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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이기었노라 (요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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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야스퍼스는 싸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상 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운명적 상황이라는 겁니다. 부득불, 원치 않지만 우리는 싸워가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순명 적 존재란 말입니다.
첫째는 자연과 더불어 싸 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위 와 싸워야 하고, 때로는 더위 와 싸우고, 홍수와 싸우고 또 때로는 가뭄과 싸우고, 그리 고 지진과 싸우고, 무서운 바 람과 많은 재난 사건들과 싸 워야 합니다. 자연,자연이 그 리 순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 런 역경적 자연환경과 우리는 싸우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싸움이 있는 것을 압 니다. 보이지 않게 귀에 총 소리가 들리고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지마는 그러나 우리 는 얼마나 무서운 싸움을 하 고 있습니까 경제, 정치, 사 회, 문화, 이런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우리는 무한경쟁, 무 한투쟁,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 남기 참 어렵 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계 속 싸움에 휘말리고 있는 것 이예요. 그 속에서 굳게 서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하 는데 이거 하나의 싸움 입니 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입니다.뭐니 뭐니 해도 자기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다. 죄와 정욕과 욕심 과 자존심과 특별히 시기 질 투 아주 못된 마음 이런 것들 과 싸웁니다. 양심을 위한 싸 움이요, 양심에 자유를 위한 싸움이요, 나가서는 자기자신 의 율법 내가 세워놓은 율법 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싸웁 니다. 나와의 싸움, 아주 치 열한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 분 이 비오는 날 아침에 교회 에 나올 때 조금 싸우고 나왔 을 거예요. 나갈까 말까 이 겨서, 싸움에 이겨서 게으름 을 이기고 나약함을 이겨 승 리해서 이 자리에 계신줄 압 니다.
몇 년 전에 캠브리지 대학 의 콜린 렌피유라고 하는 교 수님이 계시는데, 그 렌피유 교수님의 역사 비판이 세계적 으로 논란이 됐던 때가 있습 니다. 그는 유럽 역사에 대 한 기존 학설을 아주 근본적 으로 뒤집어 엎는, 놀라운 자 기 나름의 학술을 전개해서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많 은 학자들의 생각은 유럽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뭐 그것 만 아니라 세계에 역사가 다 그렇지요만, 무기를 든 전사 들의 정복 전쟁을 통한 역사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쟁의 역사란 말이지 요. 역사를 보면 그저 책을 펴자 마자 어느 왕이 싸우고, 어느 왕이 망하고, 어느 왕이 쳐들어 가고 뭐 그런 얘기 아 닙니까 그러니까 이 무기를 든 정복 전쟁이 역사를 형성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콜린 박사님은 그게 아니 예요.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 라,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그래서 기름지고 좋은 땅을 찾아 나서던 평화로운 농업 이민, 농업 이민에 의해서 역 사는 형성 됐다. 이런 논리 를 전개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억세고 강한 군인에 의해서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농업 이민들, 즉 평화를 사랑하는 농민들 바로 이 착한 사람들 에 의해서 역사는 이루어졌다 이렇게 역사관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 한다 고 했습니다. 강자의 역사가 아니고, 약자가 지배하는 세 상이다. 역사의 의식을 한 번 바꾸어 볼 수 없습니까 승리 라는 것은 정복이 아닙니다. 승리는 남을 죽이고, 내가 사 는 뭐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참 승리 라는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승리라는 것은 빼 앗고 그리고 빼앗은 후에 허 망해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요 오히려 주고 구원하고 그리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남을 미 워하면서 스스로 통쾌하게 여 기는 그런 잔인한 승리가 아 니고요 사랑하고 감사하는 그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의에 도취해서 남을 정죄하고 그리고 기뻐하는 그런 승리가 아닙니다. 이유야 어쨌든 남 을 용서하고야 기뻐할 수 있 는 바로 거기에 승리가 있다 는 말이요. 남을 누르고 즐 기는 것이 아니고 화목하고 더불어 기뻐하는 거기에 참 승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결 국은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시 기, 질투 거기에는 승리가 없 습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승 리가 있고 어쩌면 사랑 그 자 체가 승리요, 구원이 승리요, 영생이 승리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국 사람들이 이 렇게 생각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Aptitude에 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Attitude에 의해서 성 공하는 것이다 말합니다. Aptitude 라는 것은 적성과 재능을 말하는 것이고, Attitude는 태도와 자세를 말 하는 것 입니다. 