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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목자 (요 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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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은 일반적으로 '선한 목자'에 관한 기록으로 알고 있다.
선한 목자에 관한 이야기는 어떠한 이유에서 나온 이야기일까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을 먼저 살펴 보도록 하자. 바로 앞 장에서 우리는 소경을 고치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라는 사람이 여러가지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당시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를 해 두었다. 그들의 기세가 강할 때에는 잠시 숨어 계셨으나 또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서자 예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요 9:39 를 보면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서 우리가 왜 소경인가 의문을 제기하였다.

선한 목자의 이야기는 소경을 치료해 준 사건 뒤에 바로 이어진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너희가 소경이 아니라고 하지만 말씀의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빛을 보지 못하고 너희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의적으로 그것에 대하여 소경이 된 상태라는 것이다.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지도자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기 막힌 일인가

여기에서 나온 말이 나는 양의 문이라!(7) 하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들판에 방목하던 양들은 저녁이 되면 우리로 데려 온다. 베드윈 천막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약탈하는 짐승들은 당시에 큰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그러한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돌로 만든 우리 안에 양들을 불러 모은다. 목자는 좁은 입구를 만들어 양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우리에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이다. 그 문 뿐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목자는 이 문에서 무장한채 지내다가 노략하는 짐승이나 강도들의 침입을 막았다. 또 다시 아침이 되면 목자는 문 앞에 서서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 내 초장으로 인도하였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이 양의 문이요 목자라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다 강도, 절도라 하셨다. 우리가 만일 다른 통로를 통하여 우리에 들어가려 하거나 울타리를 넘어 들어간다고 하면 강도 절도라고 말 듣기에 합당하다. 거짓 선지자들은 어느 시대든지 정로를 밟지 않는다. 바른 길로 행치 않고 바른 길로 걸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교회를 마치 세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예수 없는 구원 예수없는 축복들을 강구하고 있다. 이 말은 듣기에 매우 좋아보이지만 옳은 말은 아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양의 문'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9)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고 기록되어 있다. 10 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다.
예수님 외에 과연 누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혹 야곱의 이야기 속에서 선한 목자를 발견할까 창 31:38-40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야곱은 ' 20년을 지내면서 짐승들로 낙태하지 않게 하고, 외삼촌의 짐승을 먹지 아니하였으며 혹 짐승에게 물려 찢긴 것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고 낮에나 밤에 도적을 맞았을 때 물어 내었고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 고 술회하고 있다. 눅 15장에 기록된 잃은 양의 비유 속에서 목자는 한 마리 잃어 버린 양 때문에 99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고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이웃을 불러 말하기를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며 잔치를 베풀었다고 말하였다.

선한 목자는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소떼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다. (잠 27:23)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그를 안다.(15) 나아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줄 안다.(11,15)

지금은 은퇴하신 분 중에 총회장을 지내신 임택진 목사님이 계시다. 얼마 전 우리교회에도 다녀 가신 분으로 70이 넘으신 중에도 장로회 신학대학에 나가셔서 후진양성에도 기여하고 계시다. 임 목사님께서 강의 하시는 것은 주로 목회현장과 관련된 학문이다. 이름하여 '목회실습'이라고 한다.

임 목사님이 쓰신 여러권의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목회자가 쓴 ... '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목회자가 쓴 목회학''목회자가 쓴 청지기직''목회자가 쓴 요리문답' 등등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그 분이 교수직 보다는 하나의 목회자로서 담담하게 글을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목사님이 쓰신 7 권의 저작전집 첫권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글이 써 있다.

목회를 시작할 때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목사가 힘 써야 할 것 세가지와 주의 해야 할 것 두가지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힘써야 할 것 세가지는 ① 교회 처리는 바르게 ② 설교는 은혜스럽게 ③ 심방은 사랑스럽게 하라. 조심해야 할 것은 ① 돈에는 청렴하라 ② 이성교제는 덕스럽게 하라.

목사가 받는 영광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괴로움도 견디기 어려운 짐 임에는 틀림이 없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시달리다 보니 육신의 고달픔이 크고 형형색색의 교인들이 부모처럼 섬기고 자녀처럼 사랑으로 대하다 보니 마음의 아픔이 무겁고 목사도 희로애락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을 숨기며 살다보니 인간적인 슬픔이 많다는 것이다. 임 목사님은 계속해서 목회자란 영광에 따르는 시험을 물리치며 육신의 고달픔과 마음의 아픔과 인간적인 슬픔을 극복하는 자만이 목회자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서술하였다.

