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은혜 없는 삶 (요 21:1-6)

첨부 1


바울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가 이것 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 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 니하면 거룩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은 은혜가 떨어진 사람들의 생활의 단면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흔히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말합니 다. 이 말은 은혜를 받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말도 되는 것입 니다. 그러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 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이 은혜의 선물을 받을 때에 생활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게되면 첫번째로, 구별된 생활을 하기에 족한 환경에 처하 게 됩니다. 창세기 6장 8절에서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노아가 그 악하고 패괴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죄악과 패역에 물들지 않고 바르 게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 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구별된 생활을 하 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느낍니다. 이 세상이 너무 불의하고 음 란과 패역이 가득하여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바르게 살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탄식소리와 함께 저 절로 죄악에 점점 침몰해 들어가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 환 경이 좋아야 우리의 생활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환경이 깨끗 해야 우리가 죄를 안짓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와 마찬가지로 패역하고 악이 가득한 시대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그 은혜 가 우리를 보호하여 저절로 구별된 생활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축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창세기 39장에는 요셉의 전기가 나옵니다. 요셉은 노예생활을 11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죄인 아닌 죄 인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감옥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은 노예의 생활 속에서도,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헤아일 수 없는 큰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 주의 저주인 줄로만 생각합니다. 좌 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억눌리는 노예생활 속에 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대신 이 되어 그가 부귀영화를 누림은 물론, 자기의 칠십여명의 식구, 나중 에는 430년 만에 육십만 대군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 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은혜 받는 것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 혜를 받으면 여러분의 삶이 형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세번째로, 은혜를 받으면 믿음의 생활을 하게 잘하게 됩니다. 바울사 도는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 원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은혜를 받으면 믿음생활이 저절로 잘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 보면 "마음은 원이지만 신앙생활이 잘 안된다." 주일날 예배드리고 싶지만 몸이 말을 안들어서 주일을 자 꾸 범한다." 왜 그렇습니까은혜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바 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혜생활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받은 은혜가 나를 붙들어서 신앙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 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은혜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에 게 주시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장 17절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 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변화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은혜 자체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은혜가 떨어진 사람의 생활상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1. 옛 생활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자기의 동료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 으러 가노라" 하면서 디베랴 바다로 가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옛 생활의 자리로 다시금 돌아간 시몬 베드로의 모습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타락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타락은 음란하여 죄 짓는 것만이 아닙니다. 타락은 은혜의 자리, 사명 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은혜와 사명의 자리를 떠나 가는 것, 이것도 타락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주님이 말씀하셨을 때 베 드로는 과감히 고기잡던 그물을 던져 버리고 주님을 따르던 놀라운 신 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의 결단력이 있던 베드로가 옛 생활의 자리로 돌아가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다시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베드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위대한 계시가 나타나기 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큰 징조가 보이지 않자 실망해서 옛 직업인 어 부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갔다고도하고,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 고 지연되자 실망해서 세상을 나갔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주님을 따르 던 베드로가 사명의 자리를 떠나 옛 생활의 자리로 되돌아간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타락이요 이것이 바로 영적인 침체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은헤가 떨어지게 되면 자연히 옛 자리로 돌아가 게 되는 것을 봅니다. 끊었던 세상의 친구를 다시 만나고 멀리했던 세 상 쾌락을 가까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가 떨어지게 되면 죄악 의 현실을 바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떨어 지지 않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시류에 편승하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려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 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뚜 렷이 자기주관이 없는 사람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자기 주관없이 시류 에 편승하는 생활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20장 19-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 자들에게 두번 나타납니다. 한 번은 그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을 때에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리고 말씀하시고, 8일 후 도 마도 함께 있을 때에 또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옆구리와 손바닥을 보이 시며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께서 두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마땅히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베드로 를 따라 갈릴리 바다에 나간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런 행동이 바로 시 류에 편승하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사람이어 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베드로와 여섯명의 제자들처 럼 이 시대의 잘못된 조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신앙인이라고 자처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바른 신앙을 따르기보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 세속적인 신앙생 활을 하는 삶들이 많이 있습니다. 적당히 시대와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오늘날 성도들이 이렇게 병들었습니까은헤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 문입니다. 참 교회, 참 말씀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삶이 허무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 다. 베드르와 여섯 제자들은 노련한 어부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룻밤 내 내 고기를 단 한마리도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갈릴리 바다는 늦 은 밤이 고기잡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그밤에 제자들은 단 한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것에 대해, 실패로 인해 맛보는 허무감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기대하고 붙잡아 보려는 것들 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물을 던집니다. 무엇을 향해 던집니 까 돈과 명예,권력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결국엔 삶의 허무감을 느끼게 되고 맙니다. 일평생 동안 잡아보려고 하던 것 에서 허무감을 느낄 때 인생은 벌써 노년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실패는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도마만이 아니라 일곱명의 제자들 모두 한결같이 물고기를 잡는 일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은혜가 있는 사람은 실패해도 주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없는 사람은 그것에 인생의 마지막인 줄 알아서 좌절하고 허무해합니다. 사람은 누 구나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은혜를 받으면 실패는 성공의 디 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4. 영적인 무지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 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라고 말합니다. 왜 몰랐을까요 영 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은 다 눈으로 식별할 수 있으나 예수님 만은 눈으로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도 바로 앞 의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은혜의 눈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예수가 곧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식별하지 못한 다는 것은 말씀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말씀 을 읽어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안이 어둡고 은혜 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깊은 세계를 못 봅니다.

 은혜가 메마른다는 것은 바로 제자들이 옛생활로 기울고, 시류에 편 승하고, 허무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가운데 산다는 것입니다. 결국 절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도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고 합니다. 옛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시류에 편승하는 제자들에게, 허무감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자신을 나타내셨고 하룻밤 동안 단 한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은 큰고기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말 씀으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을 어떻게 살 것인 가하는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면 은혜가 떨어졌을 때가 얼마나 많습 니까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치 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를 이 시간에 찾아 오셔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통 해 일하시며, 말씀을 통해 축복하시며,말씀을 통해 사명을 주시는 놀 라운 역사를 체험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일치되는 체험을 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