참 승리 라 는 것은 재능과 능력에 문제 가 아닙니다. 재주있다고 너 무 좋아하지 마세요. 재주있 는 사람들 뒤에 많이 후회들 하며 삽니다. 능력도 아니고 권세도 아닙니다. 이것은 환 경에 문제가 아닙니다. 역시 승리 라는 것은 자세의 문제 입니다. 어떤 자세로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 거기에 승리 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께서 나귀 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신 그 입성을 기념 하 는 그런 날 입니다. 우리가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예 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올라 갔다 초라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관식을 말하는 것 이요. 왕이 왕으로 취임하게 될 때 그 대관식에 행사중에 하나가 어린 나귀 새끼를 타 고 올라 가더라 왜요 왕은 겸손해야 되니까 그런 원리에 위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올 라 가신다 이 말이예요. 그러 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승리에서 승리로 행하시는 겁니다. 예 수님은 최종 승리만을 위해서 나머지는 모두 고통과 절망과 그리고 아주 어려운 시련으로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아 요. 승리에서 승리로 향하시 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만이 승리가 아닙니다. 현재적이 고 본래적인 승리를 스스로, 스스로 만끽하고 있는 거예 요. 자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승리, 도덕적 승리, 실존 적 승리가 먼저 있고 다른 말 로 말하면 태도적 승리 그리 고나서 저 앞에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우주적인 최종 승 리가 있더란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 습니다. 바로 눈 앞에 십자 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합 니다. 이것은 왕입니다. 남 이야 뭐라고 하던 알던 모르 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님은 왕으로, 이미 승자로서, 이긴 자로서 행사하신 것 입 니다. 이기고 또 다른 승리 를 향하여 가신겁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말씀 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 었노라."
먼저 승리를 선포하 고 그리고 최후 승리를 향해 서 나간 것입니다. 깊이 깊 이 생각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예수 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야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만 찬을 하시면서 이 성만찬에서 주신 교훈의 말씀입니다. 몇 일 후가 아닙니다.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집니다. 이 사실을 아시면서 말씀하십니 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 얼마나 통쾌한 승리 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의미에 승전 선포 입니까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무 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지와 불안으로부터의 승리 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걱정도 있 고 불안한 마음도 있어요. 이 것이 다 사라집니다. 깨끗해 지는 순간 내가 세상을 이겼 노라. 여러분 가끔 우리는 그 런 생각을 합니다. 무지한 자가 용기가 있다고요. 무식 한 자가 용기가 있지요. 그러 나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만용입니다. 문제는 지식이 문제요. 무엇이 보이 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특별히 미래에 대한 것 그리고 소망의 문제 요, 신앙의 문제 입니다. 그 런고로 가장 큰 공포는 두려 움 그 자체입니다. 내가 두 려워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예요. 왜 용기가 줄어들 고 있는 것 입니까 그것은 다른데 있지 않아요.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사도 바울 사도행전 20장 22절에 보면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 여 올라갑니다. 성령에 이끌 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 가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내 가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 을 만날는지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몸 바치고 희생하고 순교 할 각오도 돼있어요. 그러나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가 없어요. 불안해요. 여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에게 두려 움이 있다면 그런 무지때문이 예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 다. 도대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벌컥벌컥 되니까 또 무슨 일 이 있을는지.... 어떤때는 아 침 신문을 들여다 보기가 겁 이 나요. 또 무슨 일이 터 졌나 싶구요. 미래를 알 수가 없어요. 불확실한 거예요. 불 확실성 때문이요. 무지 때문 이요.
