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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 (요 06:22-40,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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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몇몇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찾아 다니다가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으로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이토록 주님을 찾는 까닭이 무엇이겠읍니까 기적을 체험한 이들의 눈에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을까요.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1)"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26) 그들이 찾아 온 것은 그들 육신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서 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굶주린 배를 채워주셨기 때문에 찾아 온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을까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열심이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잘 따르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주님의 두번째 지적하신 말씀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입니다.(27)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썩어질 양식입니다. 세상적인 부귀, 명예, 쾌락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썩는 양식은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우리를 쉽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에 있어서 육신의 양식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적인 삶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삶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적인 양식이 좋아도 이것들을 죽음의 저편으로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의 주변에서 떠나고 말 것들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애써 일하는 삶은 현재의 생활을 충족시켜 줄 수는 있어도 장래의 영광된 자리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3) 세째로 그들은 예수를 믿게하는 표적을 구했습니다.(30)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자신을 믿도록하는 표적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많은 표적을 잊고 있었습니다.

당장 어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도 잊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조상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만을 크게 생각하고 지금 주님이 보여주신 기적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만나도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여주시면서 그 분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한다."고 신명기 8장 3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고 믿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지금 예수께서 또다른 무엇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 입니다.

주님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 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38-39절-“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1.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35) 생명의 양식이 무엇 입니까 (요6:35)"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생명을 찾는 사람의 요구를 채워주시는 유일하고 영원한 분이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바로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십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가운데서 만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여기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주님은 생명의 분여자 이시며, 공급자가 되신 것 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으며, 생명을 공급 받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안받아들이느냐는 믿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믿고 받아 들이면 생명의 양식을 먹고 목마르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하는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2.예수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려 오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40) 누가 19:1-10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시다가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삭개오(Σακχαιο )’라는 이름의 뜻은 ‘청결한’,‘의로운’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자카이’에서 유래된 말로 ‘의로운 사람’,‘순전한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의 뜻과는 달리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삭개오를 여려가지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삭개오 2절-세리장,부자 3절-키가 작은 사람 7절-죄인 예수님께서 보시는 삭개오 9절-아브라함의 자손 10절-잃어버린자 눅19:10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밝히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죄인이요,세리장 이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죄인으로 낙인 찍혔고 상종하지 않는 세리장이 였지만 예수님께서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시는 순간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눅 15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때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말씀을 들을려고 가까이 오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사람은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원망하면서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사람으로 평가해 버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①잃어버린 양을 찾아 온 산을 해매는 목자의 비유, (눅15:1-7) ②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눅15:8-10) ③집을 떠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눅15:11-32) 이러한 비유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으며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①백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가 그 양을 찾기 위하여 온 산을 해매고 다니는 것과 같고, ②동전 열 드라크마(10일간의 품삯)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그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그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불을 커고 부지런히 찾을 때까지 이곳 저곳 집을 쓸며 찾아 다니는 것과 같고, ③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탕자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다.하시면서 너희들의 눈에는 세리와 죄인으로 보이느냐 내 눈에는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와 아들로 보이는 구나.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려 왔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로 보신것은 우리에게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인것을 아시고 부르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신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2.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죽음의 종류를 3 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1)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을 영적 죽음이라 합니다.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2)영과 육의 분리를 죽음이라 합니다.

(전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전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전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3)마지막 심판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이세상에 오신 것 입니다.

요6:39하반부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죽음(영혼과 육의 분리) 만 두려워 하고 싫어 하는것이 아나라 영적죽음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두려워하고, 불과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햬야 합니다.

 주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사 단절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살리셨고,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 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다시 살리리라.”(요6:39) 여러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이 세상의 여러 조건들을 두려워 해서는 안되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10장를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고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시면서 걱정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구나....” (마10:16)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10:2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2.그 해답은 주님이 주신 말씀속에 있습니다.

1)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27) 그렇다고해서 지금 있는 삶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살되 보다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 영적인 생명의 양식에 힘을 쓰고 살라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29) 그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많은 일들에 대해서 염려하고 땀을 흘리면서 많은 걱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한가지 일 만을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일"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히11:6) 그리스도와 가까이 하고 그를 의지하는 믿음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고, 그 분께 우리 자신을 "내 맡기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 입니까 생명의 양식을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십니다.

잃어버린자를 찾으려 오셨습니다.

죽은자를 살리려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인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았고,우리의 신분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의 양식을 위해서 일을 잘 해 나가야 하고,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진 해야 합니다. 우리모두 그렇게 되기를 축원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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