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의 사랑 (호 11:1-12)

첨부 1


서론
1) 어떤 어머니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후 다섯살짜리 큰 아이를 안고 비틀 거리며 교회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전혀 아무 것도 할 줄 몰랐고, 심지어는 스스로 음식도 먹지 못했다. 그 어머니는 매일 그 아이 를 먹이기 위해서 6시간이나 소비하였다. 자신의 사랑에 대하여 반응하지 못하 는 아들 때문에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 나 그 어머니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순종 정신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 아갔다.

2) 일찌기 영웅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버틀란드 장군에게 "들어보 시오, 버틀란드. 나는 인간들을 알고 있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 란 것도 말하겠소. 그에 관한 모든 기사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소. 그의 영은 나 를 위압하고 있소. 그리고 그의 의지는 나를 혼란시키고 있소. 그분과 비교될만 한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소. 그는 진실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오. 그 의 탄생과 그의 삶의 역사와 그의 가르침의 깊이, 그의 복음, 그의 제국, 세대 를 가로질러 나아가는 개선의 행진,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놀랍고도 풀 수 없 는 신비요. 내가 가까이 가서 세밀하게 검토해 보아도 모든 것이 나보다 위 요. 그는 나를 사로잡는 위대함으로 채워져 있소. 알렉산더, 시이저, 샤를 대 제, 그리고 나 자신 역시 제국을 세웠소. 그러나 우리가 세운 제국의 기초는 무 엇이요 그것은 힘이었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홀로 사랑 위에 그의 제 국을 건설하셨소.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을 위해 기꺼 이 죽으려 하는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I. 구원의 사랑은 불러내는 사랑이다(1-7).

A.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불러내셨다.

 1.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단어의 원어 "애클레시아"는 "밖으로 불러 모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 우리가 본래부터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모태신 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무지 맞지 않는 무식한 표현이 다. 신앙은 반드시 고백에 근거하는 것인데, 영아가 어떻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타고난 신자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 신자가 된다.

 3.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 님의 개입에 의해서였다. 장년만 칠십만명이 되었음에도 그들은 체제 에 대하여 맞설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4. 그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에게 불평하고 항의했다는 사실은 이 스라엘 민족의 상태가 얼마나 무능했는가를 드러내주는 증거가 된다.

B. 사랑은 가장 귀한 선물이다.

 1. 선물은 귀한 것이다.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 타인의 정성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에 귀하다. 선물은 돈주고 살 수도 없는 것이요, 억 지로 뺏을 수도 없다.

 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낸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것 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푼 최대의 선물이었다. 사실 그들의 가 치를 따진다면 하나님의 관심을 끌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3. 죄는 늪과 같다. 늪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죄의 늪에 빠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 을 수 없다. 우리는 불러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인생의 늪을 통 과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우리를 황소처럼 이끌지 않으셨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이 끌기 위해 최대한의 사랑을 쏟아 붓듯이 우리를 이끄신다. 하나님께 서는 사랑보다 더 큰 힘이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신다.

이상으로 우리는 구속의 사랑 가운데 불러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 하여 살펴보았다.

 II. 구원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8-11).

A. 참으로 이스라엘은 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1. 농부가 과일나무를 심는 이유는 열매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과원지기의 사랑 이상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보살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결과는 배신 뿐이었다.

 2.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지위는 만물의 으뜸이었다. 그러 나 타락으로 인한 결과는 피조물 중의 가장 아래가 되어버렸다. 과일 나무는 농부의 정성 여하에 따라 열매를 맺게 된다. 즉, 반드시 심은 만큼 수확을 맺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배신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 가 인간은 모두가 악하다. 그리고 선을 행할 아무 능력도 없다.

 3.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포기 하지 않는 사랑이시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 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고 하신다.

B.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1. 오늘날 우리의 목표는 오직 성공 뿐이다. 의로움에 대한 성공이 아니 라 오직 물질적인 성공 뿐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하지만 그것 은 구실 뿐이다.

 2. 우리의 모습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익 앞에서는 체면도, 의리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 까지 손해보고 계신 것이다.

 3.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는대로 거둔다. 오늘 나는 무엇을 심었는가 용서한 것이 있는가 양보한 것은 무엇인가 누구를 사랑했는가 내 게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주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찾고 만날 수 있다. 왜인가 주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고달프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낙심하지 말자.

주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결 론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교회라는 울타리로 불러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 도라는 영광을 허락해주셨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포도나무는 3년 이면 열매를 맺지만 우리는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가 적어도 주님을 만나기 전 과 비교할 때 말이다. 내게서 성령의 열매가 맺혔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 님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왜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시기 때문이다. (구원/사랑)

 DP-855EPH22-24-R

:::::::::::::::::::::::::::::가정이 교회가 되려면::엡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 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에 모실 때 우리들의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을 통해 말씀드리고 자 합니다.

