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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사야의 정치적 비젼 (사 0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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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과 한 달뒤에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어떤 때의 대통령 선거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공통된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에 대통령이 들어서는 것이 대체로 쿠테타 같은 혁명을 통해서 들어섰는데 이번에는 그런 힘를 앞세우지 않는 국민의 선택에 의한 선거가 될 것 같고 이번 선거로서 비로소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희망같습니다.이런 싯점에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써 이 대통령 선거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하겠읍니다. 오늘 이 문제를 위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정치적 비젼을 생각해 보기로 하였읍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성서에서 정치적 상황을 신앙적으로 본 탁월한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주전 8세기인데 그 어간에 유다는 아주 묘한 국제 정치적 기류에 휩싸여 있었읍니다. 북쪽에 있는 강대국 앗수르가 주변의 약소국을 침략하여 힘으로 정복하려는 전쟁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이에 작은 나라들은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침공을 막고자 안간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국제 정치의 기류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고 도무지 어떤 쪽으로 나가야 나라가 안전할 지를 모르는 그런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유다에는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고 요담왕이 차기 왕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유다에서는 새로운 왕의 대관식, 요즈음 같으면 대통령 취임식을 신년축제 때 주로 하였는데 오늘 읽은 본문은 바로 이 신년축제 때 요담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바로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 취임식에는 중요한 사람들이 초대되는데 이사야도 이 취임식에 초대가 된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안에는 새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려는 찰라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가득히 메우고 있고 요담왕은 화려한 제왕복을 입고 문무백관들을 거느리고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바야흐로 식이 시작되려는데 이사야가 엎드려 있다가 눈을 들어 앞을 보는데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가만히 보니 보좌에는 인간 요담왕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의 옷자락이 성소를 덮고 있었고 날개가 양쪽에 여섯씩 달린 스랍, 하나님을 모시는 천신이 그의 옆에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 천신이 성소를 훨훨 날아다니면서 이렇게 환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요즈음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 유세장마다 후보들이 나타나면 김영상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하고 열광적인 연호를 하는 모양인데 지금 이사야가 엎드려 있는 성전에서는 요담왕이 즉위식이 거행되고 있는 가운데 천신들이 나타나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연호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지금 참석하고 있는 것은 유다의 차기 왕 요담이 즉위를 하는 취임식 현장이란 상황입니다. 이 취임식 현장에서 이사야가 본 것은 유다를 다스리실 보좌에 인간 요담왕이 앉는 것이 아니라 그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사야가 육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인간 요담왕의 모습입니다. 그의 제왕복의 옷자락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그가 문무백관들의 호위속에 둘러싸여 있고 대관식 참가자들은 요담왕을 연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 이사야는 그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그를 천신들이 호위하면서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시며 그가 거룩하시며 그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차다고 소리치는 것으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가진 놀라운 신앙적 통찰력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험악한 국제정치기류속에서 조국 유다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기속에 있고 그래서 새로 등극하는 왕에 대한 의존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을 때 이사야는 역사란 인간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이 환상을 통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비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비젼이란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정치가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며 모든 세상의 군왕들은 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89년에 동베르린의 장벽이 무너질 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의아해 했습니다. 그 장벽이 우리 세대에서는 없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구 쏘련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인 쏠제니친은 미국에 망명해서 말하기를 공산주의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서 유럽까지도 공산주의화하는 경험을 한 다음에야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전혀 빗나갔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은 대통령에게 너무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에 불과할찐데 마치 그에게 우리의 모든 정치적 운명을 맡기는 것처럼 기대하고 의지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사람의 가장 큰 약점중에 하나가 권력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사람은 옛날 관리들에게 하도 많이 당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권력에 약하고 자식들을 키우면 관리로 출세시키려는 욕심이 많은 것도 권력을 사모힙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우리는 권력을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자기가 가진 권력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자에게 맹종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읍니다. 한 인간에게 너무나 쉽게 정치적 운명을 맡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독제가 가능했고 민의를 외면한 철권통치가 가능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가지는 깊은 정치적인 생각은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앙을 입술로만 고백하거나 아니면 교회안에서만 고백하고 실제 정치현장에서는 인간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양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굴종하기 때문에 국민의 정치적 소신이 제대로 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 때 80년 봄에 전두환 대통령이 한창 대통령이 되려고 일을 꾸미고 있을 때 교계의 유명한 지도자들이 호텔에 모여서 전두환 장군이 하나님이 난세에 보내주신 지도자라고 기도한 적이 있읍니다. 그렇게 추켜세운 전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앞에 큰 죄를 지은 죄인으로 스스로 고백하는 진 풍경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김영삼씨가 되든지 김대중씨가 되든지 우리 그리스도인이 보아야 할 정치적 비젼은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사야가 요담왕의 즉위식에서 그 배후에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은 요담왕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누가 앉든지 상관없이 유다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정치에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최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치적 진리의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바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참여는 더욱 진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이 정치적 비젼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늘 마음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시고 역사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된 이사야는 그 다음에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랍들이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시다라고 외치는 그 연호를 들은 다음에 이사야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 귀절은 보통 하나님앞에 죄를 느낀 죄인의 고백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새로운 의미가 그 속에 들어 있읍니다. 이사야가 "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화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하나님이 왕으로 등극하시는 장면앞에서 자신의 정의롭지 못했던 모습이 극도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자기의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란 것은 지금까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도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증거하지 못한 입술의 죄를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기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하였다고 함으로서 자신만이 아니라 당시 온 국민이 입술이 부정했던 것을 함께 고백했습니다. 이 입술이 부정했다는 고백은 역사적 안목이 바로 서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알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렸고 온 국민이 그렇게 흔들려왔다는 고백입니다. 국민의 잘못된 역사의식의 고백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사사로운 죄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의식도 하나님앞에 고백하고 바로 고쳐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우리 나라 보다 못한 나라의 정치에도 못따라갈 정도로 유치한 정도인데 그 최후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바르게 서면 유치한 정치지도자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아시겠지만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여름에 국민의 탄핵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 대통령은 민선대통령입니다. 국민이 오랫동안의 독제정치를 청산하고 자기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인데 그가 부정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은 국회로 하여금 대통령을 탄핵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대통령은 국민의 심판에 승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브라질 국민보다 열등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주권의식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주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마치 인간이 영혼없이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앞에서 역사의식을 새롭게 가진 이사야는 마침내 자신을 이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자로 헌신합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그의 입술이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 숯불을 돌집게로 가져다가 그 숯불에 입술을 지짐으로서 과거에 정의를 말하지 못했던 그 부정한 입술에 사함을 받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사야가 이렇게 잘못된 역사의식에서 용기없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정치적 비젼을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소명이 내려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는 즉시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인간의 온갖 정치적 술수에 온 국민이 빠져서 우왕좌왕하던 것을 청산하고 진리와 정의와 평화로 나아갈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왕이심을 알고 새로운 역사의식을 갖게된 이사야는 제가 그 일을 하겠읍니다 하고 자신을 그 소명에 맡기는 헌신을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정치를 세상에 증거하는 예언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교회의 사명을 보고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사명을 보게 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의 주권을 누가 선포하고 증거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현실에서 의와 평화와 진리에 기초한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예언적 기구입니다.그러므로 교회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데 이 정치적 목소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목소리는 하나님의 정당, 하나님의 정치, 정의의 정치, 진리의 정치, 평화의 정치, 메시야의 정치를 선포하는 목소리어야 합니다.

