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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시야 예언 再考(2) (사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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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선포의도

이 모든 제왕적 표상을 짊어진 아들의 탄생을 구원의 단서(端緖)로 삼은 본 단락의 예언은 과연 누구에게 선포된 것인가 도입부에서 거론한 이스라엘의 북방지역에 관한 보도가 그 표상의 역사적 상황만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이유는 후대의 공동체가 선대의 역사적 표상이나 신학적 표상을 가지고 미래에 도래할 이상적 통치자에 대한 열망을 예언적표상으로 정리해 예언자 이사야의 입에 가탁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상 본 예언에는 대상과 시기에 대해 모호한 부분이 많다. 왜 예루살렘을 주요거점으로 활약했던 예언자가 갑자기 예루살렘궁성에서 행했을 법한 즉위의식중 핵심적인 제왕이념표상을 가지고 당시 경쟁관계에 있었던 북왕국이스라엘의 변방지역의 치욕적 역사를 극적으로 전환시킬 구원의 표상으로 재구성했겠는가 본 예언의 이사야 친저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선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곧 망국이라는 미증유의 대재난을 경험한 유대공동체, 곧 다윗집안을 중심한 왕정체제의 이념적 허구성을 역사적으로 검증한 포로이후의 유대공동체가 전래의 이사야 예언전승에 다시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 이상적인 군왕의 상을 추가했으리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본 예언은 주전 5세기의 암울한 시대상황에 소망의 빛을 던져주기 위한 후대편집자의 노작이요, 환상적인 메시야도래의 예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결사항으로 남았던 9장 1절 첫머리도 편집자가 반전(反顚)의 계기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럴경우 첫머리는 `그럼에도……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포로이후 예루살렘을 중심한 공동체 재건의 노력이 (다소)편협한 국수주의적 성격의 것으로 표출되었던 것을 기억할 때(역대기 사가의 신학적 입장 참고), 하필 도입부를 북왕국 이스라엘의 변경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꾸밀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남왕국 유다가 주전 701년경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수모를 당했을 때나 주전 587년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던 것들도 우울했던 역사적 경험의 전제로써 충분히 도입부를 장식할 수 있었을 터인데……

뿐만 아니라 비록 소위 사사시대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미디안의 날'이라는 기드온의 표상이 북쪽지파의 빛나는 구원전승에서 차용한 것임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본 단락의 예언이 본래 포로이후 유대공동체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주전 8세기에 활약했던 여타 예언자들과 같이 이사야는 `파멸의 예언자'였고 그 부정적 심판예언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유형의 구원표상이 이사야 자신의 것은 될 수 없다고 하는 관행적 지적은 너무 일방적인 것이다-그럴경우 7장의 임마누엘예언도 문제가 될 것이다.

이상의 지적으로써 대강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본 예언은 이사야 자신이 주전 733년 전후한 앗수르제국의 정복왕 디글랏빌레셀3세의 대원정에 희생된 북왕국 이스라엘의 변경지방의 참상과 에루살렘에서 거행되었을 왕의 즉위식 혹은 왕세자 탄생축하의식에서 유래한 제왕이념을 결합시켜 (임박한)구원을 알리고자 선포한 것이다. 이 예언이 공공연하게 것인지는 확증할 수 없다고 혹자는 지적하기도 하지만, 본 단락이 이사야의 여타 예언과 다소간의 거리가 있음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사야는 본 예언을 당대에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했었는지 모른다(탄생한 아들이 이사야 당대에 즉위한 왕이라면 그 왕의 재위시에, 그렇지 않고 왕세자를 의미한다면 다음세대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전망속에서).

이사야가 특정한 시점에서 본 예언을 선포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선포대상이 피해 당사자였던 북왕국이스라엘이었든지 그 참상을 보면서 불안에 떨고 있었던 남왕국 유다였든지 간에 우리에게 꺼림직하게 남아 있는 구석은 이 예언자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구약의 잔여시대 내내 유보되었다는 점이다. 주전 8세기때 예언자는 하나님이 압제와 어두움의 우울한 역사에 대전환점을 마련하실 것을 예언했다-실상 아들의 탄생은 아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아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치 7장의 임마누엘 예언이 특수한 시점에서 성취될 하나님의 구원표상으로 제시되었던 것처럼, 세속적 제왕이념표상을 한몸에 걸친 아들의 출생이 향후 하나님, 당신의 백성에게 임할 구원의 증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절은 결코 편집자의 추가, 보완이라 할 수 없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킨 아트 아도나이 츠바오트)'이 이를 이룰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주님의 이름(아도나이)이 명시되며 동사도 예언적 완료가 아닌 미완료 형태가 등장한다(타아세 조트). '주님의 열정'은 당신의 백성을 위한 배타적 저열을 의미하며 그 유명한 하나님의 질투와 유관하다(출 20,5, 엘 칸나 , 질투하는 하나님). 예언의 핵심은 바로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다.

