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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의 지혜 (약 0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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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최고의 작 가로 평가 받고있는 미셀 트루니에 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나 이 70세가 되던 해에, 1994년입니다. 그 때에
"개념의 거울"이라고 하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 속에서 그 는 110가지의 개념을 나름대로 철학 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남자와 여자, 웃음과 눈물, 이런 것 들을 대조해서 설명을 하는 그런 철 학적 에세이집입니다. 그 속에 이 런 말이 있습니다. '나그네와 정착 자'라고 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그 러면서 그는 성경에 있는 가인과 아 벨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가인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방랑자 입니다. 들의 사람입니다. 그는 사 냥꾼이올시다. 다른 말로 말하면 유목민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아벨 은 농사하는 사람입니다. 안정되고 정착된 생활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 입니다. 이 두 인간상을 말합니다. 하나는 방랑자요 하나는 안정된 삶 을 누리고자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만남의 관계에서 이렇 게 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 다. 다시 말해서 방랑자가 안정을 찾아 사는 사람을 죽이는, 다시 말 해서 형이 동생을 죽이는 비극 속에 인간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것이 그가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에 집착하려고 하는 그런 인간, 또는 방랑하며 끝없이 떠도는 인간상, 이 두 관계, 이 두 인간들의 만남, 이 인간상 속에서 그는 역사를 설명하 고 인간상을 설명하고 또 미래를 내 다보고 있습니다. 한 말씀 더 드리 겠습니다. 이 '21세기 사전' 이라고 하는 책이 요 근자에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또 많은 충격을 주 고 있습니다. 자끄 아탈리 라고 하 는 분이 쓴 것인데 21세기를 전망하 면서 모든 분야에 이러한 변화가 올 것이다 라고 예측을 하고 그걸 다 모아 놓고 보니까 마치 사전과 같아 서 '21세기 사전' 이렇게 책이름을 지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21 세기에 사람들의 모습에 중요한 특 징은 도시 유목민이라는 것입니다. 그 유목민이라는 말에 큰 의미가 있 습니다. 도시 유목민이라는 거죠. 옛날처럼 방랑하고 있는 건 아니에 요. 그러나 도시에 살면서 유목민 이올시다. 그 마음이 생각이 유목 민적이라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모여 살지만은 고독합니다. 정착도 없고 안정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 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 아파트에 소 위 아파트 족을 보면은 아무 이유도 없이 2년마다 이사를 합니다. 이사 안 하고는 못 삽니다 좀이 꾸셔서. 이거는 유목민의 마음입니다.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 하는 겁니다. 별로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옆집으로라도 이사를 한 번 해야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유목민의 속성이라는 것이지요. 그 래서 유목민 중에는 밥 한끼를 먹지 못해서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그저 아침부터 밤까지 헤매고 다녀야 하 는 그런 불쌍한 그런 방랑하는 유목 민이 있고, 또 하나는 나름대로 넉 넉하게 물질이나 모든 여건을 갖추 어 가지고 나름대로 자기는 '넉넉하 다' 스스로 만족하면서 사는 유목민 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 미처 몰랐을 겁니다. 지금 우리도요, 인구의 4분의 1이 23만원 이하의 생활비를 가지고 산 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 입니까.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보 세요. 23만원이하로 온 식구가 살 아가야 한다. 그런고로 오직 먹는 거, 입는 거, 하루 한끼한끼 거기에 큰 걱정을 하면서 한끼의 식사를 향 해서 방랑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 한 유목민입니다. 그런고로 문제는 정착성 없는 나그네라는 점에는 마 찬가지인데 어디에 있던 간에 나그 네의 성격, 나그네의 가치관, 나그네 의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현대 인의 모습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 다. 그런고로 적어도 우리의 가치 관에 가치의 최종 가치가 무엇이냐 소위 지고(至高)가치를 무엇으로 지 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 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9세 기는 자유가 가치의 기준이었다. 자유를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20세기는 평등을 가 치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 평등, 평등 하다가 평등을 폭력으로 얻어 보려고 애쓰다가 공산주의를 만들었 고 평등을 이루지도 못하고 더 어려 운 지경에 빠졌습니다. 결국은 평 등 개념을 이제는 포기하고 오히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대로 격차가 심 한 자본주의 체제로 밀어붙이고 있 습니다. 세계는 이렇게 가고 있습 니다. 그러면 21세기는 어떻게 되 느냐 21세기의 지향하는 가치는 박애라는 것이올시다. 이제는 더 이상 무릎 찧고 싸워서는 안 되고, 그럼 다 죽으니까, 서로 사랑을 강 요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그런 것을 가치의 높이로 생각하고 이것을 이 상으로 하고 살아가는 그런 세대가 올 것이다. 그래 박애주의가 최고 의 가치가 될 것이다 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하나의 나그네다 할 때에 나그네 중에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나그네인 것을 모르고 사는 나그네 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집착해 보 려고 하고 안정해 보려고 하고 애를 씁니다 만은 사실은 다 헛되고 맙니 다. 그래 이룰 수가 없습니다. 결 코 안정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 면서도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알 뜰하게 알뜰하게 그렇게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 참 어떨 때 보 면은 답답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인 데 말이죠. 그렇게 그렇게 많이 가 져 봐야 아무 소용없는데 이걸 모르 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스운 얘 기입니다 만은 가끔 우리는 저는 이 렇게 교인 가정을 방문해 볼 때 참 집을 참 잘 짓고요 너무 가구들을 잘 해놓았어요. 그런 걸 볼 때 제 가 좀 측은하게 생각이 됩니다.
