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심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호 04:1-19)

첨부 1


본장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체없이 고발합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갖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이스라엘에게 없는 것 세가지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아는 지식도 없고”(4:1하)

(1).진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영어로는 페이스풀레스 (faithful-ness)로 미쁘신 분, 신실하신 분,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진실리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진실’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결혼 생활에서 이 진실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말 ‘가난한 때나 부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 어떤 형편에 처해도 이 남자를 내 남편으로 이 여자를 내 아내로 맞아 사랑하겠다’ 고 한 그 말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교호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사랑하고 복종하므로 지켜야 됩니다.
이스라엘은 남편 되는 하나님을 떠나서 영적으로 간음을 했습니다.

(2).인 애
‘인애’ 라는 말은 헌신이라는 말입니다.
종교성은 있고 경건한 분위기는 있는데 하나님 앞에 진실한 헌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의 제물을 벋기를 원하십니다.
한 달에 십만 원 받은 사람이 쪼개고 또 쪼개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 정성과 백만 원을 바쳐도 쓰고 남은 것을 바치는 것과는 정성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희생하고 모든 것을 절약하고 허리를 동이면서 시간과 물질과 생명까지 바치면서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인애도, 헌신도 없고 희생도 없었습니다.

(3).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은 호세아의 설교의 첫 부분인 4장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 은보통 지식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된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무엇을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지식은 마귀도 갖고 있습니다(약2:19).
(헬,기노스코)는 부부간의 관계를 말할 때 사용하는 낱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알고 남편이 아내를 아는 이와 같은 깊은 지식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교제, 들이 하나가 되는 상황,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안다는 낱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마12:7,호6: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차도 끌여주는데 남편이 없는 동안에 다름 남자와 만난다면 그 남편에게 사랑을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없는 결혼 생활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 가정은 이미 죽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원치 않으십니다.
헌금이나 몇푼 바치고 봉사나 몇 번 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그런 봉사는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자기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가하고 살아갑니다.
인간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이기적인 관계입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니까 결혼하자고 하고 조금만 억울하게 생각되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정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전심을 요구하십니다.
반심으로 적당히 사랑하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쳐다보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반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나까. 정당히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손해가 나고 실패해도 좋으니 위선자가 되지 말고 진실한 자가 되십시다.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을 갚으며 헌신과 희생이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하나님을 거부한 결과
“내 백성이 자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4:6하)

하나님과의 약속도 지킬 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도, 인애도, 희생도 없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도 맺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은 이스라엘이 맞이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 뿐이었습니다.
교활한 여자가 남편을 속이며, 다른 남자에게 왔다갔다 얼마동안을 살 수 있으나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 분명하거늘 하물며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을 속인 결과 찾아올 것은 하나님의 진노밖에 없습니다.

(1).도덕적인 타락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4:2)

‘사워’라는 말은 거짓을 말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불못에 들어갈 죄인이 살인자와 간음자와 거짓말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유기를 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정화의 역사를 받지 못하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현상은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입니다.
사회정의의 규범이 상실되므로 살인이 일러납니다.
도적질이 횡행합니다.
성적 범죄가 성행합니다.
강력범이 발생합니다.
그들은 이 모든 죄를 범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일 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비극이요 비참입니다.

(2).환경 파괴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4:3)

자연의 파괴는 일찍이 아담이 범죄한 후에 이 땅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인간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따라오는 것이 환경의 파괴현상입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의 붕괴현상 일어나고 지진과 가뭄과 홍수와 깜부기 재앙이 느닷없이 덤벼듭니다.
문제가 자꾸만 엉켜지고 풀어지지 않습니다.

(3).지도성 상실
“내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4:4하)

자연세계의 파괴 뿐 아니라 인간세계에도 질서가 파괴됩니다.
지도성을 상실합니다.
백성들이 지도자의 말을 신임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말을 청종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그 위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지도자나 백성이 일반이 되니 사회가 혼란을 바로 잡을 자가 없습니다.
질서가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공포와 불안 뿐입니다.

(4).국가적인 재앙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4:7)
이 땅에는 무수한 나라가 생성되기도 하였지만 전쟁의 제물이 되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나라도 많습니다.
번성하고 영화를 누릴 때는 천 년 만 년 위세를 떨칠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내신 동풍 한번 건듯 불면 자취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피할 국가도 개인도 없습니다.
국가적 재앙은 수치와 모멸을 불러 옵니다.

(5).개인적인 저주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라”(4:10)

이 모든 재앙은 결국 개인에게 저주로 임합니다.
사업에 실패가 옵니다. 가족에 우환이 옵니다. 이웃에게 배신이 옵니다.
날마다 일해도 찾아오는 것은 허기 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공허하게 됩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결혼해도 감사가 없고 부귀 영화는 간곳이 없고 심지어 종교생활까지 한다고 하면서도 공허한 심정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3.본문이 주는 교훈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지어다”(4:15)

유다는 아직 덜 부패했으니 이스라엘 처럼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두 왕으로 갈라져서 각각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건설하고 그 때부터 두 나라가 대립하며 살아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예루살렘 성전과 비슷한 성전을 사마리아에다 짓고 벧아웬(벧엘)과 길갈에다 지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우상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편리주의를 생산해 냈습니다.
오늘도 타락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편하게 믿을려고 합니다.
멀리 힘들게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테레비도 누어서 보고 전화도 누어서 받는 시대입니다.
편하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편하다고 길갈로 벧아웬으로 쫓아가다가는 멸망 밖에 올 것이 없다고 호세아는 힘주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것 세 가지를 채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1).말에 진실합니다. 2).약속에 진실합시다. 3).헌신의 진실합시다.
비록 손해가 난다 할지라도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위선자가 되지 말고 거짓된 무리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토함을 받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모자라도 좋고 없었도 좋고 실패해도 좋으니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헌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몸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고 시간도 바치고 다 바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선적 문제를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살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의 삶, 주님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임한 저주가 임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