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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얼굴없는 교회 (눅 0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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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페놀 섞인 수도물 한잔에 유산,병원신세지는 주부.

둥둥 떠다니는 고기들과 "더이상 죽을 고기가 없다"란 신문 문구는 오늘 우리가 어떤 자연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깨끗한 물,깨끗한 공기 장사가 유망 업종이 된 시대.사우디 에서--얼마나 불편할까 했는데 우리가.이렇게 좋은 물과 공기를 잘 간수 못해서 이 모양 이 되었다니 부끄러운 노릇. 그런데 사실 자연 환경 타락은 그 보다 먼저 사회환경의 타락 때문. 사회환경이란 사회를 말한다. 사람은 사회와 자연이란 두 환경에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그 중에서 오늘은 더 중요하고 더 오래된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환경 문제와 교회의 역활에 그 초점을 맞춘다.

 교회는 이처럼 타락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 사회에 물들지 않고 ,어떻게 그 사회를 죽음의 깊은 병에서 구원해낼 수 있을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민이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내내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려웠는가수많은 젊은이들이 최류탄과 곤봉 앞에 피를 흘리고 있을 때,우리 한 교회에서 어마어마한 예배당을 짖고 있었다. 목회를 준비하고있던 내게도 그것은 미친짓이었다. 지금도 그 어마어마한 건물을 볼 때마다 감격대신 한국 교회 의 무덤을 보는 것 같아 그 안에는 한번도 들어가보질 안았다. 세계에서 제일 헤메이는 나라 속에 있는 교회가 어떻게 세계제일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하는 것이다.그 건물보다 더 커다란 우리의 약점은 타락한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무기력 입니다.

그 때에 젊은이들이 그 교회를 비롯 한국의 대교회 몇곳에 불지르겠다고 위협했다.괘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탄의 망발인가 아니오!!! 사회 어디에서도 소망의 그림자 조차 찾을 수 없던 우리 백성들이,교회 에서 조차 아무런 기대를 하게 되지 못한데서 좌절하여 외치는 절규요, 신음이었다. 너희들이 그렇게 부흥하고 성장하는데도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타락하고 고통스러워져가느냐는 피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지금 우리 사회의 질병과 고통에 대해 너희들 그렇게 할말이 없느냐는 항의!

왜 이타락한 사회가 자기들의 문제해결에 대해 교회에 아무런 소망을 두지 않는가 교회를 도대체 뭘로 보는가 다음 세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천국행 열차표 판매소:표를 구해 줍니다.얻은 사람은 그것을 잃지 않기위해 그것이 없는 사람과는 좀 조심스럽게 삽니다.그리고 외칩니다.

여러분,여러분도 이 표를 사십시요,사실 분은 교회로 나오십시요.무룝니 다. 믿기만 하면 줍니다. 늦기 전에 사십시요.사회 문제에 얽메여 어물거 리지 마십시요.

(2)도피소:세상에서 실패한 분,좌절한 분 이리와서 피하십시요.새 힘을 얻어 나가십시요.그러면 타락한 사회가 주는 어려움을 어느정도 더 잘 견딜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힘들면 다시 오십시요.

(3)아편:세상에서 겪는 쓰리고 아픈 일들을 모두 잊게 해줍니다.현세는 잠시입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우리에겐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눈 딱 감고 조금만 참으십시요. 행복한 내세가 기다립니다.

 아편을 맞은 사람처럼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새삼 감격하고,도피소에 서 이제 다시 새 힘을 얻은 교인은 한 손에 천국행 열차표를 들고 다시 타락한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용감하게 외칩니다.천국표를 사라! 그리고 천국행 표가 없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덜 타락한 삶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이상은 없습니다. 여기 그 이상은 없다는 데에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그 이상 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 제목 설명을 잠시 하겠다.

 얼굴이 없다는 말=(1)니이버의 책/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인 사회 나중에 고치고 싶다고=덜 타락한 개인과 아주 타락한 사회. 개인으로는 자기의 이기심을 절제도 할 줄 안다.어떨 땐 양보,희생도 한다.자기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이 일단 단체로 모이면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린다/집단 이기주의와 무책임성 폐놀방류사건/한 가장 아무개로서는 그런 일 못한다.그러나 거대한 이기 주의 집단인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는 무책임하게 그런 짓을 저질를 수 있 는것이다.--이것을 얼굴이 없다는 것이다.

