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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만의 생활 (왕하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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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해야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에 학생의 신분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또 군인이 되었다면 군인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기에 꼭 해야할 일이 있고 군인이기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까닭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해야되는 일이 있고 죽어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유다와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선민의 왕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을 잘 해냈습니다.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생활, 그리스도인이면 꼭 해야만 하는 생활이 무엇인지 본문에 의지하여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인도하는 생활 (1-2상)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보냄을 받은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길잡이요, 앞잡이로서 주의 길을 평탄케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경건생활, 기도생활을 통해서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광야에서 외칠지라도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몰려 갈 정도였습니다. 조상 때부터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세례요한이 아닌가하며 모든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백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후에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따르라고” 외쳤습니다. 즉 모든 백성들과 자신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말합니다(요 3:29).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예수님께 인도했더니 예수님도 기뻐하시고 예수님을 만나는 백성들도 기뻐하였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세례요한 그도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세례요한 자신은 신랑의 친구, 곧 중매자로 모든 백성은 예수님의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매자는 신부를 데려다가 신랑에게 인도하듯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도하여 예수님께 만나도록 한 중매자의 기쁨이 세례요한의 기쁨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생활은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절대 못하고 돈을 주어도 못하고 죽었다가 살아나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생활은 재미있게 하고 돈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바치면서 까지도 하는 보람 있는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절과 2절 상반절을 보면,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유다왕 요시야 때인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과 등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 대해서 노여워 말씀하신 내용이 열왕기하 22장 17절에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잘 아는 요시야왕은 왕으로 등극한 후에 하나님의 성전부터 수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도 왕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대인의 장로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예루살렘 거민들 전부를 자기의 앞으로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성전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불러모아서 하나님께 인도하는 유다왕 요시야가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등진 사람들, 믿다가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로 불러모아 그들을 데리고 하나님 전으로 인도를 하는 일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어도 못합니다.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입니다.

나이지리아의 한 교회에서 큰 잔치가 열렸는데 감독취임식이었습니다. 감독의 이름이 사무엘 크로우더(Samuel crowther)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감독이 됨에는 아주 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나이지리아 노예시장에서 한 가정이 팔려 나갑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팔려가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팔려가고 형은 형대로 팔려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어린 아들이 팔려갔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기 까닭에 모두 어디로 팔려 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막내아들은 팔려서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국 해군이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을 때였고 영국 해군에 의하여 불법 노예선이 적발 당했습니다. 영국 해군 군목이 어린 소년 하나를 발견하고 그 소년을 구출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목사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으면 그 소년에게 맨 먼저 누구를 만나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꼬마는 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일을 안 해도 좋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글을 익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됩니다. 그 군목이 크로우더를 고향인 나이지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며 보냅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사역한 끝에 하나의 교단이 이루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교단의 초대 감독이 그 소년입니다. 소년의 이름이 사무엘 크로우더(Samuel crowther)입니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예수님께로 인도했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나이지리아에 하나의 교단이 설립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입니까 노예로 팔려 가는 보잘것없는 소년을 주님께로 인도했더니 주님께서 너무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주위에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린 아이일지라도, 별 것 아닌 것 같은 형제일지라도 주께로 인도해보십시오. 주님께 인도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만의 생활이요, 복된 생활입니다.

둘째, 말씀의 생활 (2하)

요리문답 제3번에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이 물음에 답은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입니다. 즉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지, 또는 하나님께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덮어두고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지 모릅니다. 또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성경이 낱낱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떼 놓고는 믿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충실한 믿음생활, 말씀에 붙잡힌 믿음생활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돈주고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해야하고 보람 있게 해야하고 열심히 해야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만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절 하반절을 보면,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는다고 하였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자꾸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안 들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귀에 멋이 박히도록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요시야왕이 하나님과 서먹서먹해지고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진 백성들을 전부 모아서 성전에 데리고 올라간 후에 그들을 세워놓고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귀에 익히도록 읽어주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과 멀어진 그들이 말씀을 들어야 가까워지기 때문에 말씀을 계속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교회 구역장, 권찰들은 하루에 4장씩 성경을 꼭 읽고 노트에 은혜되는 말씀을 써서 내야 합니다. 하루에 성경 4장이면 1년에 신&12539;구약 성경을 한번 읽고도 한 달에 남습니다. 10년 동안 구역봉사를 하는 분들은 하루에 4장밖에 안 읽어도 성경을 열 한번을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덮어두고 읽지도 않으면서 안수집사, 권사 안 시켜준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직분을 맡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충실해야 하고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이 시키는 대로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무당에게 “언제 이사를 해야 좋은지”를 묻습니다. 즉 어느 날이 손 없는 날인지를 알기 위해서 점을 치러 갔습니다. 그러자 무당이 이사 갈 날을 정해 주면서 이 날이 아니면 절대로 이사를 가지 말아야 하고 정해 준 날에는 반드시 이사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 무당의 말로 머릿속이 꽉 찼습니다. 그리고 무당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무당의 말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무당의 말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하고 붙잡히다 보니 그 말씀을 벗어날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생활입니다. 베뢰아 교인들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비교해서 사도행전 17장 1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교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보다 신사적이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광성교회 나오고 10년 동안 똑같이 집사로 봉사해도 질이 좋은 집사가 있고 또 질이 좋지 않은 집사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질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베뢰아 교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예배하면서 오늘은 무슨 말씀을 주실건가를 생각하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같이 갈급함과 간절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의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가 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었는데 그 결과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믿음이 많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당해내겠습니까 말씀의 생활은 그리스도인만의 꼭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셋째, 결단의 생활 (3-)