목사님께서는 계속하여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목회 십계명에 담아 놓았다.

1. 교회정치는 바르게 하라.
목회자는 교회의 조직관리, 인사관리, 재정관리를 맡은 자이므로 그 맡은 일을 성실 정직하게 하여야 한다. 교회정치가 바르면 교회는 평안하게 성장하고 교인들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힘을 써서 교회를 봉사하게 된다.

2. 설교는 은혜롭게 하라.

3. 심방은 사랑으로 하라.

4. 욕심을 멀리 하라.

5. 이성교제를 주의 하라.6. 분수에 맞게 살자.

7.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라.

8. 항상 배우는 자가 되라.

9. 생각은 깊이 하고 행동은 진실히 하라.
10. 멀리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오래동안 목회현장에서 계셨던 분이기에 하나하나가 중요한 내용들이다. 목회의 대가이기에 그 분에게 부족한 저를 비교한다는 것이 외람되지만 한참 쫓아가도 다 못 따라 갈 목사님이다.

스펄전 목사를 찾아 온 어떤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목사 청빙 위원회의 임원들이었다. 스펄전 목사에게 이런 분을 소개해 주십시요하고 메모를 내 놓았다.

1. 훌륭하고 탁월한 목사.

2.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

3. 불타는 마음으로 설교하는 목사.

4. 자비로운 마음으로 성도들의 상처를 싸매어 줄 수 있는 자.

5. 솔로몬의 지혜를 가진 자. 6. 미남일 것.

7. 명철하고 활기차며 적극적인 사고의 소유자.

8.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조화를 이루는 사람.

9. 뛰어난 행정능력을 갗춘 자. 10. 창조적인 사업적 두뇌의 소유자.

스펄전 목사가 이글을 찬찬히 읽어보더니 무릎을 탁 치면서 '아,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펄전 목사는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면서 조용히 말했다. '천사를 초청하십시요. 사람들 중에 그런 분은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목자의 심정은 언제나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게하는 것이다. 꼴을 먹임으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농부는 쌀찐 소를 구하지 않는다. 깡마른 송아지를 구해다가 살찌우는 사람이다.

여러분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여기 서 있는 이 목사는 풍성한 꼴을 먹이지 못한 것 같다. 살찌우지 못한 것 같다. 교회 예산만 축냈을 뿐이다. 부임하자마자 제 아내가 유방암으로 절제수술을 하였다. 원일교회 당회는 부족한 저희 가정을 위하여 수술비용을 전담하였다. 온 교인들은 기도로 도와 주셨다. 제 아내는 겉으로 보기에 건강하지만 치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학생이 둘이나 되어 그들 몫의 입학금 등록금도 교회가 담당해 주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3년 전 제 어머님이 돌아 가셨을 때 교회는 장례를 위하여 큰 돈을 부조해 주셨다. 지난 여름 노회 일로 미국 갈 때에도 교회는 여비를 보조해 주었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베풀어 주신 사랑을 저는 잊지 못한다. 어떻게 잊겠는가 지난 87년 6 월에 원일교회에 부임한 이후 저는 교회에서 받은 것 뿐이다. 어느 것 하나 받지 않은 것이 없는 정말 크게 빚을 진 목사이다. 이제 내가 이 교회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삯군으로서의 일일까 아니면 선한 목자로서의 일일까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도 생각하고 계셨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 이 말씀은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의 분명한 선언이다. 양을 사랑하고 양을 보호하며 양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주님이 가지신 생각은 참으로 넓고 크다. 그것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 주님이 요구하시는 세계 속의 교회로 발전되어 나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친히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이 우리로 이끌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나 결코 한 우리 속에 뫄겠다는 의미로 보기도 어렵다. 이 우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듯 다른 우리에 대한 관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의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일을 위하여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위선을 질책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에서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크게 원한다. 예수님을 그것을 아시고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기를 원하셨다. 바라는 것은 성도 여러분을 향한 나의 사랑이 거짓 없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노라 (18)
예수님은 누가 나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기 백성을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이다. 요한복음 3:16 에 기록된 말씀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감격스러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였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와 같이 자기 생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거든 아멘으로 화답하라.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여 충성을 다 하고자 하거든 할렐루야로 화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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