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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안에 서있는 교회 (요 0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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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끄로드 모르강이 쓴 ‘인간의 증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프랑스인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였습니다. 그는 포로 생활중에 그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인 폐결핵에 걸려서 석방이 되였지만 그는 다시 지하운동 즉 레지스탕스가 되여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독일의 비밀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사형장으로 끌려가며 자기 조국의 국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죽게 됩니다. “너희들이 인간은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히 죽이지 못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위하여 살다가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가르쳐서 순교자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2천년 역사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맨 처음 진리를 위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은 스데반집사 이고 맨 마지막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은 몇 일전 중국에서 주일 날 당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지하교회에 나갔다가 붙잡혀서 경찰들에게 매 맞아 죽은 중국의 교인이였습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지키며 살고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진리를 위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이어져 온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진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도 바로 진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신 것도 진리를 지키며 살아 온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진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두 가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곧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서 진리는 에메트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변치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지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진리라고 증거 하시고 있습니다. 요14:6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십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인간의 삶의 길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고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통하여 우리들의 삶의 근본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며 우리들의 죽음 이 후의 문제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하여 산다. 또는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는 말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살아야 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는 다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요18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빌라도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빌라도는 38절에서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유명한 질문을 하고 주님께로부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지만 사실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빌라도의 관심은 진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땅에서 총독의 일을 잘 마치고 로마 황제에게 인정을 받고 승진하여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진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빌라도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현재 살아서 즐기는 것에만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쾌락을 쫓고 육신의 향락을 위해 살고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진리를 잘못 깨닫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진리에 대해서 알고는 싶으나 인내심이 없어서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인쉬타인의 상대서 원리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중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와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고 나오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을 들여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가 않는 것이 였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전화국에 전화를 하여 “지금 내가 공중전화를 걸고 나가려 하는데 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으니 와서 문을 고치고 나를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전화국에서 직원이 급하게 달려와서 문을 열었는데 금방 열리는 것이 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은 안으로 잡아 당겨야 하는데 이 여인이 당황하여 밖으로 밀기만 하니 열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문을 여는 법을 알면 어린아이도 쉽게 열 수 있는 문이 였는데. 이 여인은 문을 여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 작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몇 십분 동안 고생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면 우리의 삶도 기쁘고 평안할 것이며 감사가 넘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면 생명의 문을 바로 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며,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은 진리를 알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며,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따라 산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들의 삶의 표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엄 목사는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다섯 가지 일을 매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 위하여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기도로써 매일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것. 3)남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 4)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간의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것. 5)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사람들에게 실천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은 진리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진리를 삶의 표준으로 삼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랑을 행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진리를 따라 살아 간다는 말은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을 나눈다면 육신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육신을 부정하고 신비한 세계속에서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한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하고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란 이 땅에서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의 욕망보다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이나 육신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안에 사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소망보다 하늘을 바라보는 소망이 더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진리 안에서 사는 자라는 말은 소금과 빛처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5:13-14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소금은 소극적인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고 빛은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소금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는 말씀은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과 같다.” 또는 “소금처럼 살아야 한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위치와 책임을 말씀하시는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금은 세상에서 아주 값이 싼 것이며 흔한 것입니다. 일상적인 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다이아몬드니” 또는 “너희는 세상의 금덩이 이니” 하셨다면 우리들이 세상에서 더 귀하고 존귀한 자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시지를 않으시고 그 흔하고 흔한 “소금이니”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귀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금은 방의 진열장 속이나 깊은 금고 속에 숨겨져 있는 귀금속이 아니라 쌀집에서나 슈퍼에서 얼마든지 싼 값으로 살 수 있고 아무 집 부엌에 가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저 흔한 존재이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평범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진리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소금이지만 그 가치는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소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당시에는 소금으로 군인들의 봉급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소금 한 자루와 사람 한 명을 바꾸기도 하였고 그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딸을 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에게는 꼭 소금이 필요합니다. 소금을 먹지 못하면 병이 들거나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양을 키우는 유목민들은 양이 소금을 먹지 못하면 비실 비실 하며 기운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풀밭에 소금덩이를 가져다 놓으면 양들이 소금을 핥아먹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름에 소가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을 못쓰면 소금을 먹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없으면 살수 없는 것이기에 소금이 그 가치가 더 존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진리안에 사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힘이 있습니다. 음식의 썩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음식은 소금에 절이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자는 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소금은 맛을 내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고기라고 해도 소금 없이는 맛이 없어서 먹기가 거북합니다. 소금을 찍어 먹어야만 제맛이 날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 되는 것입니다. 진리안에 사는 사람은 삶의 맛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삶의 기쁨을 느끼시고 있습니까 행복을 얻고 있으십니까 진리안에 사는 자들은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인생의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세가지 종류의 빛이 있습니다. 1)자연의 빛으로 태양의 밝은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이 빛을 통하여 생명의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2)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빛이 있습니다. 3)영적인 빛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적인 것이요. 도덕적인 것이며, 신앙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고, 인간의 내적인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빛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거룩함을 드러내고 영적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둡고 추한 죄악의 모습으로 세상을 비추는 자들이 아니라 환하고 밝은 생명의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빛은 생명을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이 없으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빛은 인생의 삶의 방향을 바로 정해 주는 것입니다. 경제사가 토인비는 “이 세상은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희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진리안에서 빛이 되여 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따라 살아야 하고, 어두움에서 죄악으로 죽어 가는 영혼들 또한 죄악의 공포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비추어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의 빛을 찾게 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진리를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떠한 복이 오겠습니다.

1.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은 세상의 죄악과 사탄의 권세를 이길 것입니다. 엡6:4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 진리는 허리띠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허리띠는 전쟁을 하는 군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무장입니다. 허리에 띠를 꽉 잡아 매야 몸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한 허리 띠에다가 여러 가지 무기를 매달아 무장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진리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은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롬3:10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셨고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앞에 죄인이였던 우리들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 거하는 자만이 거룩해 질 수 있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3.진리를 따라 사는 성도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전쟁도 하고 자유를 위하여 생명도 아낌 없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요8:23에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죄에서 자유를 주었습니다.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를 자유 하게 한 것입니다.

4. 진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엡4:24에서는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진리안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하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행하고 전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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