 (2)하비 콕스의 책/세속 도시에서무명성을 한 특징으로."인간은 이름 없는 한 부호에 불과" 이름이나 얼굴로 관계를 맺지 않는다."배달부,관리 인,509호 사람" 자기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책임 있는 인간관계를 피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

 종합하면 교회가 얼굴이 없다는 것은 (1)자기의 편안한 삶을 위해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것.(2)교인 개개인의 이기주의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해 있다는 것.

그러니,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본 것입니다만 ,사회의 타락에도 불구 교회가 부흥할 수있고,교회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타락해 갈 수있다.

 그러나 아뭏튼 교회가 이처럼 얼굴이 없다는 것은 교회 자체가 이미 참교회의 생명력을 잃고 있다는 것.

 그러면 교회의 얼굴을 뺏어간 원수들이 과연 무엇인가 원인이 있다. 분명한 원수가 있다.

1).이원론:플라톤의 영-육 분리,거룩한 것과-속된 것의 분리,교회와 세상 의 분리/두방 살림을 차린 것,한방은 거룩한 방,다른 방은 속된 방/거룩한 방에는 하나님이 통치,속된 방에는 사탄이 통치/그 두 방 사이에는 튼튼한 벽이 세워졌다.교인들은 이 두방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야 한다.이 방에선 하나님을 섬기고 저방에선 세상의 주인을 섬긴다.교회 오면 자기가 죄인 같고 세상에 나가면 실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지 막연하고.

 골치 아픈 이원론! 왜 장사하는가-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 전하지 않는 장사는 속된 것인가 왜 학교에 가는가-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아니면 죄짖고 있나 주부들-오늘 하나님과의 시간은 가졌는가 /경건의 시간 뺀 나머지 시간 은 자기 혼자 살았나 아니 세상의 주를 섬기며 살았나

목사는 안수해서 세웠느니 성직이고 교사는 속된 직인가 예배는 거룩한 것이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은 속된 것인가

이원론은 교묘하게 우리 속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교회 주위에 높은 울타리를 치고 하나님도 교인도 다 그 속에 있으라고 한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 할 일이란 별로 없는 것이다.

 2)세속주의/한방으로 합방하는데 거룩한 방이 사라진다.

여기서 이제 종교는 악세사리에 불과 인간이 곧 주인 노릇.하나님은 인간 의 삶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못하게 된다. 다만 인간이 필요할 때 등장할 수 있는 종교로 전락한다.

 대통령 조찬기도회대통령의 훈시 불교,천주교,사적 종교의 조찬기도 회를 돌아가며 갖는다. 세속주의에서 등장시키는 종교로 전락한 모습.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가 문제되지 않는다. 종교란 이름만 가졌 을뿐 수평관계만 고려된다.

 3)바알종교

이번 설교를 준비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교회가 하나님의 종교가 타락하고 무기력해지는 데에는 옛날부터 이 바알종교의 침투 때문이라는 것 이다.

 바알은 가나안의 신이다.이 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구약을 대강만 흘ㅌ허봐도 금방 알 수있다.

우선 바알이란 단어가 수백번 나온다. "바알"이 120여회,결혼한다,주인,거 주민,남편 등의 뜻으로 수없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야훼) 종교와 바알 종교와의 싸움이 끊임 없이 나타난다.

그 극적인 장면이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바알의 종 이세벨의 싸움이다.

갈멜산에서 이세벨이 먹이는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가 극적 인 싸움을 벌린다. 엘리야의 대승이었다. 모두 죽였다.

이 싸움에서 하나님은 적어도 두가지로 자신이 참신이고 자신은 바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는,3년 반동안 비를 막아,바알이 비를 내리는 신이 아님을 선언한다.

그리고 다시 불을 내리고 비를 내림으로써 바알이 비와 불과 바람을 주관한다는 신화가 거짓임을 증거한다.