다니엘이라고 하는 소년은 귀족이었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중에서 뽑혀 왕궁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반드시 우상에게 재물로 바쳤던 음식이 나오곤 합니다. 그때 다니엘은 자신의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그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하였고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읽어보니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70년 동안 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기도할 문제라 생각하고 기도하기로 결단하고 무릎꿇기 시작했습니다. 총리가 된 후에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환상이 보이는데 파사나라와 헬라나라 사이에 큰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헬라군은 5만명정도 밖에 안되고 파사군은 100만명이었는데 파사군이 꼼짝못하고 패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교만했던 파사가 망하는 것을 보며 겸비하고 겸손하리라고 결단하고 총리를 지내면서도 죽을 때까지 결단한대로 겸손을 실천했습니다.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결단하고, 기도하리라고 결단하고, 겸비하리라고 결단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사로잡힌 바 된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결단하고 실천하는 삶이 복되고 귀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을 보면,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을 모아놓고 왕이 발견한 언약책을 읽어준 후에 언약책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기로 하자고 제안하자 백성이 왕의 명에 복창하며 좇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설교를 듣고서는 그럴듯하다고 생각만 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돈을 벌어서 담배 피우는데 쓰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입니까 지옥은 안 갈지라도 그렇게 살아서 되겠습니까 그리고 폐가 새까매져서 기침만 하다가 나중에는 처자식을 돌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돈을 벌어서 가족과 잘 살라고 하는 것인데 매일 술도가니에 빠져 살고 집에 들어가면 술주정이나 하며 사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이 아닙니다. 오늘 모두 집에 돌아가시기 전에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만 말면 의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아무리 긍정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이렇게 살리라고 결단하고 결단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C.S 루이스라고 하는 사람이 우화적 작품 “엄청난 이혼”을 썼습니다. 그 책을 보면 지옥의 무서움과 어마어마한 고통을 그려놓습니다. 지옥은 불이 꺼지지 않는 곳, 희망이 전혀 없는 곳, 음산한 곳, 밤낮 싸움만 하는 곳, 한시간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묘사를 해놓습니다. 지옥의 건너편에는 천국이 있는데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셔틀버스가 한시간마다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사는 사람들도 그 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올라타는 사람의 자격제한은 없습니다. 그리고 운임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그 버스에 타지 않았습니다. 지옥에 있던 사람들이 정거장까지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버스운전사들에게 하늘나라에 가면 막걸리 집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운전기사가 “없다”고 대답하자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며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없는 것이 많은데 그 없는 것 때문에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없는 것만 찾습니다. 결국 지옥에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버스를 타지 않습니다. 얘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왜 지옥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까 결단을 하고 한발자국만 올라타면 되는데 아무도 결단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30년을 신앙생활하고 30년동안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의 생활이 여러분들의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만의 생활은 첫째로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생활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 살아나도 못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는 사람은 기쁨으로 하고 열심히 합니다. 둘째는 말씀의 생활입니다. 즉 말씀이 충만한 생활이요, 말씀에 사로잡힌 생활입니다. 말씀이 시키는 대로 살게되는 생활입니다. 믿는 사람만의 생활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죽어도 못합니다. 셋째는 결단의 생활입니다. 다니엘은 결단의 사람입니다. 결단하고 곧 실행에 옮겨 성공했습니다. 유다왕 요시야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결단의 생활은 그리스도인만의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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