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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평안을 주노라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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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일자 그러니까 2000년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발간된 뉴스위 크지에 커버스토리로 나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주제는 이렇습니다.
"묵시록의 예언", 그렇게 큰 글자로 커버를 내 놓고 있습니다. 요새 와 서 여러분 전에는 못 듣던 이야기 하나를 늘 듣게 될 것입니다. 밀레 니엄이라고 하는 겁니다.
"뉴 밀레 니엄(New Millenium)"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밀레니엄이란 라틴어 의 '천(千)'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 천년을
"뉴 밀레니엄"이 라고 말합니다. 이 새 천년을 앞두 고 성경이 말하는 종말에 대해서 일 반들이 알아들을 만큼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설명한 기사였습니다. 이 글을 쓴 안네 언더우드는 재미있는 말로 말을 시작합니다.
"2000년 1 월 1일 0시 1분에 종말이 찾아온다 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 다."
그렇습니다. 2000년이 끝나는 시간에 세상이 다 끝나는 것으로 그 렇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시민을 상대로 할 때 미국시민의 40%가 '세상이 언젠가는' 그 점이 중요합니다. 그 언젠가인 것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해 주는 거와 같은 아마겟돈 전쟁과 함께 세상이 끝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마겟돈 전쟁의 성 격, 그것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세 상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예루살 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다 음 세대, 신천신지가 이루어지기 직 전에 이루어지는 역사의 종말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내년 에는 예루살렘에서 종말을 맞이하고 그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새 시대를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 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년에 모여드는 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측하는 대 로는 적어도 300만명 이상이 예루살 렘에 모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맞이하려고 여러 가지로 백방으로 준비를 한다 고 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예 수님이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서 승 천하십니다. 그 때에 들려진 음성 은 이것입니다.
"본 대로 다시 오 리라."
그래서 지금 감람산 그 현 지에 기독교인들이 100명이 들어가 서 집을 사 가지고 집을 짓고 거기 서 산답니다. 거기서 주님을 맞이 하고 싶다고. 이 모든 일로 인해서 소위 말하는
"밀레니엄 포비아 (Phobia)"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포비아'라는 말은 원래 '공포'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 '밀 레니엄 포비아'하면은 새 천년에 대 한 공포올시다. 그 공포로 이 온 세상이 지금 꽉 차있습니다. 이제 안네 언더우드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우리가 늘 듣던 얘기입니다 만 은 일반이 들을 때는 새로운 얘기입 니다. 두 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가 됐다. 이제 천지를 창조하시 고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 제 다음 단계는 심판의 단계로 역사 한다는 것이죠. 그런고로 세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파괴하시는 하나 님, 진멸하시는 하나님, 그런 공포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밀레니엄 포비아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의인은 하나님의 품속에 평안을 누릴 것을 생각하며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역설적입니다. 성경진리가 언제나 그렇습니다. 복 음적 진리가 언제나 그렇습니다. 복음이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 어요. 이 복음이 심판적 요소가 있 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 복음을 거역하는 자에 게 심판. 복음이 많이 혹은 정확하 게 들려지면 들려지는 만큼 심판은 더욱더 확실해지는 것이올시다. 불 가피하게 되는 것이올시다. 이 역 설적 진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 니다. 종교적이요 개인적이요 구원 론적 종말을 우리는 새 천년과 함께 내다보게 됩니다. 이 엄청난 사건 을 앞에 놓고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 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새 천년을 맞이할 것인가를 준비해 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지금 며칠이 아닙니다. 바로 몇 시 간입니다. 바로 몇 시간 후에 십자 가가 다가옵니다. 잘 알고 계십니 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바닥바닥 다가오는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오 늘 본문에서 평화를 말하고 있습니 다.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라고 하고 히브리말로는 샬롬입니다. 십자가 전야에 예수께서는 샬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놀라운 얘기가 아닙니 까 평화라고 하면은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평화를 생각해 왔습니다. 두 패러 다임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그 하나가 '팍스(PAX)'입니다. 로마사 람들이 주장했던 팍스, 이것은 온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입니다. 물질 적이요 상대적이요 때로는 순간적이 고 권력 지향적입니다. 힘에 의해 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경제력, 정 치력에 의해서 혹은 때로는 군사력 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힘에 의한 평 화, 그 힘 앞에서 모두가 조용합니 다. 공동묘지 같은 평화입니다. 이 것이 팍스입니다. 강한 힘 앞에 강 한 권력 앞에 이 권력 앞에 모두가 조용합니다. 이것이 참 평화입니까. 어쨌든 인간들은 팍스를 지향해서 오늘까지 몸부림쳤습니다. 또 하나는 에이레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 이것은 샬롬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영적이요 종교적이요 특별히 개인적이요 그 마음 깊은 곳 에서부터 이루어지는 평화를 말합니 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화입 니다. 그래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 르다."
