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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들의 결단 (느 10:1-39)

첨부 1


9장에 기도의 대한 모든 유대민족들의 결론은 아멘! 입니다. 아멘!만 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 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기록하고 그 기록밑에 인을 쳤습니다.
이 때 도장을 찍은 사람의 이름이 1-2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23명,레위인이 17명,백성의 대표자가 44명 해서 총 84명입니다. 그리고 도장을 찍지 않은 사람은 28절-29절을 보면,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 아내와 그 자녀들 무릇 지식과 충명이 있는자가 다 그 형제 귀인들을 좇아 저주로 맹세하기를..” 귀인들을 좇아서 저주로 맹세를 했습니다.
맹세에대한 법이 민수기 30장 2절에 나옵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했습니다. 맹세는 하나님이 내리는 심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때문에 함부로 가벼이 맹세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도서 5장 2-6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손으로 한것을 멸하시게 하랴”
유대인들이 인을 치고, 맹세를 한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염두에 두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3-37절에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수준의 말만하고 “도무지 맹세하지는 말라”고 하십니다.(34) .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1)하나님 앞에 함부로 입을 열고, 급한 마음으로 말을 할 가능성이 있기때문입니다.
2)함부로 맹세해서 입으로 육체를 범제케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3)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기때문입니다.
독생자까지 주신 사랑의 아버지는 자녀된 우리가 사랑의 기초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맹세는 종종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혹시 하나님이 내가 좀 더 잘못하면 벌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동기가 되어서 맹세를 할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동기를 보십니다.
(1)두려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것 안 기뻐하십니다.
(2)의무감으로 순종하는것 기뻐하지 않습니다.
(3)사랑하기때문에 순종하는것 이것을 제일 기뻐하시는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가지의 순종의 맹세를 하나님앞에서 적은 협정서에다 했습니다.
1,통혼의 금지에 대한 맹세입니다.
30절 “우리 딸은 이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즉 자녀들을 이방 백성과 결혼시키지 않겠다는것입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통혼을 금하셨던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말라기 2장 15절에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경건한 자손들을 통하여 구주인 예수를 보내시기 위함이였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2장 11-12절을 보면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에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딸과 결혼 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녀의 결합입니다. 어떤 결합입니까
(1) 영적인 결합입니다. (2)정신적인 결합입니다. (3)육체적인 결합니다.
이 세결합중에 제일 중요한것은 영적인 결합입니다. 영적인 결합의 핵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돈보다, 권력보다, 학벌보다, 믿음이 우선입니다.
이 영적 결합을 무시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 예가 많이 있습니다. 솔로몬도 이방 결혼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는 수많은 다른 믿음을 가진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그 여인들이 그렇게 똑똑한 솔로몬의 믿음을 따라 오지 않습니다. 결국은 솔로몬이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버리고, 산당을짓고 우상 숭배를 하다가 결국은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솔로몬의 죄때문에 결국은 나라가 두동강이 납니다.

또 아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은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쁘면 즐거워하고 슬프면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미를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합이 폭군이 된것은 결혼을 잘못해서입니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기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아합에게 시집와서 온 유대땅을 바알신상으로 덮었습니다. 그래서 3년 6개월동안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않는 진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지 결혼의 이야기가 주고 받는 현장에서는 영적인 결합만큼 도외시 되는것이 없습니다. 대스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결혼하고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믿음으로 하나된 부부도 있지만, 오히려 신앙을 버린 부부도 많습니다.
결국 믿음을 잃어 버린 부부는
(1)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립니다.(모든 신령한 복을 상실당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3) 자손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3-4대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던 18세기 후반의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동네 살던 불신자요, 질이 안좋으며 전과자인의 맥스주크라는 사람의 가계도를 한 사회확자가 조사를 했습니다.

그 사회학자가 조사할 당시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은 873명이였다. 그중에 대학 총장이 12명이 나왔고, 대학 교수가 65, 목사100, 군대 장교 75, 베스트셀러 작가 80, 변호사 100, 판사 30, 고급공무원 80, 하원의원이 3,상원의원이 1명, 미국 부통령이 1명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반면,조나단 에드워즈의 친구였던 맥스 주크의 후손은 1263명이였는데, 만 4세가 되기전에 죽은 사람이 309명, 직업거지 310, 일하다가 한눈 팔아 불구가 된 사람 440명, 매춘부가 50명, 투옥된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리고 실업자가 50명이였다고 합니다.

