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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성전늘 헐라 (요 0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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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입니다. 본문 16절에 "비둘기 파는 사 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 들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기록인 마21:12절 이하에는 좀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좇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 시니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 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이렇게 요2장과 마21장 사이에 가장 특이한 점은 마21장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한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인용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사건이 그분만이 하신 사건이 아니고 옛 날에도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추적해 보아서 그 과거의 사건이 어떤 것인가를 잘 이해하는 것이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본론>

대하34:1-4절 말씀부터 보십시다.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세라 예루 살렘에서 삼십 일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 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지 팔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이십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 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시야 왕은 유다 말기의 왕입니다. 요시야 왕 이후에 몇 왕조를 지나지 않아 이 스라엘이 망합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말기에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 회개케하고 종교 개혁을 일으킨 아주 큰 업적을 남긴 선왕입니다.

대하34:1-7절 까지는 요시야 왕이 어떻게 우상들을 제하여 버렸는가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다음 8-13절 까지는 성전을 수리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 성전을 수리 하다가 성전안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요시야 왕은 더 깊이 회개하고 더 깊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하 면서 35장에 가서는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킵니다. 34장과 35장에 걸쳐서 요시야 왕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였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7장을 찾아보면 예레미야의 무서운 경고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경고를 읽기 전에 우리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요시야 왕이 지금 성전을 수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진실된 마음으로 죄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모이고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성전으로 모이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하필 그 때에 예레미야를 보내서 성전 문에 서서 이상한 경고의 말씀을 하게 하셨을까요 렘7:1-4절을 보십시다.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 는 여호와의 집 문에서서 이 말씀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 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 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 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 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말라."하는 이상한 말씀을 합니다.

그 때의 상황이 어떠했느냐 하면 한 쪽에서는 왕이 선두에 서서 종교개혁을 단행 하고 회개케 하고 전심으로 주를 따르게 하여 우상들을 없애는 대부흥 운동이 일어 납니다. 이 일이 얼마나 진심어린 일이었느냐 하는 것은 역대하34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34:12절 이하를 보면 성전을 수리할 때 사람들은 진심으로그 일을 했다고 했 습니다. 35장에서 유월절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35:10절에 보면 "이와같이 섬길 일이 구비하매 왕의 명을 좇아 제사장들은 자 기 처소에 서고 사람들은 그 반열대로 서고 유월절 양을 잡으니...."라고 하였습니 다.

자기 처소에 가서 섰다는 말은 자기의 맡은 일을 제대로 했다는 말이고 기강이 잡 혔고 군기가 엄정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15절에는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 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 은 각 문에 있고 그 직임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로 바꾸면 성가대들은 가운을 입고 성가대석에 앉고 안내하는 분 들은 안내하는 자리에 제대로 서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른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일이 행해지지 않고 있다가 이제 그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18절을 보겠습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 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그러니까 사무엘 이후로는 이처럼 유월절을 제대로 지 켜본 적이 없을 만큼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백성들과 요시야 왕을 위시해서 얼마나 많은 기쁨과 감격과 희열이 있 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느닷없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문 앞에 세우시고는 렘7:2-4절에서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 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 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화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말라." 하는 무서운 경 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슨 말씀인지 잘 깨닫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한 쪽에서는 잘 하고 있고 한 쪽에서는 경고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위해서는 렘7:5-11의 말 씀을 계속 일어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른게 하여 아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 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 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 희 조상에게 영원 무숭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 희가 도적질 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 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 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 이느냐 .... " 바로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내 아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이것이 힌트가 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성심껏 모여드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집을 도적의 굴혈로 만들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앞의 말씀인 렘7:4절을 살펴 봅시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말라." 그러면서 무었을 경고합니까 5절 이하에 그 내용이 나 타납니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 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면..."축복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만일 그렇게 행하면 이 성전도 가치 있겠지만 너희가 이것이 여 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면서도 선과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여 호와의 전에 매달려 있어도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8절을 보십시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 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 을 좇으면서", 이렇게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와 제사만 지내면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같은 생각과 행동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집이 도적의 굴혈이 되었다는 말입 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소행을 하면서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도적질하는 것이라 고 그랬습니다. 왜 그것이 도적질이 됩니까 하나님 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서 제 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 니다. 그런데 이대로 준행하지 못하면서도 다 준행한 것처럼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그것이 곧 거짓이요, 마음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렘7:21절 이하를 보십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 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오 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 제물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는 이 말씀은 "너희가 바친 제물은 너희나 먹으 라, 너희가 나에게 고기를 바치고 할 짓 안할 짓 하지말고 고기는 너희가 그냥 먹 고 제발 말이나 잘 들어라"는 말씀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서 돌아서서 딴 짓을 하려거든 차라리 제사를 드리지 말고 말이 나 좀 잘 들으라는 말입니다. 희생 제물을 바쳤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하면서 딴 일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출애굽시킬 때에 언제 제물에 관하여 말했느냐 그저 내 말을 잘 들으라고 그랬지"라고 책망하십니다.

