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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와 보라 (요 0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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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발행된 기독교연감에 의하면 세계 기독교인구는 모두 254개 국가에 34억473만 9천명이다. 60억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이중 로마가톨릭 인구 10억1천만을 제외해도 24억 인구가 개신교신도이다. 대단히 많은 나라 허다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다.

얼마 전 기독교계통의 한 주간신문에는 이런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 증가율이 점점 감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교단의 교인 증가율도 감소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새로 설립되는 개척교회들 중 65%가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5년 전에 비하여 국민학교 학생의 수(88년 482만)도 10 % 정도 감소한 433만 7천명으로 교회마다 아동부의 숫자도 현격히 줄고 있다.

요즘 한참 인기가 있는 세미나가 무엇인지 아는가 전도와 관계된 세미나이다. 교인들의 수효가 줄어들게 되자 위기를 느낀 목회자들이 너도 나도 전도훈련이나 새신자에 관한 세미나를 즐겨 찾고 있는 것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 한 사람이 8천명을 교회로 인도하는가 하면 교회를 개척한지 몇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교세를 이루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실제로 개척한지 1년밖에 안되는 어느 개척교회는 150명 교인에 지난 해 결산이 2억을 넘었다고 하는 자랑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였길래 똑같이 개척을 시도한 교회들 중에 어떤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하고 어떤 교회는 부흥하고 있는 것일까 개척교회 뿐 아니라 기성교회들 중에도 어떤 교회는 신자들이 증가하는데 어떤 교회는 오히려 반감하고 있는가 이것은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데는 무슨 비법이 있을 수 없다.
또 무슨 별다른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별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안드레처럼 꾸준히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만 하면 된다.

안드레는 어떠한 사람인가 성경에 나타난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만났다. 요 1:

2. 자기의 형 베드로를 주님께 데리고 갔다. 요 1:41-42

3. 갈릴리에서 그물을 던지다가 부름 받았다. 막 1:16

4. 예수님이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시는 자를 부르셨다. 막 3:13

5. 한 소년의 오병이어를 주님께 전해 드렸다. 요 6:8-96. 예수를 찾아 온 헬라 사람들을 주님께 안내하였다. 요 12:20-22

7. 말세징조 (예루살렘멸망)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막 13:3-4

8. 주님의 부활 후에 오순절 다락방 기도회에 참석함 행 1:13

1. 안드레는 구도자였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질책을 받으면서 회개하고 또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는 여전히 요한의 제자로 남아있었다. 어느 날 요한이 한 사람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할 때 안드레는 그 즉시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이다. (요 1:35-40)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오는 안드레에게 '너희가 무엇을 찾고 있느냐 '물으셨다. 이 물음에 대하여 안드레는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고 되물었다. 어디에 묵고 계신가 하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와 보라' 하셨다.

안드레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과연 무엇을 찾고 있었는가 에수를 따라 간 안드레는 그날 온 종일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 그날은 안드레가 평생동안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안드레가 하는 말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온 이스라엘이 오래도록 기다려 온 그 분을 내가 만났다는 감격의 소리이다.

우리는 모두 다 전도의 책임을 가진 자이다. 그런데 왜 전도를 못하는가 안드레 같은 '메시야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메시야는 어디에 계신가 여러분이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 다니면서 큰 교회를 찾아가며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 다녀 보지만 진정으로 찾아 만나야 할 분은 건물이 크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구세주 곧 '메시야'를 만나야 한다.
어떤 사람은 분위기 좋은 교회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부담없이 다닐 편한 교회를 찾는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를 찾아가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신령한 은사()가 있는 목사를 찾는다.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는 능력이나 투시 입신 방언 통역같은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는 목회자를 찾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으려고 여기에 왔는가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찾아 만나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한다. 예수님과 만나면 삶의 방향이 바뀐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은 시크교도였다. 그러나 그는 참 진리를 찾지 못하여 괴로워하였다. 그가 14살 되던 해 어머니를 잃었을 때 더욱 괴로워하였다. 어느 날 그는 참 신을 찾지 못하면 죽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사흘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을 끊고 골방에 들어갔다. '신이여 말씀 하소서. 이 우주에 살아계신 신이 계시다면 저에게 말씀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겠나이다.' 그 때 마침 밤 열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썬다싱은 다음 기차가 내일 아침 5시에 지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만일 이 밤에 신이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기차에 투신할 것을 강하게 기도하였다. 철로에 눕겠다는 것이다.
기도하던 썬다싱은 찬 물에 몸을 담가 14년 동안 묵은 때를 씻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직 7시간이 남았다. 그의 생각에 어떤 신이든지 살아계신 신이 죽기 전에 나타나기를 간구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간절하였고 새벽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방문 쪽에 환한 빛이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그 빛 가운데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문도 열지 않았는데 들어섰다. 그의 양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분의 얼굴에도 피가 흘렀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그 분은 말했다. '썬다싱.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네가 바른 길을 찾고 있구나 ... 내가 곧 길이다.!' 썬다싱은 그 날 새벽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만난 것이다. 그후로 썬다싱은 인도의 성자라는 칭호를 얻는 삶을 가졌다.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를 만난 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고 외쳤다.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세리도 자리를 박차고 주님을 따랐다.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좋은 물건을 구한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좋은 신랑을 만난 신부는 친구들에게 자기 신랑을 자랑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자랑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못하는가

