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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증언 (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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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자연 그리고 역사 속에서 능력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잇습니다. 이런 확신이 기독교 신앙의 내용에 기초를 이루고 잇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은 봄을 주셨다가 여름을 주십니다. 어는 누가 가을을 만들었습니까 어느 누가 겨울을 만들었겠습니까 이건 전적으로 사람들이 믿던 안 믿던 하나님이 주관 하시여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나라를 지배하고, 주장하기 대문에 나라가 흥했다가 망했다 하는 것과, 개인이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과, 역사가 이렇게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가운데 놀라운 지도자가 있는데, 그 사람은 모세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굉장히 뛰어난 지도자인데, 그가 바로 이런 확신을 가지고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 내어 바로 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한 이스라엘의 구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라는 사람은 본디 아주 뻣뻣하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주먹으로 사람을 때려 죽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하기 짝이 없어, 정말 오만불순했던 장래성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길이 순탄할 리 없습니다. 그는 인생살이에서 시달리고 고생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고 난 다음, 비로소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난 후부터는 세상 누구보다도 온유했습니다.

모세는 굉장히 오래 살았습니다. 120년이나 살다가 죽었는데 죽으면서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씀이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는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의 증언이라고 하는데 그 모세의 증언을 들어봅시다.
"폭력은 반드시 후회한다." 이것이 그의 첫째 말입니다. 폭력 행사는 반드시 후회한다.
사람이 급할 때는 아주 폭발적인 힘이 발생됩니다. 또 정신을 집중하면 기왓장 아니라 벽돌도 깨는 힘이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요 정신력입니다. 급할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의 제동 장치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만용을 행하거나, 망언, 망동을 하거나, 허튼 소리를 하게 됩니다. 어지간히 교양 없고 수양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면 이런 일을 범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모세의 모습에서 그러한 경우를 몇 가지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애국적인 의분에서 사람을 때려 죽였습니다. 당시 히브리 민족의 에집트 민족에게 속박되어 눌려 살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본에 눌려 살때처럼 말이지요. 하루는 이집트 삶과 자기 백성의 사람이 뜰에서 싸우는 것을 봤습니다. 히브리 사람은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이집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자기에게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데 모세는 그것을 복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이때다 하고 주먹 한 방으로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핏줄의 힘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죽이고 나서 "저놈 묻어 버리자." 하고 함께 묻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을 없습니다. 그 다음날 그 사실이 탄로되었습니다. "저놈 잡아라! 살인자 잡아라!" 그는 살인자였기 때문에 도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궁전을 버리고 삭막한 광야로 도피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고 나면 속이 시원합니다. 간 여러분들도 경험했겠지만 친구에게 화가 나면 욕을 퍼붓지요. 별스런 욕을 다하고 나면 속이 시원합니다. 후련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반드시 후회가 옵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 땅을 벗어나 광야를 돌아 다닐 때입니다. 백성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켜서 고기를 먹게 하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샘을 만들어 물을 먹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마라라고 하는 곳에 갔을 때 갈증으로 죽겠다고 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힘있는 사람들이 와서 모세에게 "우리를 그냥 애굽에 두지, 끌고 나와서 광야에서 왜 죽게 하느냐." 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하나님 이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모세가 이들을 다 이끌고 므리바라고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큰 바위들이 많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 내가 이 백성들에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서 마시게 하리라." 그런데 모세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물을 마시게 하리라. 전부 오라." 하면서 반석을 두번이나 딱딱 때렸습니다. 화가 나니까 바위에다 화풀이를 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들기네. 지팡이가 안 부러지나" 호기심으로 바라 보고 있는데 반석에서 생수가 콸콸 솟아나는 겁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물을 마시고 야단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물을 내서 마시게 한다고 했지, 네가 물을 내서 마시게 하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지팡이 가지고 반석을 두들기라고 했느냐 너의 그 혈기 가지고는, 그 폭력 가지고는 안 되겠다. 너는 목적지에 들어 갈 수 없다."그래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하고 목적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학생 여러분! 우리는 신경질이 나면 나중에야 어찌되던지 그냥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고 마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곧 뒤따라 후회가 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사람들이 하와이 진주만을 새벽 미명에 가미가제로 무자비하게 폭격을 해서 군함을 수장시켜 버리고, 지상 천국을 지상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사건이예요. 일본은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자꾸 전진했습니다. 그들은 승리를 장담하면서 자꾸 폭력, 전쟁을 일이 켰습니다. 그 결과 이 폭력 행사가 일본을 승리로 이끌었습니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지 않았습니까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 사람들은 얻어 터졌습니다. 해군도 죽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자발적으로 애국심이 발동해서 너도나도 지원을 하고 태평양에서 일본과 싸웠습니다. 지휘관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이렇게 작전을 세워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는 말이 "진주만을 기억하라. Remember the pearl harbor." 그러면 군인들은 진주만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나가면서 생각합니다. 일본군이 진주만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결국 미국은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역사상 최초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 폭격을 맞았고 8월 9일 나가사키에도 폭격을 맞았습니다. 폭력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1950년 6월 25일, 공산당들이 남침해 왔습니다. 나는 그때 개성에 살았습니다. 나는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때 남쪽은 정말 무방비 상태였는데 거침없이 쏟아져 내려 왔습니다. 공산당은 "우리 강철같은 조선의 인민국"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내려 왔습니다. 국군들은 자꾸 후퇴합니다. 정부도 후퇴하고, 그러나 나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천 상륙 작전, 낙동강 작전으로 인해서 공산당들은 모두 다 퇴로가 막혀 항복하고, 쫓겨가고 말았습니다.

