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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확실히 구원받으셨습니까? (합 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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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이란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초대하는 것이 며, 미리 사랑하신 자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부르심 이란 하나님께로 오라고 초대하는 것이면서 또한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것입 니다. 초대할 뿐만 아니라 오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부 르심에 포함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 고"(롬 8:30).

이 말씀을 보면, 예정하시고 그 다음에 먼저 사랑한 그 사람들을 자기 아들을 닮도록 정해 놓으시고 그 다음에는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름에 응한 사람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양자를 삼으시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 아 우리를 성화(聖化)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단계들입니다.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 하나만이 아니라 그 속에 여러 가지를 포 함합니다. 구원이라는 말을 넓게도 쓰고 좁게도 쓰는데, 넓은 의미로 쓸 때 는 구원의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합니다. 어떤 때는 죄에서 사함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일 그 자체만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넓은 의미인지, 좁은 의미인 지, 일반적인 의미인지, 특수한 의미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앞에서,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초대하시는 것은 "일반적 소명(召命)"이고, 이끌어 주시는것은 "특수한 소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아는 사람 은 일반 소명도 받았고 특수 소명도 받은 사람입니다.

 일반적 소명 첫째로,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오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 55:1).

목마르면 누구든지 와도 괜찮은 것입니다. 여기서 목마른 것은 영적으로 목마른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하 나님은 다 오라고 하십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이 초청을 듣고 오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오라고 하는데도 싫다, 바쁘 다, 시집가야 한다, 장가가야 한다, 밭갈아야 한다며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 겠습니까 이 일반 초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 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38).

이 말씀은 이사야서 55장 1절 말씀과 비슷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께서 하신 말씀을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께서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은 자기가 하나님임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 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계 22:17).

신구약성경은 물론 심지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까지도 하나님 의 초청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초청을 일반적 소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둘째로, 믿음과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교파에 따라 회개를 믿음 앞에 두기도 합니다. 회개가 먼저든 믿음이 먼 저든 믿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회개가 생기기도 하고 회개함으로 믿음이 생 기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부르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는 말씀처럼 자신이 하 나님과 원수 되었음을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해야겠다며 돌아오면 회개와 믿음이 둘 다 생깁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건적 약 속입니다.

"누구든지 주(主)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초청에 응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 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일반 소명이며,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것은 특수 소명입니다. 본인이 나아올 때 조건이 충족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도 잔치에 오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초청을 거절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옥 가는 것은 자기 발로 가는 것입니다. 누구 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구원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실 때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 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사하시 고 하늘 문을 열어 누구든지 들어가게 하셨다는 초청에 감사함으로 응답하 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구원받는 것은 대단히 쉽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6절을 보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혼인 잔치 초청을 거절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는 예수께서 예 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꼭대기에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 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 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 도다"라고 하면서 눈물 흘리셨습니다. 원치 않을뿐 아니라 심지어 오라고 보낸 사람까지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르셔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은 거절한 사람의 책임이며 그 에 따르는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왕의 초청을 거절한 데 대한 결과를 보십시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를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 르고"(7절).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결과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행 13:46).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 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9).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만 사실 인간은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에 대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서 죽게 하여 죄의 대가를 전부 지불하고 나서 하늘 문을 열어 누구든지 들 어오라고 하시는데도 끝까지 거절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초 청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즉, 자기 인생 사는 동안에만 기회가 있는 것입니 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책임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특수한 소명 예수 믿는 사람은 특수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첫째로,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오도록 불러서 직접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30절을 보면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 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곧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며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 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단계를 밟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직접 이끌어 주시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부르신 것은 의롭게 하고 성화시키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27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부르십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24절).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하나님께서…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 사"(26, 27절).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했습니다. 이 택정의 교 리는 이미 믿는 사람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셋째로, 특수 소명의 예(例)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 니라"(요 6:44).

저도 전도할 때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 바쁜 사람 인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생님 집에 오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다 른 집에 갔으면 제가 말하는 것 못 들었을 것 아닙니까 제가 이 집에 온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별하게 이끌어 주시는 게 확실해요. 하나님 의 특별한 사랑이 이 집에 있고 오늘이 바로 당신의 집이 구원받는 날이군 요." 복음을 잘 아는 사람들이 와서 설명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며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빌립보라는 도시에 갔는데 강가에 루디 아라는 여자가 나와 있었습니다.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 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 16:14).