백과사전을 보면 가정이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가 일정 한 장소에서 기거, 침식을 같이 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국어 사전에서는 가정을 "부부와 자녀들이 가장을 중심으로 한 모임" 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가정에 위기가 닥쳐오고 가정이 깨 지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 가정에 위기가 오는 이유 먼저 하나님이 이 가정을 어떻게 만드셨는가를 살펴봅시 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창조의 순서를 보면, 첫째날, 빛과 어두움을 갈라 낮과 밤을 만드시고(1:3-5), 둘째날, 물과 창공을 나누어 하늘을 만드시고(1:6-8), 셋째날, 땅과 바다를 나누어 육지와 풀과 씨가진 열매맺 는 나무가 돋아나게 하시고(1:9-13), 넷째날, 해, 달, 별을 만드셔서 빛나게 하시고(1:14-19), 다섯째날, 생물, 물고기, 새 등을 만드시고(1:20-23), 여섯째날, 육축, 날짐승, 짐승을 만드시고, 그리고 맨 마 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집수리를 다 하고, 전기가설도 다 하고, 정원에 꽃을 심고, 동산에 동물들이 뛰놀게 하고, 나무 에는 새소리가 지저귀도록 다 만드신 후에 사람에게 "이젠 들 어가 살아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발견 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은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즉흥적이거 나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 다.

아담의 가정에서는 하나님이 어른이셨으며, 보호자이셨습 니다. 하지만 바로 이 거룩하고 신성한 관계를 사탄이 깨뜨렸 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소 평가하 고,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인데 있었습니다. 아담의 가정이 왜 풍지박산이 되었습니까 마귀인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 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사탄의 소리, 뱀의 소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 소리, 아무 이야기나 다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 령 어떤 불량한 사람이 "나와 함께 저 집 담을 넘어가 한탕 털 자"고 소근거렸다면, 누가 그에게 그거 참 좋은 "말씀"이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말씀과 소리를 구분합시다. 매끄럽고 유창하고 감미롭다 고 해서 말씀이 아닙니다. 뱀이 한 소리는 뱀의 소리이고, 하 나님의 소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고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이것 이 진짜일까"라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최초의 가정은 그래 서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그 대로 지켰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제쳐놓고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소리 라고 장단 맞추다가 죄에 빠져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오늘 현대 가정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사업이 잘 안되는 것이 위기입니까 돈이 없는 것이 위기입니까 집이 비좁고 환 경이 적당치 못한 것입니까 물론 이러한 요소도 위기의 조건 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위기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뱀의 소리 밑에 두다가 아담의 가정이 부서지 고 망가진 것처럼, 현대 가정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능 력, 권위를 돈이나 행복, 환경, 조건들 밑에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정은 백이면 백 모두 파멸하고 맙니다. 부디 하 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가정이 교회가 되려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혁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의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말씀의 혁명이고, 성령의 혁명입니 다. 이 혁명은 죄를 뒤집어 엎고, 불태우고, 새로운 인간을 만 듭니다. 그리고 그 새로와진 인간들이 새세상, 새역사, 새질서 를 창조하도록 하는 혁명입니다.

이것을 예수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혁명, 예수 혁명, 성령 혁명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납니다. 내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일어 납니다.

다른 혁명은 사탄의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죄의 혁명, 타락의 혁명이며, 멸망의 혁명입니다.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고, 국가를 망칩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폼페이도, 로마도, 이 사탄의 혁명세력 때문에 망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십시다. 도적떼들이 한 고을을 점령 했다고 합시다. 약탈, 살인, 강간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가정에는, 우리들 마음 속에는,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주인 과 종 두 사람이 어느 날 창고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 창고를 노리는 도둑이 들거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에 종에게만 맡길 수가 없어서 주인도 나섰던 것입니다.

자정이 지나 1시, 2시가 되자 종은 쓰러져 코를 골며 잠 을 잤습니다. 세상 모르고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잠이 뭡니까 더 정신이 초롱초롱 해집니다. 밤이 깊어질 수록 긴장이 더해 갑니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손에 힘을 줍니다.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주인은 이렇게 긴장되어 있는데 종은 마음 편하게 잠만 잡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인에게 있어서는 창고의 물건이 자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소유를 자기가 지 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우리 인생이 고달프고 피곤한 까닭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 내 가정,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왜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을 해야 됩니까 오늘을 살아가 는 인생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니면서 눈 에 핏발이 서고 편안을 찾지 못합니다. 어서 주님께 주인의 자 리를 내드리십시오. 주님께 가정의 주인이 되셔달라고 부탁드 리십시오. 그러면 그 때부터 가정은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주 는 곳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3. 가정이 가정답게 되려면 먼저 가정에는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서 로 주는 것이고, 신뢰는 서로 기대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가정이 건전해지고 견고해 집니다.

메마른 세상, 가시밭 같은 세상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 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기댈 수는 없습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돕는 신뢰가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건전한 교회가 그러 하듯이 가정도 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바울은 남편 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 게 복종하라는 것이고, 남편은 자기 몸처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엄청난 진리가 들 어 있습니다.

바울은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부부도 그러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무조건 절대 복종하듯 이 아내가 그러해야 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각각 맡겨진 자리와 직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지키면 됩 니다. 그 자리를 안 지키고 남에게만 네 자리를 지키라고 큰소 리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남편 자리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지키면 자연히 아내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기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부부가 살든, 형제가 살든, 자매가 살든, 가정은 가정입니다. 믿음이 있는 가정, 기도가 있는 가정, 성경을 읽는 가정, 거기가 바로 가정교회입니다.

시편 133편을 보십시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 니 곧 영생이로다." 이 시인은 가정, 곧 형제의 공동체를 영생 공동체, 구원 의 공동체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영생의 공동 체가 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되고,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낙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가정)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