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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류의 범죄타락 (창 0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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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말 씀을 떠나서는 존재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으며 범죄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인류가 범죄타락 했을때 어떠한 결과가 나 타났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인간은 범죄후 수치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7절)

인간이 범죄 이전에는 수치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2:25절 에서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 다. 이렇게 범죄하기 전의 인간은 떳떳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나서부 터는 수치심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수치는 거룩한 하나님 형상을 상실한 인간 상호간에 느끼는 오염된 감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엡2:10) 즉 아담 과 하와는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 도 걸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는 순수하고도 순결한 자아의 모습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본래의 모습이 상실되는 타락을 가져옵니다. 마치 소금이 그 맛을 잃어 버리듯이 성도가 범죄하면 소중한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딤전6:5)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하나님의형 상을 잃어버리고 인위적인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수치를 을 가리는 제 2의 아담과 하와가 되지않기를 바랍니다.

2.인간은 범죄후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8-10절)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던 인간이었기에 항상 하나님 가까이에서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였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난 후에 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었습니다. 기쁨고도 즐거운 교제의 대상 이었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계6:16) 본문 8절 에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은지라"라고 했습니 다. 환한 얼굴에 그림자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던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으로 비참함이 찾아왔습니다. 공포에 떨면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불안하여 나무 뒤에 숨어있는 모습 이야말로 후회막심한 노릇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성취감과 평안이 제공 되는 줄로 알았는데 너무나 엄청난 낭패에 참담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은 가슴속 양심의 자리에서 메아리되어 끝없는 책망으로 고동 칠때, 짓누르는 죄의식은 점점더 무거워져 견디기 힘들지경에 이릅니다.뿐 만아니라 두려움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고, 더구나 간장을 쥐어짜는 듯한 후회를 머리를 흔들며 가슴을치며 토해보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되고 말 았으니 어찌 다시 돌이길수 있겠습니까 기껏 최선의 방법을 강구한것이 나뭇잎 사이로 도망가 피하는 것이었습니 다. 실로, 가엾은 인류의 시조 아담과하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찌 이 것이 그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수많은 세월이 지나간 오늘날에도 범죄하 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부질없이 도망갑니다. 모세는 하나님의말씀을 거 역하는 자에 대하여 (레26:36)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 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 요 쫏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범죄한 영혼 은 도망갑니다. 말세에 범죄한 영혼들은 산과 굴과 바위틈에 숨어서 어린 양의 진노를 피하려 한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계6:15)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하였을때에 도망갔습니다.(욘1:3) 그러나, (욥34:22)에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눈과 진노를 피하여 숨을수 없었 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범죄하고도 숨을 곳 이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교제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 입니다.

3.인간은 범죄후 인간관계에 금이가기 시작했습니다.(11-13절)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왔을때, 곧이어 인간과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며 복종해야 할 관계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전가시키기에 여념이 없 었습니다. 모든 잘못이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벌을내리소서! 하는 책임과 사랑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자기자신만 생각하는 삭막한 관계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소리만 높아가고 반목과 저주 는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비극적인 인간관계가 마침내 시작되고 말았던 것 입니다. 죄를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일은 아담 하와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후 로 죄악에 젓은 인간들의 생활속에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기위하여 기도하며 기다 리고 있는동안 산 아래에서는 40일이 가깝도록 내려오지 않는 모세를 원망 하며 포기하고 백성들과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 정경을 보고 아론을 책망하니 아론은 백성들의 성화에 못이겨 할수없이 만들었노라고 그 책임을 백성들에게 떠넘겼습니다.(출32:22-24) 예수님을 재판하였던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님을 놓을수 있는 권세가 있 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정당하게 선포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아무런 혐의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권세와 정치적인 야심에 민감한 빌라 도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부당한 입김에 아무 일도 할수 없었습니다. 오 직, 정치적 인기와 권력을 잘 지탱하는 것 만이 최대의 관심사 였기에 부 당하고도 억울하게 죽어가야 하는 한 생명에 대해서는 눈감고 넘어갈수 있 게 했던 것입니다. 빌라도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인기를 위해서는 하나님 의 아들께서도 희생되더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빌라도의 본래 속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법을 바로 집행하며 선한 정치인 인양 거 드럼을 피웠으니 곧, 예수님의 재판과 죽음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면서 군중들의 책임 이라며 대야에 손을 씻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전가는 결단코 그 죄가 용서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이겠지마는, 만약 범죄하였다면 자기의 죄를 자복학도 인정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모든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4.인간은 범죄후 저주와 동시에 긍휼있는 은혜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14 -21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뱀과 그리고, 심지어는 땅까지 저주 하셨습니다. 그러나,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어 구원의 은총 을 베푸시겠다고(15절) 약속하셨습니다. 그 예표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 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나, 사람은 사랑하십니다.(롬5:8) 또한, 징계중에 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롬5:20-21;히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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