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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와 참자유 (갈 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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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지금부터 70년전 1919년 3월1일 기미년 독립만세사건은 우리 민족사에 잊을 수 없는 청사에 길이남을 비극적인 사건이면서 자랑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뜻깊은

3.1운동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본다든가 기념 행사로써 만족한다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1운동 사건은 그 동기와 뜻이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동시에, 많은 민족의 지도자들과 우리의 조상들이 피를 흘리고 생명을 희생당하며 인권이 유린당했던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운동의 이념과 의미를 이 민족의 후손들에게 깊이 뿌리를 박아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그 과정 더 나아가서

3.1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함으로 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학정에 대한 자유의 절규에서 일어났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말할 수 없는 일제악박과 망국의 쓰라림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찾으려는 폭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1914년에 시작된 세계대전 이후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의 완전 승리로 전쟁이 종결되고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세계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 평화 조약의 기본조건으로 14개의 원칙을 제창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모든 민족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라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시함으로 세계 약소 민족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게 되었습니다. 조국광복의 기회를 찾고 있던 우리 민족은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에 힘입어 큰 희망과 용기를 갖고

3.1운동을 일으키는 원천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3.1운동의 과정을 더듬어 보면

2.8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8운동은 1919년 2월8일에 동경 YMCA회관에서 유학생 166명이 모여서 조선독립대회를 열고 유명한

2.8선언과 결의문을 채택하게되었습니다.

3.1운동은 국내에서 보다는 해외에서 시작이 되었다는데 유의하게 됩니다.

3.1운동은 최남선 선생께서 조선민족의 생존권을 완전히 획득할것과 파리강화 결의에 의한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권 제의에 순응할 것과 일본 사람의 침략행위를 청산할 것을 골자로 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인 15명, 불교인 2명, 합33명이 2월 27일에 제동의 최린씨댁에서 선언서에 역사적인 서명을 함으로써

3.1운동은 본격적인 운동으로 전환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오늘 우리의 상황과 그것이 만남이 없다면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서 오늘의 눈으로 그것을 다시 해석하고 조명해 보는 지혜있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3.1운동은 잃어버린 주권과 말살되어가는 우리의 사상을 되찾는 주체성 자주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 모두가 단결하는 것입니다.

3.1운동사를 연구를 통해 뚜렷하게 나타나고 손에 힘있게 잡혀지는 것이 있다면 융화단결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애국하고 희생할 수 있었던 정신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희생정신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바울처럼 “죽든지 살든지”라는 정신,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결실을 맺게 될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3.1운동의 자유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자유는 영적인 모습에서 기독교의 참자유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영적인 자유도 내가 죽기를 각오할 때에만 주님이 주시는 참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본문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라고 하였는데, 13절에서는, “그러나 그 자유로 종노릇하라”고 했으니, 어찌보면 이 두 문장 사이에 아이러니한 면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자유면 자유지 종 노릇은 또 무슨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말씀의 조화에서 귀한 진리를 찾을수 있다. 마르틴 루터는 그의 저서인 갈라디아강해에서 “의에서 떨어진 자유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이며 의의 종이 되는 노예는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해방 없는 자유가 없듯이 예속이 없는 자유도 참 자유가 아니다.

1. 참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는 자유란 말이 무척 소란스럽게 들려오고 있다. 중국의 사상가인 장자는 “자연속에서 사는 꿩은 열 걸음 걸어가서 콩 한 알 주어먹고 백 걸음 걸어가서 물 한모금 마실지라도 울안에 갖혀서 주는 모이와 물로 배불리 먹는 꿩보다는 행복하다”고 하였다.
자유는 영어에서 liberty의 자유와 Freedom의 자유가 있다. Libertyd의 자유는 가견적인 자유 즉 정치적 결박에서의 자유, 경제적 소외에서의 자유와 같은 물리적인 자유를 의미하고, Freedom의 자유는 불가견적인 자유 즉 양심적인 자유, 신앙의 자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동시에 누려야 할 특권이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1743-1826)은 “인생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자유도 함께 부여하셨다”라고 하였다.
자유는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귀중한 자유 중에도 영적인 자유는 더욱 귀한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가 바로 영적인 자유인 것이다.

3.1운동의 발기인 33명중 기독교인 가장 많다. 16명이나 된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서 자유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비유에서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난고로 결과적으로 자유를 잃어버렸다. 일제억압 아래 친일파들이 광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복을, 자유를 열망하는 애국 민족들의 믿음은 결코 식을 줄을 몰랐다. 광복이 되었을 때에 친일파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아버지에게 얽매여 살기를 싫어서 그 속박을 벗어났으나 그곳에는 참 자유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속박되어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2. 노예란 무엇인가
본문 14절 말씀은 자유를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세력에 예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악 세력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으면 새로운 세력인 복음 안에 그 자유를 지속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에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멍에는 노예(종)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영원하고도 참된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종, 복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라는 침략국 앞에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바친 자들은 주인들이 이뻐하는 애완 동물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방이 될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진자들은 그 여건이 힘이 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굳굳이 자신이 해방을 위해서 해야될 일들을 말없이 해나갈 것이다. 주님의 사역을 통해 지금은 진정한 자유를 맛보지 못했을 지라도 꾸준히 깨어 기도하며 주님만을 사모하며 나아갈때 기독교의 참자유는 바로 여러분들과 함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을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저주와 멸망받을 땅위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땅 위에 80억의 많은 인종들 가운데서 나같은 보잘 것없는 죄인을 선택하여서, 우리의 이름을 생명록에 기록하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오니 이또한 감사드리옵니다. 오늘도 주의 거룩한 예배에 참예하여 은혜와 긍휼을 받게 하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우리들은 한주일 동안도 죄악된 세상에서 심령이 무디고 상한채 생존경쟁에 허덕이던 심령을 가지고 왔나이다. 깨끗게 씻어 맑혀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풍성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인격에 도달하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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