의 눈으로 어울리리라는 기대 자체를 신앙의 것으로 바꾸십시오.
........
양과 이리입니다.
여러분에게 어울리거나, 맡는 것들을 고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3절을 자세히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양이고 저 놈들은 이리다가 아닙니다.
보냄과 같다고 하실 뿐입니다.
참 예수님 정확하십니다.
저 놈들은 나쁜 이린데 내 이 착하고 좋은 성품으로 감화시켜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이원론적 사고가 문제입니다.

또, 보내질 때,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신비한 비법을 주시지도 않는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오히려 양과 같은 우리의 순수한 믿음의 태도를 지키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자면,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경건할 것, 기도할 것, 찬양할 것, 감사할 것 이런 등등의 자세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싸움의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기도할 수 있겠어, 성경을 봐서 무엇 하라는 것인지” 의 유혹과 낙심의 마음을 이겨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절)
.....
가지지 말라: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참고서 탓하듯이
 왜 소풍을 가면 새옷을 입어야 하는지
 문안인사하듯이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과시는 전혀 상관이 없다.
 본문은 사명 받은 이들의 조급함을 보여 줍니다.
 또 사명 받은 이들의 일사 각오를 보여줍니다.

이 본문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가능합니다.1) 무엇인가 준비할 것을 구한다는 미명하에 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또, 물질의 준비로 마음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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