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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아이들 (마 1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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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에베소서 6장 4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번역성경에 따르면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여 잘 가르치십시오라고 옥중에 있으면서 에베소 교우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 말은 부모나 어른이 된 우리들이 어린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부모의 책임을 제시해 주는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번역성경에는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자녀를 아주 천시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절간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죽여 공물로 바친 예가 있고, 소설 심청전에 보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바닷물에 자기의 몸을 던져 희생한 경우도 있습니다. 옛날 뉴기니아에서는 부락의 추장이 취임할 때 어린아이를 죽여서 그 피로 목욕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애굽에서는 인구억제정책으로 유대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는 법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과거의 역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른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어린아이들을 희생시킨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2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오늘의 시대에 어린이들이 주인공임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 영역이 아니고 인격적이고 현실적인 오늘의 영역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시대는 어린이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해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어린이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 어린이는 이 시대의 주인공입니다.
우리 생활의 구호 중 하나가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말입니다. 이 구호는 어린아이는 내일의 주인이란 말입니다. 어린이는 오늘의 시대를 책임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내일을 준비하는 세대라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의 어린이들을 내일의 기술자로, 내일의 스승으로, 내일의 성직자로 열심히 열심히 준비시키고 있기 때문에 내일의 주인공이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일을 산다는 말 뒤에는 그들이 살아야 할 오늘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린이들은 내일의 주인공이기 전에, 내일을 준비하는 세대이기 전에 오늘의 주인공이어야 하며, 오늘을 제대로 살아야 할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이 쓴 히틀러의 어린시절의 전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히틀러의 출생지인 독일의 브라나운이라는 시골에 기념비 하나가 서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와 싸워 장열히 죽은 팜이라는 사람의 기념비입니다. 히틀러는 동네 한복판에 세워진 그 기념비를 보며 성장했습니다. 독일의 위대한 꿈을 지니고 자랐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이었고, 부인을 때리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고, 때로는 히틀러에게도 매질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이 강하게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23살이나 연하였는데 남편에게 받는 학대 때문에 그녀는 히틀러가 무엇을 잘못했어도 덮어두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 속에서 자란 히틀러는 성장해서 독일의 최고의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평생에 술, 담배, 커피를 먹고 마시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한 가지에 미쳤는데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라나 재물이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심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라나 재물이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심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구호는 우리는 행진하리라 모든 것은 조각이 날지라도 오늘 독일은 내 것이 되고 내일 나는 온 세상을 정복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복의 욕망은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이고 처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논문을 쓴 에릭슨이라는 사람은 여기에서 두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째 히틀러가 저지른 무서운 살인 행위는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를 향해 품었던 증오와 미움의 결과였으니 부모들은 자녀들로부터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아 오직 독일만을 생각해서 독일을 외치며 그 환상속에 사로잡혀 행진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속에서 고민하다가 사랑보다 미움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어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마음 속에는 사랑보다 미움, 애정보다 증오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들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하나가 잘못 자라게 되면, 즉 오늘을 바로 살지 못하게 되면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어린이는 내일을 살기 전에 오늘을 바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의 오늘은 그렇게 쉽게 넘길 수 없는 하루요, 지금입니다. 우리나라의 속담중에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오늘을 바로 살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2. 자녀교육의 지혜를 얻자.
에베소서 6장 4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처럼 노엽게 해서도 안되고, 어머니처럼 무조건 자녀를 감싸고 들지도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오늘에 살도록 하는 방법은 에릭슨은 3단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1-2세 사이로 젖을 빠는 어린이들은 젖을 빠는 즐거움, 깊은 잠, 평안한 대소변, 바로 이런 것들이 주어지면 출생할 때의 불안한 고통을 만족시켜, 주며 나가서는 신뢰감이 심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이것이 거절되면 무서운 불신감, 곧 일생을 불신으로 들어가는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살게 하는 중요한 오늘이 있기 위해서는 이 1단계의 교육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2단계는 3-4세의 어린이는 자기의지를 표현하기 시작하며, 자기의 뜻이 용납되어질 때 그것은 곧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이 꺽일때 부끄러움과 의심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점차 미움과 증오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3단계는 5-6세의 자기 행동을 시작하는 시기로 만들고 넘어뜨리고 다시 쌓는 적극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행동이 용납되지 않을 경우 질투에서 시작하기 앞서 파괴적인 행동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6세의 교육이 인생의 토대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개발해 주도록 유의하여 용기있는 인간으로 양육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돈독하도록 길러야 합니다. 잘못된 신앙은 역사를 창조할 수 없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의와 선의 승리를 창조할 수 있고 , 여호와 닛시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어린 다윗이 블레셋의 황소같이 힘센 장수 골리앗 앞에 용기있게 맞서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만군의 여호와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녀들을 키우려면 예술적인 재능개발이 필요합니다. 메마르지 아니한 풍부한 인간미의 사람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담력과 하나님의 신앙의 배양시켜 줌으로써 그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성장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3. 아이들의 위대함
창세기 33장 5절에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라고 고백했던 야곱은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위대한 것은 다윗에게서 배울수 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왕궁에 들어가 임금의 병을 간호하는 용기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다윗은 인물이 휼룡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부어 안수할 때에 너는 사람을 외모로 보고 안수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외모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는데 그속에 신앙이 있었기에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끝없는 꿈이 있습니다. 이 땅의 역사를 이끌 책임과 하나님 나라를 성취할 사명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 더 큰 평화를 이룰수 있는 꿈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순진 그 자체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순수함이 없습니다. 술수와 권모와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구렁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1절에 마음이 순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 들은 겸손 그 자체입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나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과 화해와 겸손과 순종, 그리고 신앙 자체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과 순종과 어린아이로 이 땅에 오셔서 어린아이와 같이 사람을 섬기다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역사하셨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과 환난과 가난과 질병이 있는 땅 위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서 예수님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길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 도
사랑의 하나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한번 주님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님의 뜻 가운데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어버이의 눈물어린 기도로서 자녀가 성장하며 결핍된 애정이 없게하시고 승리 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믿는 성도들이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과 환난과 가난과 질병이 있는 이 땅 위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서 예수님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가도록 오늘의 설교의 말씀을 잊지 않고 생활하도록 인도하옵소서.

기 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난날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옵니다. 이 시간 드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 물질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저희들에게는 한없는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시며 받은 말씀이 주님을 만나는 신령한 은혜체험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 지난날을 용서해 주시고 긍휼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사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고마우신 하나님 몸소 행하신 놀라운 일을 찬양하며 자랑하며 성령님의 힘으로 온 세상에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전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그지없으신 사랑으로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사랑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성도가 사랑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 각 부서마다 제 기능을 잘 발휘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옵소서 세우신 제직들 모두가 숨은 기도꾼이 되어 강한 영력을 가지고 봉사와 헌신의 나눔으로 교회의 기둥감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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