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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으로 예배하는 자 (요 04: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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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8:25이하를 보면 모세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려는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 마음대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는= 모세에게 굳이 애굽을 떠나려고 하지 말고 이곳 애굽에서 얼마든지 너희 하나님께 예배 드리라고 했지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이 백성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고집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집단예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살고있는 애굽에서 예배 드리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한 장소에서 한목소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어느 종교나 예배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 행위와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의 대상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의 예배 대상은 관념이나 물질이기 때문에 살아서 예배를 받는 인격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 대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될 참 예배에 대하여 세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1.나와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앉아 있는 곳이나 살고 있는 곳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살고 있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했고-광야 40년 동안에는 성막에 나와 예배해야 했고-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에 나와 예배 드려야 했습니다.-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다음에는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예배에 있어서 예배의 장소가 절대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예배하기 위해서 나온다는 그 행위 자체가 예배자로서 매우 중요한 결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행8:26이하를 보면 그 당시 에디오피아의 국고장관(재무장관)이 단순히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왔었다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만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예배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와야 했습니다. 국사에 분주한 그였지만 그는 예배하기 위해 먼 길을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예배 드리고 돌아갔습니다.

후암동에 소재한 모 교회 장로님은 생전에 당뇨병과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던 분이었습니다만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 기도회에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분이 사시는 댁은 이문동이었습니다. 그는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시간마다 빠지지 않는 이유를:(1)예배는 나오는 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2)장로라는 체면 때문에 (3)교인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4)목사님 걱정 끼쳐 드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주일예배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왜 나오지 못했느냐고 물으니까 오늘 교회는 못나갔지만 예배는 드렸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렸느냐니까 기독교방송을 틀으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는 프로가 있어서 그것을 들으면서 잠깐 예배를 드리고 볼일을 보았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권사님은 새 옷을 해도 결혼식이다 무슨 모임이다 하는데 입고 나가지 않고 걸어 두었다가 주일에 먼저 입고 나온후에 다른 모임에 입고 나간다고 합니다. 미장원에 가도 토요일에 가서 단장하고 주일에 단정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동창회나 친교모임에 나갈 때는-시간을 지키고 온갖 정성을 다해 몸치장을 하고 나가면서도 하나님앞에 예배하러 나올때면-아무렇게나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심지어 슬리퍼나 운동복차림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분방한 나라이지만 경건한 신자들은 주일에 교회에 나갈때만은 모두가 정장입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모두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나갑니다.

예배는 단정한 차림과 사전 준비도 필요하고 그리고 예배시간도 중요합니다. 시간 지키기란 습관입니다. 5분 10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보면 5시간 10시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이 정해지면 그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가령 사업하는 분이 10억 정도 융자를 받기 위해서 어느날 오전11시30분에 모은행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합시다. 누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공로가 인정되어 훈장을 받기 위해 어느날 오전 11시30분에 대통령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고 하십시다. 10분이나 30분을 늦추어 나가도 되겠습니까 예배란 준비에서부터 시작되어 나오는 그 걸음이 예배이며 교회에 도착하는 그 시간도 예배의 진행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약속 시간입니다.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2.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영적인 예배를 기뻐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영적 예배가 무엇입니까 롬12:1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 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니라”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신령하다는 말은= 비물질로서, 시간이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신령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중요하고 진실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예배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소나 양이기보다는 나 자신입니다. 나를 만나기 원하시고 나를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는 오늘 교회는 못나가지만 나 대신 헌금이나 가져다가 바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잘 모르는 소위입니다. 그리고 몸은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 내내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도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나오는 예배도 중요합니다만 나와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스티븐 케르낙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며 그것은 하나의 연극무대이다. 참으로 우리의 예배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신실한 예배는 드려야 한다.”

주경가 바클레이는:“영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영적 예물이란 사랑, 충성, 순종, 헌신이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것들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랑과 충성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3.예배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배란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루나 이틀이나 한두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게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예배가 지루하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다. 예배순서 보면, 찬송, 기도, 설교, 헌금, 교제, 축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예배인 것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참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기쁨과 평안과 축복이 임합니다.

행8:39을 보면 에디오피아 국고장관이 예배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흔연히 갔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기쁨이 가득한 채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건성으로 예배에 참석이나 하고 구경이나 하고 가는 사람들은 공연히 시간낭비 했다든지 그 시간에 다른 곳에나 갈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만, 참 예배를 드리고 가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는 참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창세기를 읽을 때마다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하곤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족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머무는 곳마다 그곳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았다”=‘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이 단을 쌓을 때마다 하나님은 거기 나타나셨습니다. 그 당시는 유목 시대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옮겨다닐수 밖에 없었습니다. 족장들이 옮겨가서 맨 먼저 한일이 예배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으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한가지 실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창37:7을 보면, 야곱이 벧엘에서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단을 쌓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단을 쌓은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축복은 너무나 엄청났습니다. 그 내용이 창35:9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듯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승리자”라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2)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형성케 되리라는 것과 창대케 해주시겠다는 복을 주셨습니다.

(3)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과연 야곱의 혈통에서 왕들이 나왔고 결국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4)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왜 단을 쌓을 때 이런 엄청난 축복을 주셨겠습니까 (1)그만큼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일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2)예배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위엄과 사랑을 믿고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에배란 절대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4)예배란 하나님과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예배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북한에 살고있는 신자들이 그렇고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그렇고,-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예배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건강할 때, 시간 있을 때, 자유로울 때, 예배를 힘씁시다. 열심으로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드리려면, 교회에 나오기를 힘쓰고 시간을 지키고 정성으로 준비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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