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유일한 해답-예수 그리스도 (행 08:26-39)

첨부 1


신자가 신앙생활을 풍성케 하며 아름답게 완성하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원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해답이듯이, 성화에 있어서도 그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대부분의 자연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고 기독교가 갖고 있는 내용들, 즉 싹과 열매를 그들의 힘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은 감추어진 것이다. 그들은 생명에 대하여, 영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이다. 때로는 신자들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는 한다. 신자들도 그들이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싹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연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설명하게 될 때는 자연인과 동일한 오해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흔히 돈이 많은 신앙인과 돈이 없는 신앙인 중에 전자의 경우가 더 많은 주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영적인 것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높은 위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요, 누구를 낮추셨다면 낮춘 것이 그의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면 어떤 때는 매맞는 것이 메시지가 되며, 옥에 갇히는 것이 메시지가 된다. 천하면 천한대로, 오해를 받으면 그 나름대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되게 해주신다면, 이 일만 해결해 주신다면 그것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그렇게 될 때 무슨 일이 이루어질 것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셔서 그가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눈에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를 통하여 산 나무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싹이 날 수 없고, 꽃도 필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에디오피아와 예루살렘의 거리는 약 8천리에 해당한다. 내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상당한 명예와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음 속 영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왔다. 그러나 해답을 얻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성경을 읽었다.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빌립이 병거로 다가가 그 뜻을 풀어 가르쳐 주었다. 성경이 지금 이 구스 내시의 사건을 통하여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가 가진 성실과 종교적인 노력은 나무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 산 나무가 되는 것은 최고의 지식과 부와 권세와 인간적인 어떤 노력과 성실함을 다 동원하더라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사실을 못박아 놓고 빌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그를 깨닫고 영접하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그를 거듭나게 하는데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떤 좋은 조건과 종교적 열심으로도 불가능하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은 해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생명을 주어 그를 살아 있는 나무가 되게 하여 영적인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설명도 그가 죽어 있는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계명들을 깨닫고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은 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자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 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 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19-20)” 모든 메시지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영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 자신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은 그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라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에디오피아의 구스 내시가 본국으로 돌아가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선교를 하면서 에디오피아에 신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근 2천년 동안 내시가 전한 복음이 전승되어 그들은 신앙을 지켜온 것이다. 지금처럼 완성된 성경책도 아닌 이사야 한권만을 가지고 2천년 동안 그들 사이에서 신앙이 전승되었던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지금과 같이 완성된 성경이 없었는데 그들은 위대한 신앙의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 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 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 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 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행 17:1-9)” 6절을 보면 야손과 그의 형제들이 천하를 어지럽게 하였다고 했다. 그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할만큼 위대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며,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를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야손 및 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영원토록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 삶의 목적을 정하시는 분이고, 방법을 정하시는 분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어제는 그분이 혼자 나를 위해 일하셨고, 오늘과 내일은 내가 순종해서 그분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열매가 가지 끝에 맺는다 해서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가지가 나한테 열매가 맺히니까 나무보고는 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이야기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더 깨닫게 되고, 그분을 더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 경배하는 것이 어제의 일이고, 오늘의 일이고, 내일의 일이다. 영원토록 우리의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