렘7:10절에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하면 서 무섭게 꾸짓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무었인지 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속지 않으시며 또한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짓을 다 하면서 하나님께 제물만 잘 바치면 그것으로 눈가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계산착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가고있는 너희를 그대로 놔 둘것 같으냐는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가 권위가 있다고 내세우는 곳 치고 변변한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의 권위 중 에는 여러가지 권위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는 강대상의 권위가 있습니다. 꽃으로 거창하게 장식을 해 놓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권위의 상징이 아닙니다. 성가대원, 장로, 이런 직함도 권위의 상징이 아니고 봉사 직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 교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직분을 사고 팝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교회 이건 그렇게 안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왜냐면 성경이 늘 경고하고 있듯이 인간은 꼭 이런 실수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를 보면 장로 장립을 할 때에 적게 내면 기백만원, 많이 내면 기천만 원 을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장로를 선출할 때에 영적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교회가 필요로 하는 거액을 내 놓을 수 있는 사장급들을 좋아 합니 다. 거기에 돈 장로로 뽑혀서 교회에 거액을 한 번 투자하고는 계속 뽐내는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도적의 굴혈이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한국교회가 욕을 먹어 당연한 일들 중에 제일 많은 일들이 바로 목사들로부터 시 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욕할 필요가 없는 것이 목사같지 않으면 그 교회에 안 나 가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 됩니다. 그런데 왜 욕을 해 가면서 까지 꼭 그 교회에 나 갑니까 이같은 현상의 그 밑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을 제일 우선적 인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작용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는 상거를 하고 있는 도득들이요 해적이요 산적들입니다.

우리가 늘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쁘게 보이는 것 외에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것이 없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한 것을 잘 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자고 하셨겠습니까 바로 이같은 문제로 인해 개신교가 구교로부터 갈라져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냥 예배당, 예배드리는 건물이라 그러고 이것을 무슨 성역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모임 그 자체를 성전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건물이 성전이 아니건만 우리는 자꾸만 교회를 성역화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이렇게 해야, 생각과 소행이야 어찌 되었든 그저 거룩한 성전에 와 서 예배만 드리면 무었이든지 해결 된다는 사람들의 우매함이 비일비재하게 통용되 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건물을 성전으로 치장시켰을 때에 생기는 부작용이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약 시대의 교회 안에서도 성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사기꾼들이 생기고 도적떼들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만 성전을 헐자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1:6-10절 을 보십시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 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을 경 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 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 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희를 기뻐하겠느냐 너 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에 하나 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 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기 있었으면 좋겠도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자고 하시는 것과 이 말씀이 무었이 다릅니까 구약에서 현 재까지 하나님의 가장 안타까우심이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높여져야 할 곳 에서 하나님이 모독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들먹여지고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많이 불 려지면서도 그 분께는 전혀 영광이 돌려지지 않고 그 분의 말씀은 한번도 권위있 게 선포되지 않고 순 사기와 협잡과 모리배들만 모여서 자기들의 이익과 탐욕을 채 우기에 바쁜 싸움과 장사꾼들의 소리치는 훤화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아 나오고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인정하는 소이가 어 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근거를 무었으로 삼으시겠습니까 예레미야 7:16-18절을 보십시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 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 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들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 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여기서 이스라엘이 무었을 하고 있습니까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는 불을 피 우고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우상을 섬길 과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입 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식에게 무었을 가르치고 있고 무었을 목표로 하여 엿새 동안의 사회 생활을 영위하고 계십니까 무었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무었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무었을 가장 두려워 하십 니까 자녀들에게 무었을 가르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가르칩 니까 아니면 출세하는 것을 가르칩니까 출세하는 것에 게을러도 좋다는 것은 결 코 아닙니다. 문제는 무었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데,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여기에서 지적받고 있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렘7:5절 이하를 보십시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 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니까 그러면 선행을 행하되 특히 가난한 자 와 불쌍한 자를 돌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사귀는 사람과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익을 보기 위한 사람들입니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닙니까 그들을 알므로 해서 조 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사람과 친한 것은 아닙니까 친해져서 손해보는 사람들과는 가급적이면 만나기를 회피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찾아오면 밥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냐 되는 사람, 돈이라도 빌려 줘야 되는 사 람, 꿔줘 받자 받지못할 이런 사람은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런 사람과 친숙하라고. 우리가 사는 목표는 세상의 명예도 권세도 아닙니다. 이 세상이 갖고있는 힘과 물질과 권 세를 탐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누구인가를 증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갖 고 계신 것을 다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건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단지 그것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투자하지 말 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가난한 사람과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볼 곳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 많 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돈과 물질 뿐만 아니라우리의 시간을 필 요로 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우러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도 할 수있 다"하고서 이를 악물고 한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는 한 아 무리 십일조를 일억원을 내고, 눈을 빼어서 헌금을 내셔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하는 말에 현 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옷을 입고와서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설교 말씀을 듣고 참 옳으신 말씀이다, 참 잘 부른다 하고 돌아가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어 떻게 사느냐로 밖에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헐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성전에 앉아서 제사장 노릇 하고 제물을 들고온 사람들의 마음을 헐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 로 예배를 드렸느냐 안드렸느냐를 확인하기 위하여 외식하는 자를 없이 하기 위하 여 성전을 허시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의 마음에 외식과 형식이 있습니까 형식과 외식으로 만족한 성전들이 여러 분의 마음에 없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성가대원을 하기 때문에, 나는 집사이기 때문에, 나는 십일조를 내고 있기때 문에 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안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같이 이용되는 성전 을 허십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와 예배는 단 하나의 기준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고오는 시대 속에 이 부분은 두고두고 책망 받았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 또 한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족속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엄중한 경고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철저히 지적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헐 것은 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어떤 형태의 성전이든 헐어 버리십시오! 지금은 성전이 필요 한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한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탐욕을 위하여 하나님과 성전을 들먹이지 마시십시오. 오직, 신령 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사시면서 이웃을 돌아 보십시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가를 경험 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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