"이 사람은 참 죽기 싫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걸 다 놓고 죽 다니 이게 얼마나 안됐나"싶고요 더 하나 잘못된 건 뭐냐면 좋은 집일수 록 거울이 많습니다. 사방에 들어 가는데 나오는데 전부 침실에까지 이렇게 좋은 거울을 쫙 붙여 놨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또 생각을 합니 다. '아이고 저 거울은 잘못했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거울보고 싶지 않은데 저 거울에다가 뭘 비춰보려 고 거울을 만들었나'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 나는 나그네 예요. 나는 떠나야 되요. 여기 오 래 있을 곳이 못돼요. 게다가 뭘 그렇게 튼튼하게 돌로다 지어서 여 러 사람 고생시킵니까 언젠가는 다 헐어야 되는데 말이죠. 나그네 라고 하는 문제를 좀 깊이 알고 살 아야 하는데 나그네이면서도 나그네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가 하면 나그네인 줄을 알고 이것만 또 너무 집착해서 생각하는 가운데서 정착의 식이나 안정의식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아예 되는대로, 되 는대로 먹고 마시고 되는대로. 내 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이래서 방랑하고 방임한 그런 현세주의자들 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문 제입니다. 이렇게 다 포기하고 되 는대로 살아 보겠다 이건 무서운 것 이올시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인 간은 나그네는 나그네인데 정착지가 있는 나그네입니다. 여러분 나그네 에서 우리 신앙인의 개념은 순례자 로 의미를 바꿔야 됩니다. 나그네 가 아니라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우리의 목적지, 그 어디를 향하여 지금 가고 있는 겁니다. 가는 과정 에 나그네라고 하는 여기에 코스가 있을 뿐이에요. 그런고로 한시간 한시간, 하나하나 사는 것이 다 소 중한 것이에요. 그런 어떤 현자가 있었는데 그 동리를 여행하던 사람 이 그 마을에서 소문을 듣고 이 훌 륭한 분을 내 일생에 만나기 어려운 분이니까 한번 찾아서 인사를 드리 고 가야겠다 생각해서 현자의 집을 가 보았답니다. 봤더니 아무 가구 가 없고 식탁 하나, 의자 하나, 책 몇 권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너무 나 썰렁한 집을 보고
"선생님, 아니 서재도 없고 그리고 침실도 없고 이 렇게 썰렁하게 살아가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더니
"당신은요"
그러더 랍니다.
"저요 저는 어차피 여행 중이니까 그저 가방하나 뿐이고 가 볍게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 다. 그러니깐 저는 나그네니깐 그 렇지요."
그랬더니 그는 빙그레 웃 으면서
"저도요"
그랬답니다. 나도 나그네요. 당신만이 나그네가 아니 요. 오늘 우리는 나그네는 나그네 인데요 최종 종착지가 있는 나그네, 즉, 순례자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기억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허탄한 자 랑, 즉 나그네의 자랑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 이다. 아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자랑을 하는데 가만히 보 면 과거 자랑하는 분들이 많아요. 옛날에 어쩌고 어쩌고……. 그러니 어쩌란 얘기요 이런 거 과거 자랑 은 빨리 잊어버릴수록 좋은데 과거 에 내가 잘 살았고 출세했고 뭐 어 쨌고 어쨌고……. 그래 그런 이야 기들로 꽃을 피웁니다 만은 사실 이 과거의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현 재와 미래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보니까 우리 할아버 지가 늘 낚시질을 하고 오는데 낚시 를 해 가지고 올 때 할머니가 바구 니를 받아 들면서 보면 그게 피라미 몇 개, 조그만 거 몇 마리 잡았거든 요. 그래 할머니가
"애게게"
그러 시거든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꼭 설명을 합니다.