예수님과의 확실한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만난 기쁨이 아니라 그저 친구가 좋고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왔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시기 바란다. 예수 안에는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2. 안드레는 전도자였다.
안드레는 메시야를 만난 직후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 갔다. 수가성의 여인처럼 그는 자기 집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가 집으로 가서 한 말이 무엇인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메시야는 설명이 필요없는 존재이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곧바로 예수님에게 인도하였다. 전도는 단지 길을 알려 주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다. 수가성의 여인이 마을로 들어가서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이 사람을 와 보라.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하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동리 여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앎이니라.'

수가성의 여인이 자기 마을로 들어가 동리 여인들에게 예수를 소개하였다면 안드레는 먼저 자기 가족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사람이다. 안드레에게도 친구나 좋은 이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자기 형님을 인도하였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믿지 않는 집안 식구들이 있다면 이 말을 잘 새겨들으라.

사도 바울은 교회의 일군을 선택할 때에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고 말하였다.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겠는가 하였다. 자기 가족, 자기 친족을 돌아 보는 것은 전도의 원칙이다. 만일 여러분 가족 가운데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식구들이 있다면 먼저 그 분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라.

우리 교인들 가족이 먼저 메시야를 만나야 한다. 만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 집안 식구들에게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

3. 안드레는 언제나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었다.
무엇에나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그에게 복이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일에나 가능성을 가지고 계속 도전을 하기 바란다. 한 세대 전에 영국의 한 정치인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은 얼마나 치욕적인 말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중심 무대에 서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계는 21세기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1980년 엘빈 토플러가 말한 제 3의 물결이 이제 시작인가 싶은데 벌써 지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The Fourth Wave' 곧 제4물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제4물결은 삶의 통합과 전체에 대한 책임이 우리 사회의 초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이며 공동의 창조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이야기이다. 수치에 밝은 빌립이 볼 때 안드레의 행위 곧 5병 2어를 가진 어린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안드레가 꼭 어린애 장난하는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안드레의 행위가 없었다면 벧세다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믿었다. 그분에게 능치 못함이 없으심을 믿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으신 그 분이 무엇인가 능히 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비록 어린 아이를 위한 작은 양식이라 하여도 안드레는 그것을 주님의 손에 맡겼다.
놀랍게도 그것은 떼어도 떼어도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양식이 되었다.

우리는 그의 가능성을 또 다른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빌립이 헬라 사람 몇을 데리고 와서 예수를 뵙겠다는데 어쩌죠 하는 것이었다. 빌립이 생각할 때 예수님에게 헬라사람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꺼림직한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방인들은 구원의 대상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드레의 생각은 달랐다. 이방인이라도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구원의 내용이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알고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간 것이다.

여러분은 누구를 예수님께 인도할 것인가 사람들이 없다고 괴로워 탄식하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아갈 것인가 가족에게 나아가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아가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전하지 못할 조건들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병들어 안되고 가난해서 안되고 무식해서 안되고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서 안되고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안되고 천박해서 안되고 학위가 없어서 안되고 한 고향 사람이 아니라서 안되고 ...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만났다면 이 모든 조건들의 울타리들은 순식간에 다 걷혀 버릴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만남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만날 때는 언제나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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