예수님에 대해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주께서는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면 들어오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문을 열었습 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사실은 주님께서 열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내 가 마음을 열면 그 시간에 성령이 역사해서 마음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요, 성령이 역사하면 내가 자원하여 마음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와 같이 역사해 주셔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넷째로, 특수 소명의 원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있 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은 오직 자기 뜻과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믿는 자를 조롱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감싸서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그런데 우 리의 무엇이 좋아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불러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 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다섯째로, 특수 소명에 대해 인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너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부르심과 선택하심은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고 택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나를 부르고 택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 떤 때는 내가 선택받은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택한 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 픈지, 왜 대학 입시에 떨어지는지 의심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신시키라는 것입니다. 확신하게 하는 그 자체는 주관적인 것입 니다. 나에게 달린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 구원과 택하심과 부르심에 자신이 없습니까 바로 가슴 속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속에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문제란 것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 것 아닌 것 갖고도 자신 없어 합니다.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담배 피우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가졌던 담배 피 우는 습관이 예수 믿게 된 후에도 안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만 봐도 눈치가 보이고 교회에서도 하나님 눈치가 보여서 늘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담배 피우는 것은 몸에 해로운 것과 상관이 있지, 구원과 상관 있 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 가 한 번 끊는다면 끊는다"는 식으로 자기 의지를 따라 해보려고 생각하니 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구하고 부탁하면 그분의 힘으로 되는데 인 간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자기가 택함 받고 부름받았다는 것을 의심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나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구원은 객관적으로 이미 결론이 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 이하에 열거된 것들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잘 계발하면 점점 더 구원의 확신이 커집니다. 즉, 영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 수록 확신은 더 강해집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 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 랑을 공급하라"(5-7절).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 랑 등을 잘 계발하면 마음이 든든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확신하게 됩니다. 신앙 안에서 점점 성장해 가면서 믿음이 커지고 덕 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절제, 인내, 경건 같은 것들이 축적되기 때문입니 다. 제가 쓴 책 가운데 "당신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습니까"(나침반 출판사 간행)가 있는데 이런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신앙적 덕이 점 점 쌓일수록 주관적으로 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반면 사랑하지 않고 형제 우애하지 않고 불친절하고 경건하지 않고 절제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 하고 덕도 없고 믿음도 흔들리면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해 자신이 없게 됩니 다. 그러므로 특수 소명에 대해 우리 인간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영생을 취하라…."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영생을 취해야 합 니다. 여기서 "취하라"는 말은 꼭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전혀 노력 없이 어 중간하게 있는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격려 할 필요도 있습니다. 다윗도 스스로 자신을 격려했다고 했습니다. 낙심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 "너 정신 차려, 너 왜 그렇게 하고 있어 하나님이 계신 데 웬 걱정이야 하나님이 돌봐 주시니까 괜찮아" 하며 한마디만 하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너 틀렸어. 너 왜 그 꼴이냐 너 같 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하냐"고 하면 낙심하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낙심 시킬 수도 있고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다 자기 책임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을 보십시오.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빼내서 선택한 자들은 진실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꾸 거짓되고 불성실하고 불충성하면, 부르심과 택하심은 확실하나 스스로 자신이 없으니 까 인생을 힘없이 살게 됩니다.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큰 개울의 통나무 다리를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고 노래 부르면서 신나게 건너가는데 어떤 사람은 떨어질까봐 불안해 하 면서 건너가듯이 예수 믿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신나고 자신감 있 게 천국까지 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가면서도 맨날 걱정입니 다.

 소명의 수단 소명의 수단은 복음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4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내 쪽에서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네 죄의 대가를 지불했다. 그래서 죄 문제는 이미 해결 되었으니 이제 너는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 죄사함을 받아들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나의 자녀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에 감격하여 감사함으로 주 앞에 나아오면 됩니다.

 전도할 때는 교회에 가자고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는 복음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전도해 보면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 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잘 안 믿어진다는 사람들도 있습니 다. 사람들은 평균 8번 정도 복음을 들어야 마음이 열린다고 합니다. 헨델 의 "메시아"와 같은 음악이든 "십계명"과 같은 영화든, 설교든 간증이든 평 균 8번쯤 들었을 때다 이해되고 마음에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당신이 전 했을 때 받아들이면 전에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복음을 7번쯤 들었을 것 입니다. 당신이 첫번째 사람일 수도 있고 다섯번째 사람일 수도 있고 일곱 번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치 말고 계속 전해야 합니다.

소명의 능력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셔서 믿게 하는 능력은 성령입니다. 데살로니가전 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복음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당신이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능력과 확신으로 나타나셔서 그 사람 마음에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전도했을 때 상대방이 복음 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실수해서 그런가 하고 낙심하기가 쉬운데, 결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복음과 함께 성령님이 역사할 때 마음 문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그 복음의 말씀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 의 마음을 감화하고 움직이셔서, 결국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 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십니다. "우리 목사님 좋은 분이에요. 우리 목사님 설교 한번만 들어 보세요" 하면서 목사님 자랑하는 것은 복음이 아 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돌아가시고 죄 사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 전부터 당신을 사랑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얘기할 때면 성령께서는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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