죠다단 에드워즈의 가정과 , 맥스주크의 가정이 처음에는 별차이 없는것 같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얼마나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생생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2,안식일을 철저히 지킬것에 대해 맹세를 합니다.
31절에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에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칠년 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빛을 탕감하리라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1),하루를 구별한다는 성별의 의미가 있습니다.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즉 성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즉 성별하여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의미는 일주일에 하루를 하나님께 성별하므로 단지 하루만의 의미가 아니라 나의 시간 전체를 드리는 상징적인 신앙적 삶의 표현이기때문입니다..
2),축복과 저주의 의미가 있습니다. 순종하면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 주사”.라고했습니다. 출애굽기 20:11절에도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날을 복되게 하셨기때문에 그 날을 잘 기키면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이사야 56:2절에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 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고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에스겔 20장 12절 이하여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안식일은 주일로 바뀌어 지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 해지기 전까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토요일 다음 일요일날을 주일로 안식일을 대치해서 지킵니다.
그이유는 안식일은 장래에 그림자이기때문입니다.. 골2;16-17“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누가복음 6장5절에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림자인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의식과 제도를 갖고 있었으나 우리 주님 오셔서 마지막 속죄 양이 되셨기때문에 그 속죄의 제도와 의미가 성취되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부활을 통하여 안식일의 계명과 교훈을 적극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림자인 안식일날의 의식과 제도는 폐지되었고 참 안식일의 의미는 주안에서 주일에 발견하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 즉 주일을 지키는것입니다.

그러면 주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에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즉 성찬을 하면서 성찬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주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3,주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감사할조건이 많습니다.
4,주님의 말씀을 받는 날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주일날 밤이 맞도록 말씀을 받았습니다.
5,주님과 사람을 위해여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두가지를 할것을 본을 보여 주었는데
(1)선을 행하는 일. (2)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3,하나님의 전을 위해 물질을 드릴것을 맹세했습니다.
32-39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의 전”이라는 구절이 무려 9번이 사용됩니다.
39절에는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영국의 주석가인 켐벨 몰간은 “오늘날 하나님의 전이 더 이상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것이기는 하지만 물질은 여전히 영적인 것의 매우 실질적인 상징이다. 어느 지방 어떤 곳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중요한 집회 장소와 예배장소로서 그리고 사역장소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생명이 꺼져 가고 있는 표시요 증거다”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기 모이는 전에 하나님께서 사시지 않는다는것은 분명합니다.하나님이 사시는 전은 바로 성도의 몸입니다. 성령이 성도의 속에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모임중에 계시지, 콘크리트 건물속에 계시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건물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매우 실질적인 표시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물질을 드리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1)성전세금입니다. (10:32-33)
(2)나무를 바침(10:34) 청동제단위에 불을 계속 지피기 위해서 나무를 공급했습니다.
율법에는 나무를 바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배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체적인 명령들을 하시지 않아도 체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때,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고 부족지 않도록 드려 체워야 할줄 압니다.
(3) 첫 열매들 (35-37상)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고 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4)십일조 (37하-39)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다는것이 참으로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신자라면 달라집니다.
사도행전5장1-11절을 보면.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이 자기의 제물을 조금도 제것이라고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하나님 앞에 바쳤읍니다.
누구나 성령을 받아 거듭나게 되면 헌금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①,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인줄 알게됩니다..
②,자신은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고 있는 청지기인줄 알게 됩니다.(벧전4:9-11)
③,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전도서5:15절 “저가 모태에서 벌거 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데로 돌아가고 수 고 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을 가슴절여 깨달은 사 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칩니다.
④,하나님이 주신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보고하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누가복음12:48“.....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 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결론입니다. 우리도 입으로 그저 아멘! 으로서만 끝내지 말고, 이스라엘민족처럼, 한번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시간을 갖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그런 성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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