그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 아야 합니다. 이 다르다는 것을 이 해하면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우 리는 종종 예수님이 주는 평화와 세 상이 주는 평화를 하나로 만들어 보 려고 하고 하나 되기를 소원합니다.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 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이걸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평안이 없습니 다. 믿을 수 없어서. 그래 믿지 못 하는 이유는 뭐 교만하기 때문이죠.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다 지내 봤잖아요. 정치, 권력, 경 제, 재산, 여러분이 쥐고 있는 증권 뭘 믿을 것이 있어요 그리고 뭐 가정, 나 자신을 내가 못 믿는데 누 구를 믿어요. 결국은 이 세상에 평 안이 없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 이에요. 우리는 지금 크게 걱정을 합니다. 온 국민이 정치를 믿을 수 가 없어요. 정권을 믿을 수가 없어 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요. 이게 바로 문제올시다. 믿지 못하 면 평안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문 제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안 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불안 합니다. 그것은 알 수가 없기 때문 이요.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고 과거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뭐 지난날에 잘못된 것을 한 번 바로잡 아 보겠다고 해서 뭐 청문회도 해 보고 검사도 해 보고 특별검사도 하 고 특특검사도 했다는데 안돼요. 알 수 없어요. 오리무중이요. 점점 더 모를 일만 가득해요. 하나님 외 에 아무 것도 누구도 몰라요. 알 수 없어요. 불확실해요. 그런고로 우리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병든 이성의 판 단은 항상 병적이에요. 우리 이성 자체가 판단의 그 기본능력 자체가 병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 것 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고 로 불안합니다. 또한 불만이 많아 요. 그것은 소유할 수 없기 때문 에……. 여러분 그렇게도 애써서 모아놓은 재산 이렇게 홀랑 달아날 줄 몰랐지요. 가질 수 없어요. 뭐 권력이고 지혜고 지식이고 뭐고 가 졌다 해봐도 아무 것도 없어요. 저 는 가끔 그런 분들을 만날 때 너무 너무 참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잠 시 괴롭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총 명하고 그렇게 머리가 좋고 아주 '천재'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아이고 어느 시간에 약간, 약간 잘못되고 나니까 멍청해 지는데요 아이고, 참 이럴 수가 없어요. 그 많은 시간 공부하고 그 많은 시간 그렇게 많은 책을 쓰고 총명하던 분이 이렇게 멍 청한 바보가 될 수 밖에요. 이럴 수가 있어요 여러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잡을 것이 없습니다. 소 유한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 불만 이 많습니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끝없는 욕심의 노예가 되어서 그 많은 세월을 보냈 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마음에 평 안이 없습니다. 케이체프 노이드라고 하는 심리학자 가 재미있는 말을 우리에게 일러주 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섯 가지 감옥에 갇혀있다. 보이지 않는 감 옥에 갇혀 있는데 이 감옥으로부터 탈옥하기 전에는 누구도 평안할 수 없다. 첫째 감옥은 자기만이 예쁘 다고 생각하는 자기 도취의 감옥, 공주병 뭐 그런 거죠. 자기만 잘난 거 같아요. 자기만 예쁜 거 같아요. 이것 한번 미치면 이것도 구제불능 이에요. 자기도취, 그 감옥. 또 하 나는 다른 사람의 나쁜 점만 자꾸 생각하게 되는 비판의 감옥, 그것도 못 말리는 거예요. 많은 장점은 보 지 못하고 꼭 단점만. 심지어는 자 기가 위해서 돕고 키우는 자녀들까 지도 그 장점 많은데 하나도 보이지 않아 꼭 나쁜 점만 보고 그것만 지 적하고 그것만 생각하면서 괴로워하 는 이거 또 하나의 비판이라고 하는 감옥이에요. 그런가 하면 오늘, 내 일, 항상 세상을 암담하게만 보는 절망의 감옥. 이것도 고치지 못하 는 병입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 외에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꼭 절망적 으로만 보는 사람, 끝도 없는 거예 요. 그런가 하면 옛일만을 황금시 대로 생각하는 과거 지향적 성향, 항상 오늘은 나쁘고 어제는 좋았어 요. 사실 어제도 죽을 지경이었어 요 사실 알고 보면. 그런데도 불구 하고 옛날은 다 좋다고만 생각하는 이것도 못 고치는 병이에요. 또 하 나는 다른 사람의 것만 무조건 좋게 보는 선망의 감옥. 자기가 가진 것 은 좋지 않고 남이 가진 것은 다 좋 아. 남의 것은 다 좋게만 보이는 이것도 무서운 감옥이요 정신적 감 옥이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도저히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증오와 시기의 감옥, 질투, 이건 무서운 감옥입니다. 