둘째로,엘리야가 산속 동굴로 도망 갔을 때--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난다.

급한 바람-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더라,지진-,불-/왕상19 바알이 인간에게 나타날 때의 모습/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이 아니라는 선포 하나님의 고민 /신화를 통해 자신을 계시--이스라엘의 오해다르다는 점을 가르쳐야 했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적은 없다. 다만 바알과 혼합했을 뿐이다.

바알 종교의 특징:(1)현세 에서의 복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의미.

한국교회에 이런 경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안다.하나님을 아주 버리 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타락이다.

 그래서 이 종교는 철저히 개인주의 적이다.

무엇이든지 복과 연결하고,무엇이든지 개인주위로 전락시킨다.

다윗왕의 범죄와 회개-개인에서 그ㅌ나면 안된다. 그의 한 행동이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하려는 것이다.

 (2)산당의 종교,의식의 종교. 산당의 수가 유다 거민의수보다도 많구나 자식을 불에 넣기 까지 하며 거창한 의식을 통해 신을 즐겁게 하려 했다.

천주교가 예배당을 거룩하게 만들고 예식을 통한 구원을 외친 것은 갑자기 처음 생긴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개혁교회 안에서도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 볼 수있다.

 예배를 잘 드려야 하지만 이 의식을 통해 ,이 장소에 왔기 때문에 하나님 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3장,여기서도 저기서도 말고 오직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성가대 좀 틀려도 속상하긴 하지만,애들 좀 떠들어도, 좀 졸아도 "부동자세"-서양정신,일본 사무라이 정신이 충만한 분 한국인의 준비자세는 언제나 흔들거리는 것/어전에서 죽여주십시요--선비들 ,포졸들--.강기원 목사님의 우아한 자세 완전 한국적.

 (3)가진자 편의 종교이다.

이세벨/아합/나봇의 포도원.

이세벨의 종교로서는 힘이 정의 ,신은 가진자의 편--당연한 행동.

아합의 고민은 그에게 하나님 종교의 전총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

그러나 하나님 종교는 탈취 당하는 자의 편에 섰다.

 과부의 헌금/이것이 정성어린 헌금을 격려하는 것인가 부자들의 도적질을 지적. 과부의 엽전 두닢이 생활비 전부였다니!

바알종교는 부자의 편에 선다--하나님의 축복,많은 헌금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한 과부를 돌보지 않은 저들의 재물은 과부의 마땅한 몫을 도적질한 불의한 재물이라 지적한다.

 교회가 불의한 재물에 대해 침묵하고,가나이 죄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느느 것은 바알종교화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의 얼굴을 회복하는가

본문은 이사야서61,42,49장등에서 인용한 글이다.

 성령을 받은자=기름 부음 받은자=보냄 받은자=메시야=그리스도.

 한마디로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자기들을 구출할 왕이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분이 나가지고 예수님을 변덕스럽게 십자가에 못박은데 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들의 예에 다르면 왕이 즉위하는데에는 절차가 있다.

환영이 있은후 기름을 붓고 정식으로 왕좌에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일요일 나귀타고 오는 예수님을 환영한다.

호산나,다윗의 이름으로외슨 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런데 그 후 에수님이 도망가버린다. 유대인들이 속은 것.

며칠을 찾아내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다.괘심죄에 해당한 것.

 그러나 그리스도가 저들의 죄와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법은 십자가 를 지는 일이 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 이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는 지혜 능력이다.

 교회에 왜 나오는 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다. 개인의 이기심을 희생하고,편안함을 희생하고 이 사회가 저지른 죄악의 결과들을 묵묵히 지기 위해서다.

 사회에서 억눌리고 빼앗기는자들의 아픔을 큰소리로 대변하는 것 가정에서 시어머니가 잘못한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 이 사회가 낳은 죄의 열매들을 내가 품에 안고 책임지는 것.

 십자가가 교회의 얼굴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얼굴.

 교인들이 교회로 모여 개인주의 이기주의 내버리고 기꺼이 사회에 대하여 십자가를 지기로 헌신할 때 비로소 이 사회의 악의 행진은 제동이 걸리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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