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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고 넘치는 교회 (슥 0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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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에서 70년만에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과업은 무너진 성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앞장서서 추진하거나 이끈 선지자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등이었습니다.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예언활동을 폈습니다.
스가랴서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1-8장은 스가랴가 본 환상에 대하여, 9장-14장은 예언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16-17절은 70년만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와 예루살렘 성읍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함락되면서 유다 민족이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70년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유다 포로들의 소망은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힘으로 해방되거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바벨론은 세계 최대 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흥국가로 부상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8년 바벨론을 멸망시키면서 유대인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사건을 스가랴 1:16은 “내가 긍휼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 주었을 때와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을 도와주었을 때의 고마움이나 감동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민족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해방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보셨던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싸워서 이기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둘째는 바벨론 왕이 특혜를 베풀어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일으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비단 유다민족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도 받았고,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일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그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결 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건져 주셨고,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고, 시험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그것을 성공이나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택복권 10장을 매번 샀습니다. 그리고 당첨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당첨만 되면 10의 5조는 하나님께 드리고 5조는 자기가 쓰겠다며 기도를 했지만 500장의 복권을 샀어도 당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도 소용없고 쓸데 없다”며 기도 무용론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까
이태리의 경우 정초에 파는 복권은 30억 리라 짜리도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15억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30억 리라의 복권에 당첨된 40명을 추적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 한명도 잘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명에 죽었거나 감옥에 들어 갔거나 파산을 했습니다.
많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40명의 이태리 복권 당첨 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은 오히려 많이 가졌다는 것 때문에 불행해 졌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2 그들이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 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먹줄을 치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디시 말하면 그 목적이 보다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짓고 돈벌고 자식낳고 7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욕망을 터트리며 향락을 일삼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행복한 망각입니다.
지난 날의 불행했던 기억과 불쾌했던 감정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잊어 버리는 것은 행복한 망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망각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것은 잊어선 안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날 받았던 은혜라든지,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든지, 가난하고 불행했을 때의 겸손한 자세라든지...,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한 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내가 오늘 왜 어떻게 여기에 앉아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살아 있으며 존재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돈벌고 잘 살고 일하고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70년 동안 유대 민족이 그토록 애타게 열망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전 건축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이유나 생존이유도 보다 더 높고 신령한 데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을 위해 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바쳐야 합니다.
어떤 한국 여행객이 로마 시내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덩치 큰 사내들이 앞뒤로 막더니 마치 수사관인양 패스포트를 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깡패라는 직감이 들었지만 상황이 험했기 때문에 지갑을 꺼내주었습니다. 지갑 속엔 500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500불을 꺼내더니 마치 위조화폐라도 가려내려는듯 이리저리 살펴보며 요즘 위조화폐가 많다는둥 너스레를 떠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객 왼손목의 금빛 나는 로렉스 시계를 보더니 슬며시 500불을 지갑에 넣어주며 위조지폐는 아닌것 같다며 손목의 시계를 보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순순히 풀어주었더니 이리저리 뜯어 보고 흔들어 보고 만져 본 후 이런 고급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 위험하니 주머니에 넣어주겠다며 여행객 주머니에 시계를 넣어 준 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계를 꺼내보니 로렉스시계는 가져가고 그 사람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넣고 갔더라는 것입니다.
총총히 사라져가는 그들 뒤에 대고 한국 여행객이 회심의 미소를 띠며 중얼거린 말이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구”. 그 로렉스 시계는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3만원짜리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처음엔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참동안 생각했습니다.
남의 것을 뻔뻔하게 탐닉하는 로마 사람, 위기를 모면하고 익살을 떠는 한국 남자, 3만원짜리 로렉스시계를 만들어 진짜처럼 국제 무대에 내놓는 한국의 장인기술, 속고 속는 우리시대.... 실로 만감이 교차 했습니다.
왜 삽니까 왜 여행을 합니까 왜 일합니까 왜 공부를 합니까 왜 자식을 낳습니까 왜 사업을 합니까
그것들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상관있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다시 차고 넘치는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분명히 해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고 넘치는 회복과 복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 가운데 정 명훈씨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빠리 바스띠유 오페라의 상임 지휘자로 구라파 음악계의 거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인이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면 언젠가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돈과 명예와 인기와 행복 등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고 그 음악이 가져다 줄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따위 등을 사랑하게 되면 음악은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음악인은 음악 자체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과 명예와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 예를 들면 돈, 명예, 인기, 행복 따위등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본문을 주목 합시다.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풍부하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맨 끝 순서에 놓고 틈나면 생각하고 여력생기면 감당한다면 하나님도 나의 문제를 맨 끝 순서에 두실 것입니다.
이번 주간부터 새벽부흥회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흥사경회가 시작됩니다. 이번 사경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시간시간 참석합시다.
은혜를 갈망합시다.
가족이 함께 참석합시다.
시간을 지키고 늦지 맙시다.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는 준비한 만큼 받는 법입니다.
주님께 나오는 일과 은혜받는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둡시다. 은혜못받고 은혜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회사도, 가정도 은혜받아야 신장하고 평안하고, 융성합니다.
은혜받기 위해 마련한 잔치에 빠지지 맙시다.
그리고 차고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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