1983년 9월 1일 바로 며칠 전이지요. KAL 여객기를 소련은 미사일로 추격했습니다. 269명이 사할린 근처 바다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련은 잘했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때로부터 퇴고 지도자 안드로포프는 병들어 작년 연말에 죽어 버리고 말았고,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지휘한 로마노프는 84년 금년 6월 초에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폭력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마틴 루터 킹, 그는 훌륭한 흑인 목사입니다. 그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가지고 겨례를 위해서 의회 석상에서, 거리에서, 감옥에서 평화적인 방법을 가지고 고요한 혁명을 했기 때문에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폭력은 반드시 후회한다. 오히려 내가 죽고, 내가 지고, 내가 후퇴하고, 내가 지금 항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폭력 말고 평화적인 방법, 여기에 최후의 승리가 있다고 모세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운명은 개척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악보 가운데 여기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인간은 운명에 맡겨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은 개척해야 됩니다.
모든 인류 가운데 히브리 사람,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우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불행한지 모릅니다. 병자, 쩔뚝발이, 불구자, 천치, 가난하고 1년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해야 겨우 3번, 안 올 때는 간신히 그저 두번, 그리고 목말라 견딜 수 없는 나라입니다. 길가면 먼지가 푹신 푹신, 비가 조금 오면 길이 질퍽 질퍽, 돌무더기 여기 저기,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땅을 파도 물이 안 나옵니다. 그 나라에는 석유도 안 나옵니다. 정말 불쌍한 나라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싸여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430년간 애굽에게 눌려 살았습니다. 바벨로니아에게 눌려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로마에 눌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운명이라는 것은, 소위 팔짜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그것보다는 그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개척하고 처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지난 70년대 우리 나라에서는 새마을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는데, 그 새마을 운동이 어디서 온거냐 하면 이스라엘에서 배워 온 것입니다. 기프츠 운동, 모샤브 운동에서 배워 온 것입니다. 그들은 집단 농장을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을 하다가도 그만 두면 기부츠에 가서 농사를 짓게 됩니다. 군인도 합니다. 교수도 합니다. 농민도 합니다. 공무원도 합니다. 이 민족정신, 통일된 민족 정신을 가지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했습니다. 지금 국민소득이 일본은 만 불이고 스위스가 만삼천 불이라고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어디어디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GNP가 얼마인지 똑똑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에서 몰래몰래 들어 오는 외화가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정말 번영했습니다.
일본이 얄밉고 원수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들이 운명을 개척했습니다. 그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간사스럽게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했고, 점심때는 "곤니지와" 했습니다. 그러나 패전 후에 일본은 아침에 만나면 "건설" 점심때 만나면 "재건" 그랬습니다. "건설 재건, 초토화된 우리 나라를 재건하고 망한 우리 도시를 건설하자." 이러한 마음으로 저들은 어떤 때는 미인계도 쓰고, 어떤 때는 미소 정치도 쓰고, 어떤 때는 희생적으로 노력도 하고 해서 그들은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밉지만 일본 사람을 따라 가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우리에게는 소위 운명적인 요소가 있어요. 나는 태어 날 때 엄마 뱃속에서 나는 남자가 되어야지 하고 된 것이 아니예요. 나와 보니까 남자지요. 여러분도 나는 여자가 되어야지. 앞으로는 레이디 퍼스트가 될 것이니까, 여자가 되야지 하고 여자가 된 것이 아니예요. 나는 태어나고 보니까 박씨 집안에 태어 났습니다. 이건 운명적입니다. 숙명적입니다. 이건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얼굴이 이렇게 생겼다. 채질이 이렇다 저렇다 이건 어느정도 운명적입니다. 그러나 이 운명에 도전하고, 이 운명을 개척하고, 이 운명을 요리해서 자기 운명에 대해 책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운명에 맞긴다면 여러분은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운명에 맞기면 팔자소관이니까 아다리가 잘 맞으면 되겠지 할 수 있습니다. 글쎄, 운이 좋으면 A학점 맞겠지. 놀기만 하고 디스코로 하늘을 찌르기나 하자. 할지도 모릅니다. 노력하는 것이 운명에 대해 개척합니다. 운명은 개척해야 합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큰 비극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앞 못보는 소경이예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말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불쌍합니다. 징징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교육하는 설리반 여사가 그 아이를 가르치면서 인내로 끈기있게 투쟁하면서 애써 노력해서 20세기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위를 얻었습니다. 교육 사회사업에 종사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헬렌켈러 여사입니다. 운명에 도전했습니다. 팔자타령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운명에 도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왜 남들은 안 걸리는 문둥병에 걸리는가,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보자 팔자타령하지 않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돌처럼 굳게, 쇠처럼 강하게 노력하고 애써서 훌륭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한하운 씨입니다.