자 이런 것에 매여있는 동안은 절대로 평안 하지 못하다. 이로부터 완전히 자 유할 때 비로소 평안할 수 있어요. 이런 것에 매이는 것, 이 세상이 주 는 평안입니다. 평안할 수 없는 평 안. 그러나 이로부터 온전한 자유 를 얻을 때 거기에 참 평안이 있다 하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 예수님의 말씀 오늘 본문 가운데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요절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지 금 십자가가 다가옵니다. 이 사실 을 비유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 상 임금이 오겠습니다. 이 세상 권 력이 내게 오겠다. 이제 가야바가 있고 빌라도가 있고 로마 군인이 있 고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이 확실한 사건을 총칭해서 세상 권력 이 내게로 오고 있다. 예수님 말씀 보세요.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저는 내게 관계할 것 이 없으니. 너희가 아무리 나를 재 판하고 나를 아무리 죽여도 나와 아 무 상관없다. 다만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내가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 다는 것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사건 일 뿐이다. 아, 놀라운 얘기입니다. 아주 초연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은 말씀하십니다.
"조금 후에 너희 가 나를 못 보겠고 조금 후에 나를 볼 것이다."
어찌 이렇게 태연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평안할 수 있 습니까 예수님의 평안. 이제 주 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평안을 내 가 네게 주노라."
예수님 요한복음 16장 32절에 말합니다.
"너희가 다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버지께서 나 와 함께"
평안합니다. 33절에 다 시 말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 라."
이미 이겨버렸어요 벌써. 다 그 마음속에서 그 생각 속에서 철학 속에서 믿음 속에서 다 해결하고 다 이겨버렸어요. 승리해 놓고 나머지 일을 초연하게 처리해 나가는 겁니 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에 있었 던 평안입니다. 놀라운 평안입니다. 이제 말씀하십니다.
"이 평안을 너 희에게 주노라."
어떻게 이 평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주시는 평안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평안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 수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며 무 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잘 알아 야 됩니다. 여러분, 이 성경말씀을 비롯해서 예수님의 사건을 자세히 읽고 또 명상하고 또 읽고 명상하면 서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 깊 은 평안함, 그 엄청난 평안을 그 위 대한 평안을 이해해야 됩니다. 놀 랍습니다. 깨달아야겠습니다. 알아 야겠습니다. 이 안다는 것이 바로 그 평안에 함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에요. 가끔 묻는 분들이 있어 요.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깐, 제 가 뭘 안다구요. 제게 묻기를
"앞 으로 어떻게 될까요",
"정치가 어 떻게 될까요",
"경제가 어떻게 될 까요"
다행히 나더러 증권이 오를 까요 내릴까요 그건 안 물어 보더만 요. 모를 거 같은가 보죠 꼭 물 어봐요.
"어떻게 될까요"
저는 늘 대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 리 할 탓이지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지 않고 세상이 어떻 게 될까요 그건 왜 물어봐, 내 탓인 데. 우리가 진실하고 우리가 의롭 고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재를 무릅쓰고 주님 앞에 돌아올 때 거기 서 바로 되는 것이죠. 우리가 정직 함을 찾아야지요. 그게 바로 되는 것이죠. 이 모양 이대로 세상만 달 라지길 바래요 다를 거 없어요. 망할 짓만 하면서 망하지 않기를 바 랍니까 꼭 죽을 짓만 하면서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그건 미신이 죠. 그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할 탓이에요. 주님 말 씀하십니다.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옳습니다. 그 평안의 뜻 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깊이 깨달아야 되요. 그리고 믿어야 되 죠.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지요. 주 님의 말씀을 믿어야지요. 예언의 말씀을 믿어야지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합당한 오늘을 내가 살아야지요. 어떤 아버지가 장마철 을 앞두고 2층집 지붕에 기와가 몇 장 깨진 것을 알고 이걸 고치기 위 하여 긴 사다리를 놓고 2층으로 올 라갔습니다. 2층집 지붕으로 올라 갔어요. 이것을 지켜보던 그 초등 학교 다니는 어린아이가 아주 재미 있어 보이거든요.