"사실은 기가 막히 게 큰 물고기를 놓쳤는데"
그만 잡 았다가 놓쳤다고 그래요.
"그거 내 가 수 십년 들은 얘기요. 고만 하 시오."
놓친 물고기는 다 월척입니 다. 그래 옛날 일은 굉장했던 것처 럼 생각하지요. 여러분 여기 연세 드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우리가 피난을 갔었거든요 전쟁 때. 피난 을 가서 보니까 피난민들이 모여 가 지고 고달프고 어렵기도 하지만 하 루종일 할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좁은 방에 끼어 앉아 가지고 뭐라고 뭐라고 얘기들 하는데 보면 자기 집 마당에 금송아지 매놓지 않고 온 분 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다 잘 살았 고, 내 고향이 최고고, 뭐 어쩌고 어 쩌고……. 허풍이 좀 있더라고요. 과거에 대해서 과거가 화려하면 화 려해질수록 그렇게 기억될수록 사실 은 오늘이 더 비참한 겁니다. 과거 가 어려웠다. 그러면 오늘은 그보 다 훨씬 났다. 이게 차라리 난 거 요. 과거에 대한 자랑이 그 마음을 이렇게 붙잡고 있는 동안 나는 점점 더 힘들어 집니다. 그걸 알아야 됩 니다. 또 한 가지는 현재에 대한 자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면 현재에 대해서 뭐 가진 것, 아는 것, 젊은 것, 지식, 뭐 자랑합니다. 제 가 이 결혼 주례를 많이 하지 않습 니까 그러면 그 두 사람 딱 세워 놓고 결혼 주례할 때, 저는 그 결혼 주례를 아주 즐깁니다. 너무 그 시 간이 나도 행복해요. 아주 예쁜 색 시, 그 신랑, 이렇게 보면서 저는 한 편으로 또 철학적으로 생각을 합니 다.
"지금이 너희들에게 절정이다. 오늘이 고비다. 오늘까지 최고지 앞이 훤하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 다. 뭘 좋아서 못 견딥니다 만은 '그건 아니다. 이 철없는 사람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현재, 자 젊 음 그거 자랑할 것이 됩니까 곧 지나가는 것 아닙니까 제가 오래 전입니다 만은 가끔 전화를 걸어야 될 때 전화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 아서
"아무 아무개 전화가 몇 번이 냐"
그러면 비서가
"그거 몇 번입 니다"
"너는 어떻게 아냐"
"목사님 이 한번 일러주지 않았습니까"
"그 걸 어떻게 기억하냐"
아 딱 하는 말이
"목사님, 한 번 들은 걸 왜 잊 어버립니까"
아 그래서 그 다음엔 내가 '가만있어. 아 이거 안되겠다.'
"너 까불지마. 너 그렇게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결혼해 가지고 아이 둘만 낳아 봐라. 나 보다 더 멍청해질 거다."
꼭 그래요. 여자 분들이 대개 기억력이 좋은데 그저 나이가 들어 어린애 둘만 낳고 보면 은 그 다음에 몽롱해져요. 이거 자 랑할 거 못돼요. 내 기억력, 내 지 식, 특별히 내 건강, 이 현재라고 하 는 것은 도대체 자랑거리가 못 되는 거요. 왜 곧 없어지니까, 곧 지나 가니까. 이걸 어떻게 하겠어요. 이 걸 인정을 해야지요. 그래 자랑하 지 마라 그랬거든요. 또 그런가 하 면 어떤 사람은 미래를 자랑해요. 오늘 성경에 나타나 있죠. 내가 아 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 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인생 이 무엇이며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가 아니더냐. 일년 후 그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이거요. 누가 일년 후를 보장합니까 그렇 게 허망한 사람들 많아. 황당한 거, 현실성 없는 미래를 내세우면서 그 걸 자랑하는 짓. 죄송하지만 저한 테 약속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사람 많습니다. 뭐 이렇게 돈을 벌면 어떻게 하고, 이 렇게 하면 하나님께 어떻게 돈을 바 치겠습니다. 큰 소리 다 쳤는데 다 거짓말이요. 미래, 정말 그럴 수 있 을까요. 앞에 될 미래에 대한 그걸 놓고 자랑하는……. 이상주의자요 허망한 사람이요. 그런 얘기가 있 어요. 요새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 견이라는 걸 합니다. 학자들이 터 무니없는 빗나간 미래에 대한 예측 인데도 불구하고 또 예측을 믿으려 고 듭니다. 아주 소문난 이야기가 있기에 말씀드립니다. 1943년, 그 때에 컴퓨터가 처음 나왔습니다. 그 때에 로버트 왓슨 이라고 하는 IBM 회사 사장이 컴퓨터를 보고하 는 말이
"온 세계에 이거 다섯개도 안 팔릴 거라고. 이건 만드나 마나 소용없는 상자다"
그랬어요. 그런 데 오늘 와서 보니 수천 만대를 지 금 많은 사람들이 쓰고 사용하고 있 지 않습니까. IBM 사장이 똑똑한 척 했는데 그 예측은 안 맞았습니 다. 여러분 다 같이 걱정한 얘기지 마는 1970년에 많은 미래학자들이 말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10년에 가면 우리가 쓰는 석유는 바닥이 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닥나지 않을뿐더러 지금은 얘기합니다. 21 세기에 쓰기는 충분하답니다. 그것 도 봐야 알겠지만. 우리는 종종 미 래에 대해서 어쩌고 어쩌고 예측을 합니다. 예견을 합니다. 뻔히 안 맞는 걸 알면서도 예측을 합니다. 요새 보니까 뭐 증권회사 하시는 분 들이 고객을 끌면서 하는 말이 훌륭 한 전문가들이 있어서 틀림없이 쪽 집개처럼 알아 맞춘다나요. 그러면 자기가 하지 남 주겠어요. 세상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게 그 노름 이요. 그런데 미래에 대해서 이걸 자랑한다, 얼마나 허망한 얘기입니 까 나그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나그네는 나그네임을 알아야 하고 나그네의 정체의식을 가져야 합니 다. 그리고 현재에 집착하는 거 금 물입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요. 라이프 이즈 프로세스(Life is process)입니다. 지나가고 있기 때 문에.