이사야가 가진 정치적 비젼이 어떤 것인줄 아십니까 이사야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정치적 공약은 이사야 65:20-2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니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의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린이나 노인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법이 없다.
다 자기의 연수를 충분히 살게 된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삶이 철저히 존중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존중의 정치입니다.

2.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되고 자기가 지은 집, 자기가 가꾼 농토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된다.

착취와 빼앗김이 없는 세상, 즉 경제적 정의와 평화가 깃든 세상이 된다. 즉 경제적 정의가 이룩되는 정치입니다.

3. 자식을 낳아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미래 세대에 대한 불안이 없는 누구나 미래 세대를 안심하고 존속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 즉 미래세대의 삶이 보장되는 정치입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듣기 전에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모든 인간이 선해져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세상이 된다.
즉 인간의 양심이 진리를 따르는 정치입니다.

5.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으며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현재의 서로 잡아먹는 경쟁과 갈등의 사회구조가 서로 평화하며 공존하는 세상이 된다. 즉 경쟁적 정복적 사회구조를 서로 존중하여 협력하는 평화의 구조로 바꾸는 정치입니다.

이번 미국에 새로이 당선된 대통령 당선자 빌 클린턴이 내 세운 공약과 앞으로 4년동안 기울여야 하는 최고의 긴급한 일을

1. 경제재건,

2. 교육

3. 보건 이 세 가가지로 압축이 되는 것 같읍니다.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보면

1. 인간생명의 존중,

2. 경제정의,

3. 미래세대에 대한 모든 불안의 해소,

4. 인간과 하나님의 완전한 화해,

5. 모든 피조물 사이에 전쟁과 갈등이 없는 창조질서의 회복 이것은 완전한 정치적 비젼입니다.

나중에 가 보면 결국 이사야가 가진 이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은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얼마 뒤인 이사야 9:6에 보면 우리에게 한 아기가 테어나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면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그가 영원한 나라를 세우고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정치가이십니다.

정치란 인간이 온전한 삶을 구조를 이루는 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운동입니다.하나님은 2800년전에 이사야를 통해서 메시야안에서 이룩될 인간이 지닐 완전한 삶의 구조로 이와 같은 정치적 비젼을 제시하셨읍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에 이런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표준으로 증거하면서 세상의 정치가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실현할 수 있도록 예언적 목소리를 드높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구체적인 사명입니다. 그 사명은 가서 백성에게 일러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마음을 둔하게 하고 눈을 뜨지 못하게 하라는 식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인 메시지입니다.

이 백성이 그렇게 어리석어서는 하나님의 정치를 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은 백성이 볼 것을 정확히 보고 들을 것을 정확히 듣고 마음을 예민하게 하고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세상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내는 구실을 제대로 할 때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정치를 비젼을 갖도록 백성에게 이르는데 그 사명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역사의식으로 이런 정치적 비젼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에 대한 정치적 선택을 다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의 측면에서는 동일합니다. 누가 되든지간에 중요한 것은 국민이 마음과 귀와 눈을 열고 깨어있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판단력이 하나님의 정치적 비젼을 기준으로 정치적 파숫군이 되어야 하면 이렇게 국민을 계몽하는데 그 선봉에 교회의 예언적 사명이 서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정치가 실혀되도록, 또 뽑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정치를 따라 순종하는 지도자가 되로록 감독하고 권면하는 권위있는 국민이 되도록 하는데 하나님을 대신한 증거자가 될 것을 다짐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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