"아버지, 나도 좀 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해 주세 요."
아버지는 사다리를 딱 붙들고
"올라와라. 단, 절대로 내려다보지 마라. 나만 쳐다봐라 나만."
이 철 없는 아이는 정말 아버지만 쳐다보 고 겁 없이 그냥 한 계단 한 계단 사다리를 막 올라갑니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내려다보았습니다. 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휘청거리고 현기증이 나 정신이 없어요. 막 울 려고 그러고 손을 어떻게 하질 못하 는 거야. 아버지는 큰 소리로 외칩 니다.
"이놈아 보지 말라는 걸 왜 봤냐 나만 보라. 내 눈동자를 보 라. 내 얼굴을 보라."
아버지를 딱 쳐다보았어요. 그리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그냥 올라갑니다 그냥. 아주 잘 올라갔어요. 아버지가 손 을 잡아 거뒀습니다. 여러분 중요 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이 곤두박질하든 변하든 뉴 밀레니 엄이 오든 올드 밀레니엄이 오든 상 관할 거 없습니다. 그건 나와 상관 이 없어요. 세상은 나와 상관이 없 어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 주님 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다시 한 번 걸음을 내딛으세요. 또한 오늘 성경말씀 가만히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했으면 내가 아버 지께로 감을 기뻐했으리라."
옳은 말씀이요. 내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의 행동에 대해서 기뻐하는 거죠. 사랑하는 자가 기뻐하는 걸 내가 기 뻐할 수 있어야지요. 주님이 기뻐 하는데 나는 왜 슬퍼하는 거예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이제 주님께 서 하시는 일 주님의 기쁨을 내가 같이 기뻐하게 되는 거죠. 여기 문 자 그대로 번역을 하면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십자가 지는 것 을 기뻐했으리라."
그 말씀이에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하리라"
성령이, 보혜 사 성령이 너를 위로하고 내가 한 말을 생각나게 하고 내가 한 말을 믿게 하고 내가 한 말이 너희를 주 장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이걸 잊 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를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신뢰요. 컨피던스 (Confidence).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말합니다. 다음 세대에 성공할 사 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물리적인 힘 가지고는 안됩니다. 높은 정신 적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평안해야 됩니다. 그래야 가진 능력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컨피던스. 그런가하 면 컨센트레이션(Concentration), 집 중력이 있어야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만 바라보며 집중적으 로. 가만히 요새 보니까 학생들 가 운데 컴퓨터 좋아한다고 컴퓨터로 뭘 한다고 하다가 시험 망치는 아이 들이 있더라고요. 왜 그런고 하니 컴퓨터라는 거 이렇게 딱 치고 나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요. 너무 많은……. 이게 재미있어 가 지고 여기 들어가 보고 저기 들어가 보고 하다가 시간 다 보내고 뻥하고 말았죠.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내 가 가져야 될 것은 하나 뿐이요. 컨센트레이션, 집중적으로 지향해야 됩니다. 그리고 신앙적 용기 (Courage)가 필요합니다. 과거로부 터 벗어나는 용기, 주님의 뜻을 따 르는 용기, 의를 위하여 희생하는 용기. 오늘도 가만히 보면 정치적 상황을 보아도 용기가 없어요. 어 떻게 해야되는 줄 다 알고 있어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용기가 없어 서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걸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이 용기가 어디 고 간 겁니까 도대체. 이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 주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 을 환하게 알고 영원한 세계를 지향 하면서 그 마음속에 평안합니다. 넉넉합니다. 그러기에 원수를 사랑 할 수 있고 원수를 용서할 수도 있 었어요. 제자들의 배신을 잘 참을 수도 있었어요. 주님 말씀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 씀을 믿고 주안에 거할 때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새로운 밝은 미래를 맞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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