더 나아가서는 무지에 대 한 구체적 해석을 얻지 못 했 기 때문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하나님 앞에 몸 바 치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내 생을 끝내 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문제 라고요. 예수님께서 갯 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시는 모습에서 이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렇게 승리를 선포 하셨고, 십 자가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 다. 그러나 갯세마네 동산에 올라 가시면서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 고 밤새 피땀흘려가며 기도합 니다. 그럼 무슨 고민이 있 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다 알 길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 을 해봅니다마는 마땅지 않아 요. 이건 가장 현실적인 것 이예요. 그것 무슨 말씀인가 하니 주님 앞에 몸 바치기로 십자가 지시기로 결심 한 건 사실인데, 내일 아침 빌라도 법정에 나가서 불이한 재판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는 것 이것이 하나님에 뜻 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에 뜻에 대한 현실성이 문제 라 고요. 추상적 으로는 이미 결단을 했지만은 구체적 으로 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의 뜻 입니까 바로 여기에 고민이 있었던 거예요. 오늘 도 여러분 내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그저 하나님에 뜻대 로,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진리대로 그 살아요. 그 마 음 있어요. 그렇지만은, 오늘 내가 어떻게 하는 것 입니까 이 사건 앞에서 나는 어떤 태 도를 취해야 합니까 바로 이 진리에 대한 현실성, 구체성 에 문제가 있는 것이예요.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한 해 답을 얻었습니다. 확실해 집 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의미의 문제 입니다. 도대체 이 십자가에 죽음이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보상은 무엇 입니까 그 다음 은 어떻게 될 것 입니까 이 렇게 죽어가면 다음 일은 어 떻게 되는 것 입니까 이 철 없는 제자 이 한심한 세상 도 대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실패예요. 그러나 예수께서 는 이 십자가 사건을 보며 이 에 대한 의미, 이 구속 사정 의미를 확실하게 알게 됩니 다. 그런 순간 미래가 환하 게.... 십자가 다음에 이루어 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 라 이것이 승리 올시다. 무 지와 불안으로 부터 확실한 하나님의 뜻으로 향한 구체적 인 것이 환하게 나타날 때 이 게 승리예요. 또 하나는 고 독으로 부터의 승리 입니다. 여러분 뭐니 뭐니 해도 외로 움 처럼 어려운게 없습니다. 여러분 병 드는게 아픈게 아 닙니다. 병 들면 외로워요. 가난한게 어려운게 아니예요 가난하면 친구가 없어요.
구십이 넘은 어느 목사님, 아주 건강 하세요.
"가끔 만날 때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주 괜찮다고 그러세요.
"아 직도 건강해서 그래 괜찮아 요. 그러나 한 가지 좀 좋지 않은게 있어"
뭐냐고 오래 오래 같이 지내던 친구가 다 떠나 버렸어 동 연배 친구가 다 가버리고 홀로 남았어요. 동창을 꼽으면서 누구 누구 누구 정말 가까이 지내는 것 보았는데 다 떠나고 나 혼자 라고 이제는 전화 걸때도 없 어 젊은 사람한테 전화 걸면 방해 될까봐 수화기 들었다 났다 그만두지 이래서 고독 한거야. 고독이 무서운 거예 요. 외롭습니다. 다 떠나 버 려요. 이걸 극복 해야 되요. 요세도 보니까 아이들 있을 때는 시달리고 아이들 학비 보내느냐고 뭐 하느냐고 애쓰 다가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다 떠나보니까 둘이 남지요. 이 제 집은 큰데 그래 집을 큰 것을 마련하지 말았어 하는건 데 처음부터 큰 집에 쓸쓸 하 거든요. 고독하다 그래요. 고독이 무서운 거예요. 또 하나는 이해가 없다는 것이예 요. 지금 눈 앞에 제자가 있 지만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 하지를 못해요. 그 많은 주 변에 사람들이 있고 호산나 만세를 부른다고 하지만은, 예수님의 그 깊은 마음을 아 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내 뜻을, 내 희생에 의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 참 괴로운 것입니다. 이 게 사람을 괴롭혀 참 힘들게 만듭니다. 또 그 가운데
유다는 배신을 하지요. 베드로도 몇 시간에 후에 모 른다고 할 사람이요. 다 알 고 계십니다. 배신 당한 다 는 것 참 어려운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수고가 꼭 헛것으로 돌아 가는 것 갔습 니다. 그래 가장 무서운 적 이 허무주의 입니다. 내가 한일, 내가 공부한 것, 내가 애쓴 것, 내가 바닥바닥 쌓아 온 것, 이 아무것도 아니라 이 말이예요. 이 시간에 보 니 다 부질없는 짓 이었어요. 허무해요. 내가 병 고쳐 준 사람 다 어디 갔어요. 그 많 은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냐 말이예요. 다 헛 되게 되는 것 같이 느껴 집니 다. 이것을 이겨야 한다는 것 이지요. 허무와 고독, 예 수님 앞에 다가 옵니다. 그 래 예수님 말씀 하시기를
"너 희가 다 나를 버려 둘때가 왔 다. 다 떠나 갈 것이다."
