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엘리야 (왕상 19:9-10)

첨부 1


엘리야는 지금 호렙산(시내산)에 와 있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왕상 19:9-11)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 ‘크고 강한 바람’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이 지나간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다.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며, 바람 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불 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이라는 것을 먼저 깔아 놓으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다.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시는 것은 세미한 음성 자체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서 바람, 지진, 불을 보내셔서 대비시키시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사건과 연결해야만 드디어 이해가 가능해진다.
“엘리야야, 너는 내가 무엇과 같기를 원하느냐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 지축을 흔드는 지진,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이었으면 좋겠느냐 아니다 나는 지금은 세미한 음성 속에 거하느니라”
엘리야의 심정은 지금 이런 것이다. ‘하나님, 나는 못하겠습니다. 어차피 이세벨로부터 저를 보호하시지 않고, 그녀를 쳐부수는 데까지 힘주시지 않으실 것이라면 갈멜산에는 왜 불을 보내셨습니까 비는 왜 보내셨습니까’ 엘리야는 불만 투성이다. 엘리야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능력으로, 아합을 뒤흔드는 지진과 능력으로, 모든 불의를 다 불태워 버리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렸다. ‘왜 세미한 음성으로 오십니까’ 엘리야는 하나님께 따지고 싶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에 두려운 심판주로,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일단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 놓고 본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럴 경우 본인 스스로가 신앙인인지 불신앙인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는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대문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마 4:23-25)”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는 병고치는 사건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이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왜 그럴까 도대체 우리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확보되어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 언제까지인가 그것이 엘리야의 사건에서 대표적으로 나온다.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 1:23-26)”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 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17)”
이는 주의 제자들과 보낸 자들이 행한 능력들이다. 도대체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허락되어 있는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에게 기도를 하면 모든 병자가 다 낫는가 아니다. 왜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엘리야의 사건 속에 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0-12)”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 구원의 진리를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셨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18-23)”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장이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뿌린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 비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비유’ 등이 들어 있다. 제자들은 ‘왜 비유로 말씀 하십니까’ 물었다. 그러자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하신다. ‘있는 자’는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깨닫는 자나 볼 수 있는 자는 그것으로 인해서 이익을 취할 수 있으나 볼 줄 모르는 자는 모르기 때문에 몽땅 놓친다. 그것이 천국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거듭난 자만이 천국을 본다. 지금 엘리야의 큰 소원은 이것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내가 아는 하나님을 저 원수들이 다 알게 해주십시오. 이세벨도 아합도 알게 나타나 주십시오’ 그런데 이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안나타 주시는 것이 엘리야의 ‘약오름’이다. 엘리야의 ‘약오름’ 같이 우리도 신앙생활에서 스스로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이 ‘약오름’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다. 나는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살았고 저 원수는 반대로 살았는데 저 원수는 축복받고 나는 죽어라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다. 약이 오른다. 얼른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도 데려가지 않으신다. 그 엘리야의 심정이 우리의 심정과 동일하다. 성경은 천국의 비유를 ‘씨뿌리는 비유’라고 했다. 받는 쪽의 이야기가 아니라 뿌리는 쪽의 이야기이다. 지금 뿌리는 것으로 비유를 들고 있는데 우리의 관심은 밭에 가 있다. ‘돌짝밭이 되지말자’ ‘가시떨기를 갖지 말자’ 그러나 이것은 분명 ‘씨 뿌리는 비유’이다. 씨를 뿌리면 대부분은 주인이 원하는 장소에 떨어지지만 일부는 다른 곳에 떨어지고 자라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누가 씨인가’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눅 13:18)”
‘씨’는 천국의 복음이요 천국의 말씀이다. 천국 복음이 지금도 뿌려지고 있다. 길바닥에 뿌린 씨는 사람에게 밟힌다. 짐승(사탄)에게 먹힐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탄에게 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세상 사람 앞에 천국을 소개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국은 거듭난 자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모습으로 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오해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이 모든 사람 앞에 ‘보란듯이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주 넘어진다. 설명할 수 없다. 천국은 집어 삼킬 수 있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
‘천국’이 환난이나 핍박 정도의 방해를 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다. ‘천국’이 그의 능력과 영광을 감추고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22)”
천국은 그까짓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때문에도 버리고 세상을 택할 수 있다고 한다. 천국은 그렇게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신비이다. 때로는 그 말씀이 말씀 노릇하는 곳에 가면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한다. 밭이 아닌 씨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24-30)”
세상에는 가라지도 있다. 그러나 뽑지 않는 이유는 곡식이 다칠까봐이다.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하신다. 곡식과 잡초 중 잡초가 월등하게 잘 자란다. 세상에는 안믿는 이들이 더 왕성하다. 그러나 반드시 추수할 날이 온다.
“추수 때에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리라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에 새가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0-32)”
천국은 겨자씨로 시작한다. 작은 씨로 시작하지만 큰 나무가 된다. 천국은 마치 겨자나무가 지금 씨로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와있다. 그럼으로 ‘영광도 제 모습으로 안 보이는 것’이다. 가뜩이나 작은 씨를 땅속에 묻어 놓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희망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천국의 신비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 13:44-45)”
누룩은 처음에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부푼 뒤에야 차이가 드러난다.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은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지금 천국이 이 세상에 와 있는 모습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두고 기버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장면인가 밭에 감추인 보화가 천국이다. 아는 사람만이 안다.
“또 마치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5)”
얼마나 값진 진주인가,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아는데 구별이 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7-50)”
천국은 지금 판정을 내리기 위해 와 있지 않고 초대하기 위하여 와 있다. 심판은 보류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고 그의 능력이 선포되는 날은 동시에 심판도 행해져야 하기 때문에 심판을 연기하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영광은 감추실 수 밖에 없게 들어와 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이요 신비이다. 교회 안에서도, 믿는 자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섞일 수 있다. 천국은 들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영광과 능력을 감추고, 심판을 보류하고, 초대의 모습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감추어진 보물로, 씨앗으로 자기의 영광을 보류하고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명해진다. 우리에게 능력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렇게 쓰셔야 할 일이 없는 한 우리가 누구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세상 사람들을 ‘항복시키기 위해서’ 능력이 등장하는 일은 적다.
천국이란 국토적, 영토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 구름 위에 있던 땅이 여기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권자 노릇을 하시면 거기가 천국이다. 내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사탄의 통치권과 하나님의 통치권 가운데 지금 하나님의 통치권이 확장되는 만큼 사탄의 통치권이 물러간다. 사탄의 통치권이 밀려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가장 쉽게 표현하면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대비시킨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2-5)”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세상에 온 사람이다. 그 유일한 목적만을 위해서 온 요한이 혼동되었다면 우리는 더 더욱 그럴 것이다.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탄의 권세로부터 내가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다” 이 말을 듣고 요한은 안심하고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엘리야가 당했던 일, 요한이 지금 질문하고 있는 일이 우리 모두가 원통해 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싫은 일이 아닌가 우리는 보는 자들이다.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구원을 얻었는가를 안다면 오늘 우리가 혹시 우리의 목숨을 제물로 내어놓는 자리에 초대받는다 할지라도 얼마나 복된 일인가 엘리야를 기억하자. 세미한 음성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순간에 강한 바람을, 지진을 부르려고 하고 있는 것과 대비하여 본다면 우리는 새삼 새롭게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초대와 신비에 미쳐서 슬퍼할 틈도 없고 괴로울 틈도 없을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