노력, 투지, 근면, 신앙, 이것은 그 사람의 장래를 창창하게 여는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이 잘 되려면 근면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데 있습니다. 한국이 이제 잘 되려면 옛날처럼 위조 왕국, 가짜 천지, 무식한 영혼들의 횡행, 세계에서 못된 것은 모두 골라서 모방하는 일부 청소년들, 재직시에 밑천이나 빼자고 하는 실속 차리는 고관대작들, 권력과 결탁하여 돈놀이나 하는 일부 복부인, 종교나 신앙을 미끼로 하는 거짓 교사들의 횡행, 이들을 따라 다니는 우부 우녀들, 이들이 한국에서 없어지면, 그리고 근면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에 근면하게 일하면 운명은 개척되서 한국의 미래는 찬란하게 개척될 것입니다.

끝으로 승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승리로운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표준이기 대문에,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삼았던 바울이 가는 곳마다 승리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도 그렇게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승리라고 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눈 앞에서 이기는 것, 내가 설득시켜서 이기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지금은 지더라도, 지금은 당장 양보하더라도 지금은 당장 쫓기더라도, 뒤에 가서 이기는 것이 승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보자는 놈, 무섭지 않더라." 하지만 "내일 보자!' 이 대목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져, 그러나 내일 보자."

보세요. 80년도 이후 83년도까지 폴랜드의 자유를 위해 일했던 바웬사, 그는 총칼을 갖고 달려드는 야루젤스키와 더불어 대항해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기기도 했지만, 그들이 83년에 감옥에 갇혔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웬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야루젤스키는 세상에서 가장 악명높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이 세상에 악명높은 사람 둘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김일성, 하나는 야루젤스키에게 딱지가 붙고 말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살내려고 많은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고,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거꾸로 달아 죽이고, 물에 던져 죽이고, 사자굴에 집어던져 죽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로마는 없어졌지만 바로 그 자리에 바티간 로마 교황청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로마에 가면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 원형극장 콜롯세움입니다. 가 보면 황제가 높이 앉아서 기독교인 둘을 갖다 놓고 싸움을 시켜서 황제 마음에 들면 엄지손가락을 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지손가락을 내리는데, 그러면 기독교도의 가슴에 칼이 꼽힙니다. 엄지손가락을 들면 살려줬던 그자리에 지금은 큰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로마가 이겼습니까 기독교가 이겼습니까 죽이던 사람이 이겼습니까 죽임을 당했던 사람이 이겼습니까 최후의 승리는 기독교에게 돌아갔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립니다. AD 312년, 로마황제 콘스탄틴 대제는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것은 왕위를 넘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위를 노리는 6명을 다 무찔러 버리기도 했습니다만, 로마 북방에 밀바우스라는 다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막강한 힘을 가진 막센듀스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들 물리치기란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왕위를 빼앗길 것 같고, 나라를 빼앗길 것 같고, 생명까지도 빼앗길 것 같았습니다.
안타까와서 12시쯤 밖에 나가 한숨을 쉬고 하늘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하늘에 태양은 아닌데 별과 같은 또하나의 빛으로 나타납니다. 눈여겨 보니까 거기에 십자가 모양이 나타납니다. 징그러운 십자가, 꼴보기 싫은 십자가, 저 십자가 때문에 내가 재수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크게 나타납니다. 크게 나타나더니 그 밑에 "엔토 토니케!-이것으로 싸워라." "내가 기독교도 싫고, 예수쟁이도 싫지만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기고 볼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서 참모들을 모아 놓고 "어서 모든 군기로 십자가 기를 만들어라." "대왕이시여! 이 십자가는 그 징그러운 예수장이들의 상징입니다." "잔소리말고 만들어라. 그리고 방패 앞에서 십자가를 그려 붙여라."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막센듀스가 패배하고 콘스탄티가 대승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쁨으로 그 다음해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국교를 만들었습니다. "엔토 토니케-이것으로 나가 싸워라."

여러분! 승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 때 인생의 싸움에 승리하고, 전쟁에 승리하고,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때문에 승리로운 신앙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폭력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폭력이 아니라 평화롭게 내가 죽음으로써 여러분이 승리하는 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운명은 개척해야 합니다. 팔자소관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다리가 좋아야만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운명을 어떻게 개척하는가. 운명을 개척하여 여러분의 장래가 창창하게 열리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어 활달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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