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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단비를 주소서 (슥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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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오는 비를 단비라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계속 내리면 장마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비가 흔하고 강우량도 넉넉한 편입니다. 그리고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놓사를 짓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야 할 때 내리지 않으면 강도 바닥이 드러나고 저수지도 바닥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비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그 나라는 두 차례 비가 내립니다. 파종할 때 내리는 비를 이른비라고 하고, 결실할 때 내리는 비를 늦은비라고 합니다. 만일 이른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게 되고 늦은비가 내리지 않으면 결실을 못하게 됩니다.
알맞은 때에 비가 내리는 것은 그해 농사를 결정하는 원인이 됩니다.
제 아무리 수리시설이 잘 된 나라의 경우라도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는 물론 식수도 문제가 됩니다.
최첨단의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미국도 비가 오지 않으면 난리가 납니다. 잔디에 물을 주지 말것, 물을 아껴서 쓸 것 등 주정부나 시에서 비상이 걸립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흡족하게 내리는 비가 단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는 본문의 말씀은 지금가지 설명한 식수나 농사에 필요한 비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시편 72편 6절을 보면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임하는 은혜를 비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10:12을 보면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단비처럼 우리네 삶을 구석구석 큰데서 작은데까지 골고루 돌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비는 사람과, 초목과, 동물들에게도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 역시 모든 피조물에게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돈이나 과학의 힘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비는 땅에서 분수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가 범죄로 인해 중지된 경우가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에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가 내리지 않은 원인입니다. 그것은 아합왕이 바알 우상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바알신이란 그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이었습니다.
바알 신도들은 남신과 여신이 있는데 남신과 여신이 만나 접촉할 때 비가 내린다고 믿는 해괴하고 부도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비와 이슬을 주장하신다고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을 저버리고 소위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왕이라는 사람이 바알 신에게 절을 하는가 하면 도처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도록 국고 지원을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선지자를 죽여 없애겠다고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이교도들도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재앙이 임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우상의 전을 건축하고 우상앞에 합장배례하고 추파를 던진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거나 떠나서 살 수는 없습니다.
물고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사는 기적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기적은 없습니다.

2. 성령을 의미합니다.
단비가 사람과, 짐승과, 초목 등 모든 피조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준다는 면에서 성령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활기와 생기가 넘칩니다.
석회와 물이 합하면 뜨거운 열이 생깁니다.
녹슨 쉿가루와 알루미늄에 열을 가하면 2,000도 이상의 열을 냅니다.
[나]라는 존재는 약하고 무력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받으면 내게서 폭발적 힘이 발산됩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부흥회 도중 어떤 사람이 과부의 유산을 처리해 주면서 100원을 착복한 것을 회개하고 그것을 변상하겠다고 나선 것을 필두로 3만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4천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불길은 선천, 재령, 개성, 서울, 대구로 퍼져나갔습니다.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길선주의 그 당시 설교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사람은 잡을 수 있으나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는 누구도 포박해낼 수가 없다. 죄가 엎드려 있는 마음은 지옥이요 회개한 마음은 천당이다…”
교회에 죄인들이 모여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다는 소문을 들은 경찰관 방은덕이 죄인 몇놈 잡아다가 실적을 올리겠다며 장댓재 교회를 찾아와 구경하다가 그날 성령받고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방은덕은 체면도 불구하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선생님 나를 살려주세요”라며 소리지르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행하신 능력이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희미한 숯불을 산소 속에 집어 넣으면 강한 빛을 발하면서 불꽃을 튀기며 타게 됩니다.
유황 역시 공기속에서는 힘없이 타지만 일단 그것을 산소 속에 집어 넣으면 강렬한 푸른 불꽃을 튀기며 타게 됩니다.
내가 성령을 받고 나를 성령의 도구로 맡길 때 나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디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교만과 이기심과 욕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들이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마음이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을 때 성령이 계실 자리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단비로 충만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면 단비를 구하는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뭄으로 나무가 말라죽고 수도물이 중단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자 그 지역 교회협의회가 모여 기도하기로 결정하고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각 교회별로 기도의 날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도모임에 참석한 연인원이 2,800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 비 올줄로 믿고 우산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통틀어 13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것이 우리네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비오게 해달라면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 쪽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믿고 단비를 구합시다.
둘째 넉넉하게 구해야 합니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내리는 비는 넉넉하고 흡족해야 합니다. 먼지만 가라앉을 정도라면 해갈도 되지 않습니다.
은혜도, 축복도, 성령도 차고 넘쳐야 합니다.
사람들이 작은 규모의 구멍가게 보다는 대형 슈퍼마켓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한 물건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인생살이를 마감하고 풍요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넉넉하게 구해야 합니다.
셋째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소양댐이나 팔당댐에 일정량의 담수량이 초과되면 수문을 열어 물을 내 보냅니다. 그것이 위험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나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내가 받은 은혜나 능력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주시옵소서”만으로 끝나는 신앙이 돼선 안되는 것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콜드워터시 어느 은행에 6월 6일 새벽 폭발물이 터져 금고가 박살이 났습니다. 은헁털이범들이 금고 안에있는 돈을 털어가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했고, 금고가 폭발하면서 돈이 길거리로 흩날리자 주민들이 달려들어 너도나도 돈을 주워 담는 바람에 정작 범인들은 몇푼 밖에 챙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믿고, 벌고, 살고, 쓰는 것이 바람직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과 은혜를 구하는 태도 역시 정당해야 합니다. 명예나, 출세나, 치부의 수단으로 은혜와 성령을 구해선 안됩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3년 가뭄처럼 모든 것이 메마르고 갈증나 있습니다. 남북한의 첨예한 갈등, 핵전쟁의 위협, 도덕성의 몰락, 윤리기강의 붕괴, 청소년의 탈선, 우상종교의 창궐 등 먼지 풀석거리는 메마른 황야와 같습니다.
시원한 단비가 한바탕 쏟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내 영혼의 갈증 역시 심각합니다. 뭔가 텅빈 것 같은 공허감. 소유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허무감, 무엇인가 막혀있는 것같은 답답함. 기쁨보다는 짜증스럽고 원망스런 속마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봄비 때,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배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는 본문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비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소낙비를 내려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오 주여, 내 심령, 내 가정, 이 나라에 단비를 주소서. 은혜의 단비를 주소서. 성령의 단비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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