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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에는 시험이 있다 (느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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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느혜미아 3장을 공부했습니다.잠시 복습을 해 보면 (1)유다 백성들이 무너진 성벽가운데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물을 통과시키는 양문을 제일먼저 회복시킨것을 통해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먼저 회복되어야 할것이 “참된 예배”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참된 에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시는데 ,하나님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되어 야 한다고 했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0:24절 “내게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참된 예배드리는 곳에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장을 통해서 받은 두번째 교훈은 팀웍이 중요한데 , 느혜미아는 성벽건축에 있어서 자기 이름을 빼고 주변의 일군들의 이름을 기록하므로 자신보다 주변의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느혜미야의 넒은 마음을 본받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벽이 지어져 가는데 오늘 4장1절을 보면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라고 했습니다.
산발랏이 성 건축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한 이유는
사실 느혜미아가 유대총독으로 도착하기 전에 유대는 산발랏이 통치하고 있던 자기영역이였습니다. 그래서 유대는 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계속 남아 자신의 통치속에 있기를 바랐으나 , 아닥사스다왕의 절대적신임을 받았던 느혜미아가 유대총독으로 갑자기 부임해 와서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유대의 힘을 키우니 그 지역에서 힘의 불균형이 생기므로 산발랏과 그의 동료들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자신과 동료들의 권력과 부귀를 상실할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합니다. 어떻게 하든 성벽건축을 막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첫번째 채택한 전술이 심리전입니다.
“비웃음의 말”을 쏟아 붙는 것입니다.

전쟁에도 심리전이 있다고 합니다. 심리전을 처음으로 펼쳣던것은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이였다고 합니다. 미군과 접전중이던 일본군은 미군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송을 흘려 보냈습니다. 모소리의 주인공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이였다고 합니다.
그 여인에 목소리엔 “그리움‘과 ”구슬품“이 한껀 담겨져 있었습니다.
“짐 부디 빨리 돌아오세요. 부디 살아 돌아 오세요.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적당히 싸우다가 얼른 돌아오세요. 위험할때는 피하세요. 전쟁에서 죽는 것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개죽음이니까요” 이런 방송을 계속해서 내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이 심리전에 많은 미군들이 휘말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의를 상실한 채 이제나 저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심리전에 위력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바로 이와 같은 “비웃는 말”로 유대인들의 성벽건축의 의지를 상실케 하고자 심리전을 썼는데 그 말을 구체적으로 기록한곳이 2-3절입니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 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했습니다.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미약한”이란 말은 “시든, 비참한”이란 뜻입니다. 시든꽃과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라고 혹평을 했습니다.그러면서 일련의 질문을 던지면서 당혹케 만듭니다.
(1)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즉 시든곳과 같은 연약한 너희들이 대적으로 부터 그 성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과연 견고한 성벽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제사를 드리려는가”라고 했습니다.성을 재건하는데에 기도와 예배를 많이 들여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가 이말은 “하나님의 도움이 어디 있냐 하나님이 도우셨다면 성벽이 그렇게 무너졌겠느냐 다 쓸데 없는 짓이다“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3)“하루에 필역하려는가” “ 성벽재건이 얼마나 힘든일인데 아마 시작하자 마자 곧 하루만에 중지하고 말거다” 라고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4)“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너희들이 사용하려는 성벽 자재는 이미 불로 탄것이기때문에 내구성이 없다 그것으로 지어바짜 든든하지 못하기때문에 무너진다”는것입니다. 옆에 있던 도비야는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하며 비웃습니다.

이 조롱의 말은 황폐한 예루살렘에서 소망없이 절망하며 살아왔던 유대인들의 아픈 가슴을 꼬찝어 뜻는 말입니다. 이제 막 힘을 내어서 무언가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할 수 없다”는 성벽재건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사탄은 심리전을 씁니다.
“비웃음의 말”을 통해 많은 성도들을 좌절시킵니다.
영국의 비평자이자 작가인 토마스 갈라일은 비웃음을 “악마의 웃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섬에서 악령의 역사를 받는 청년과 같이 기도한적이 있습니다.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나를 옆눈으로 싹 쳐다보면서 야릇한 비웃음을 보냅니다. 그 비웃움속에 담긴뜻은 “너까지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뜻이 내포되어 있는 웃음입니다. 그때 그 비웃음은 아주 가슴을 섬찟하게 하면서도 대적하고자 하는 나의 용기를 좌절시키는 어떤 그런힘이 있음을 체험한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예수님를 담대히 의지하고 대적하니 그 청년에게서 도망나가는 것을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와같이 비웃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모욕할때가 많습니다.누가복음22:63-65절에 예수님도 시험받을때 군병들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조롱을 보냈습니다. 23장 35-37절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동안 군중들을 통해서 조롱했습니다.. 히브리서11장 36절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도 조롱을 당하였습니다만 그들은 다 참고 이겨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누가 하나님의 일을 좀 하려면 “저 사람은 직없이 없어 빈둥빈둥 노니 시간이 많아서 저렇게 열심히 하지 ”라고 하며 조롱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는 당사자는 그 소리를 듣자 마자 일할 맛이 싹 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할일이 없어 이러고 잇는 줄을 알아 나도 바뿐 사람이라고, 이런 치사한 말을 듣니 교회일 안하고 말지”하며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토요일이면 교회청소를 합니다. 작년에 청소를 교구별로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힘이 들기때문에 감사의 사례를 조금 표하고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분을 세우자고 해서 한달에 한번만 교구식구들이 나와서 청소하고 나머지는 그분들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 까지 청소를 합니다.
그러나 매주 첯주에 교구식구들하고 함께 청소할때 ,“저 사람들은 사례를 받으니 저사람들이 해야지 우리가 뭐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 ” 라고 하면서 대충대충하다가 먼저 가버립니다. 그 말을 듣는 청소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상처가 되버립니다. 물질이전에 그저 하나님의 성전을 쓸고 딱는다는 감사와 기쁨을 좌절시켜 버려 청소할 맛이 떨어져버리게 하는것입니다.
또 등록한지 얼마 안되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려고 하면 “도대체 교회나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저렇게 설치는 거야 조용히 좀 지내지”하며 기를 죽입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다 그렇게 했어” 하면서 일하려던 사람의 기운을 빼버립니다.. “그래 나는 교회 나온지 1년 밖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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