또 하나는 종착지가 있음을 알아 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순례 자입니다. 오메가 포인트가 있고 마지막 목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 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 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예비하고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데려가리라"
주님이 먼저 확실 하게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시고 확 증해 주셨습니다. 그 날이 있다는 걸 잊지 맙시다. 가끔 어떤 젊은이 들이 물어 볼 때가 있어요. 그 질 문은 아주 심각합니다.
"목사님 정 말 천당, 지옥이 있습니까 그걸 좀 증명해 주세요"
그 사람이 묻는 의도를 우리는 충분히 알만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에 자 네는 없다 하겠지. 나는 있다하네. 만일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나"
"있 다면 지옥가야겠지요."

"그럼 있다 고 생각해 두는 게 훨씬 좋겠네."
그럽니다요. 여러분 정착적인 앞에 있는 가나안 땅이 있다고 믿고 오늘 을 사는 사람과 없다고 생각해서 순 전한 방랑객으로 살다가 정착지에 도착할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서 양에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자기 비 문을 자기가 썼습니다. 미리. 그리 고 죽어서 묘비를 세워 놨는데 그 묘비는 이렇습니다.
"이 곳을 지나 가는 사람들아, 당신들이 지금 존재 하듯이 나도 그러했노라. 그러니 이제 내가 죽어 있듯이 당신들도 죽 어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를 준비를 하여라."
그랬어요. 이렇게 묘비를 써 놨어요. 그래 가는 사람마다 읽 어보는데 어느 여행객이 이 묘비를 딱 읽고 나서 거기다가 밑에다가 추 이를 또 한 자 더 써넣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갔는지 알지 못 하는 한 나는 당신을 따를 의사가 없노라"
그랬어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 따라 갈 거 없어요. 인생 허무, 인생 무상 그것만은 진 리가 아니에요. 영생이 있음이 진 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 늘 성경 말씀은 주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것이다. 주의 뜻이 면.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리고 나그네의 지혜라는 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알 수 있 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가질 수 있 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알아 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하는 거 아니요 가질 수 있다고 다 가지 는 거 아닙니다. 먹을 수 있다고 다 먹는 거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유명한 말이 있습 니다. 유 캔 두 잇 비코스 유 슈드 두 잇(You can do it, because you should do it) 너는 그것을 할 수 있 다 그런고로 너는 그것을 해야한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을 해야한 다.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우리 는 나그네로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이라고 할 때 할 수 있어지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 도 행치 않으면 죄인이라. 행할 줄 압니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가 되 는 것이에요. 이런 순례자의 길을 갑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합 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지혜로운 나그네가 되어야 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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