VI. 예언의 재해석, 재독(再讀)

역사적으로 예언자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예언이 오늘까지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바로 전승의 재해석때문이다. 전승, 전통이란 말(Tradition) 에는 양면이 존재하는데 바로 전달과정(tradere)과 전달내용(traditum)이 그것이다. 전승은 결코 무기적, 기계적으로 지행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내용의 신탁이라 할 지라도 그것의 의미를 자신의 삶의 터전에 구현, 체현하려는 공동체의 끊임없는 노력이 없이는 세월의 검증을 견뎌낼 수 없다. 설사 이해하기 어려운 신탁이 전해졌다 하더래도 훗날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는 공동체의 겸허함 조차도 바로 유기적인 전승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유기적 전승과정중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후대의 재해석, 재독이다. 이사야의 본 예언은 본래 당대적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후대로 전해졌는데 그 까닭은 그 내용이 이스라엘의 신앙의 본령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예언은 그런 점에서 왕국의 몰락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후에도 다윗의 보좌를 이어갔던 '티많고 흠투성인'왕들과는 다른 이상적 군왕을 대망하는 유대공동체의 견인불발의 신앙으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특수한 예언적 표상이 훗날 공동체의 참여로 인해 보편적 표상-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적 표상-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구약 후반, 중간기에 걸친 메시야대망사상과 연계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초대교회가 남긴 본 예언의 재독중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기묘한 현상은 본 단락이 도입부(2절)를 제외하고는-저 유명한 마태복음 4장 15,6절이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 것 이외에는-신약에서 거의 인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A항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그나마 이 인용도 히브리본문과 편차를 보일 뿐 아니라 전체단락의 핵심적 부분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메시야 예언으로 재해석될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높은데도 불구하고. 마태는 세례요한이. 잡혀들어간 직후 비로소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주유하는 것을 그의 구원사역의 시발점으로 이해하면서 그곳의 체류자체가 이미 이사야예언의 성취라고 확신한다. 문맥을 중시하는 현대인이라면 이런 유형의 인용은 금기사항에 속할지 모르나 마태의 인용 또한 해석사적 흐름의 일부로서 당당하게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다.

VII. 메시지

예언자 이사야가 당대의 청중을 향해 선포했다는 점에서 본 단락의 예언은 보편 그 자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석학적 차원에서 볼 때 예언자는 자신이 발설한 예언을 더 이상 통제할 권한은 없다. 오히려 예언자 자신이 어떠한 신학적 의도를 지니고서 예언행위를 수행했든지 간에 표출된 그 예언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고-곧 후대 신앙공동체의 처절한 삶의 터전에서 부단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금지옥엽처럼 간직되면서-살아남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라 지칭할 수 있으리라. 마태가 인용한 방식을 보면서 이사야가 무슨 평가를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선대(先代)의 유산은 언제고 변개내지는 왜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함장한다.

신약이 거의 인용하지 않았던 이 예언은 오히려 교회가 철저하게 그 의미를 밝혀주었다. 핸델의가 오라토리오 메시야 제 12 곡의 주제로 도입된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야말로 이사야뿐 아니라 그의 예언을 고이 간직했던 후대 공동체의 익명의 신도들이 고대했던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대전환이요, 세상의 군왕의 뛰어난 덕목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간 모두를 향한 깊은 자비가 빚어낸 신묘(神妙)한 구세적 경륜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예언중의 예언이라 하겠다.

그옛날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지적 차원의 대상을 향한 다소 배타적인 성격의 것이었으나, 이제 어두움에 억눌렸던 그들은 더이상 이방의 정치적, 군사적 압제에 시달리는 자가 아니라 인생의 온갖 허무한 것들-곧 어리석은 욕망과 부정과 불의등-에 치인자로 그 대상이 보편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이런 구원의 징표를 읽어낼 수 있기까지 그 긴세월동안 신앙공동체는 기대와 절망, 삶과 죽음사이를 몇번이나 오고 갔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평강의 인도자'의 진면목을 찾는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이제 더 이상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뿐 아니라, 저 `탈취물, 전리품을 나누는' 뼈아픈 기쁨-한때 생존을 위해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기쁨-이 다시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힘써야 하리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열렬한 사랑이 이를 이룰찐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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