이것 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말 씀 하십니다.
"내가 혼자 있 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니라. 하나님 이 함께 계세요. 엘리야가 고독해 합니다. 에덴 나무 밑에서
"하나님 나를 죽여 주 십시오."
고독해서, 외로 워서, 동지가 없어요. 이제는 할 일도 없는 것 같아요. 그 것이 고독의 무서운 고통 이 었습니다만은, 오늘 주님 말 씀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 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나님은 나를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 든 일이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습니다. 오래 오래 예원에 오신 하나님의 경륜 그 속에 역사 속에 이 사건이 있습니 다. 그걸 알고 계십니다. 이 십자가에 사건은 하나님에 능 력이요 하나님에 지혜 입니 다. 그것을 아는 순간 승리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의 사랑이 계시입니다. 엄청난 사랑이 여기 계시되고 있습니 다. 그 순간 주님은 말씀 하 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 노라"
문제에 해답은 승리 하 시고, 그리고 다음 승리로 향 하시는 것 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 말씀이 내가 이겼다 그 말은 너희도 이길 것이라는 말씀 이예요. 내가 이겼으므로 너희도 이긴다. 승리케 하는 승리 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시 는 승리 입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런고 로 너도 이길 것이다. 여기, 약속이 있습니다. 제가 6.25 전쟁 때 서해 안에서 군인으 로 있을 때 그 참 제가 마음 아팠던 것은, 우리 국군들 해 군에 군함이라는 것을 타 보 니까 군함이 요만하더라구요. 그 때 뭐 우리 한국 군에 무 장이 시원치 않았어요. 조그 만 군함 이름을 대지 않겠습 니다만은, 군함이 있는데 그 걸 내가 몇 번 타 봤거든요 그런데 미군 군함을 타 보니 까 아 이건 엄청나게 크거든 요 그걸 보고 이걸 보니까 이 걸 가지고 어떻게 전쟁을 하 나 싶더라군요. 그나마도 자 세히 보니까 군함 이라는게 나무로 만들어 졌더라군요. 하도 한심해서 함장에게 물었 어요.
"함장님 도대체 이 군 함이 어느 나라 거요

"그 러니까 이게 2차 대전 때 사 용한 건데 이게 미군 것 입니 다"
그래 이 조그만 것이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왔소"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들었어 요. 큰 군함이 앞에 오고 뒤 에 졸졸 따라 왔습니다. 그 래요 여러분 주님께서 가시거 든 우리는 그 뒤에 졸졸 따라 가면 되는 것이예요. 무서워 할게 하나도 없어요. 주님 말씀 하십니다.
"내가 세상 을 이겼노라 너희도 이길 것 이다.
여러분 승리에서 승 리로 행한다는 것을 잊지 마 세요. 최후 승리만이 승리가 아니예요. 오늘 여러분에 영 속으로 여러분의 자세에서, 여러분의 삶에 태도에서 먼저 승리가 있어야 되요. 신앙적 승리가 있고, 그 후에 저 앞 에 물리적, 정치적, 우주적, 최종 승리가 있는 것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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