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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 명령에 순종한 빌라델비아 교회 (1) (계 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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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세에 교회가 어떤 상황 속에 처하게 될 것인가 혹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이 무엇 인가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말세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상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일곱 교회 가운데서 서머나 교회와 같이 전혀 책망을 받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왜 이 교회가 말세의 교회를 잘 대표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성경은 시험의 때라는 말을 통해서 이 교회에 닥칠 위험 뿐만 아니라 장차 이 땅에 임하게 될 소위 대환난에 대한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역사의 종말에 큰 환난의 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주께서 예언하신 것을 읽게 됩니다.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 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역사에는 언제나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비롯한 큰 사건들이 계속 있어 왔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환난은 그런 종 류와는 전적으로 다른 환난입니다. 그래서 대환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있어야 할 큰 환난의 때입니다. 그때가 다 가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 보면 내가 속히 임하리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종말론이 고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 것은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동 사태를 내다보면서 그것이 마지막 전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최후의 전쟁의 주된 싸움터는 걸프만 근처가 아니라 이스라 엘인데, 걸프전에서는 이스라엘이 초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 마겟돈 전쟁의 무대는 이스라엘의 므깃도 평야라는 것이 성경에 분 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러시아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 로 되어 있는데, 걸프전에서는 러시아의 역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걸프전이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역사 적인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소련의 역할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소련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세론을 공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언제냐?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 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는 것보다도 임박한 주님의 재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모본을 보여 준 교회입니다. 이 환난의 때에 그리고 역사의 이 어두운 시기에 성도들은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 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본받을 만한 교훈을 던져 준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40-4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 교회는 어떤 면에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모본이 되고 있습니까?

말씀에 순종했던 교회 8절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들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 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합 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와 교인들의 순종은 두 가지 면에서 두드러 집니다.

첫째로,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이 적은 능력이 교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인지 교인들의 재산의 정 도를 말하는 것인지 영향력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 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적었 음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 마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가를 물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던 교인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은 지식, 적은 재산, 적은 시간 때문에 열 등감에 빠지거나 아예 포기해 버리든가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 라델비아 교인들은 그 적은 것으로 주님을 위해 할 일을 물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고난 중에 순종했습니다. 본문은 이 교회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8절에 보면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는데, 이것 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할 수도 있는 역경에 직면하고 있었음을 시 사합니다. 또 9절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 교회의 대부 분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 핍박을 받 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도 이런 고난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고난 속에서의 순종이라는 면에서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어려 움에 처했다고 합니다.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게 되면, 동족인 유 대인들이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해서 그를 추방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의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배 장소였던 회당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도 박탈해 버리고, 심지어는 로마 황 제를 거역하는 자들이라는 이유로 로마의 관청에 고발하기까지 했습 니다. 당신이 만약 이런 입장에서 고난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 보 십시오. 다른 사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의 교 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 신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에 더 집중했습니다.

인간 관계가 어려워질 때 그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집중하면 집 중할수록 우리는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집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살피고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 다. 내 이웃 때문에 아픔과 상처와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내가 하 나님을 향해서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 는 사람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모본입니다.

선교의 기회를 포착했던 교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선교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선교와 전도가 강조되고 있음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 람이 선교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교회는 선교의 명령 앞에 순종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바로 그런 교 회였습니다. 선교의 기회를 포착한 교회, 선교의 명령 앞에 순종 했던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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