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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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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온유

온유 라는 말은 온유(溫柔)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온유라는 말을 부드러움 자상함 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그 동안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온유(溫柔)가 본문에서 말하는 온유의 본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원어적으로도 우리의 해석이 잘못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온유라고 해석한 이 말은 안와(히) , 프라오테스(헬) 프라우데스(헬) 라는 말인데 본문은 호프 프라에이스(헬)라는 말로서 이를 우리 개역성경은 온유라고 표현했습니다. 내세 주의(천국 복음주의) 사상에서 상당한 계시 신앙을 가지고 보아야 프라우데스 라고 하는 말을 온유라고 표현한 번역가의 신앙을 엿볼 수 있지만 그저 문자 적으로 보면 번역의 오류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이를 우유부단함 혹은 강함이라는 뜻으로 온유라는 말 을해석해 왔고 현재는 그 이해의 오류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안와(히)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는 절하다-to bend over-, 굴복하다-to bowdown-, 노동하다-to labor; to toil-, 겸손해지다 또는 낮아지다-to below , depressed or humble-라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은 헬라어 호프 프라에이스 라는 단어로서 프로오데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제가 헬라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 이해 하에서 나온 해석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본문을 이해 한 것을 쓴다면 본문은 [[호프 프라에이스]] 라는 헬라어로 기록된 말씀인데 이제 문제는 온유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굴복하고 노동하고 겸손해 지며 낮아지면 그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가 직역법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뭔가가 부족합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을 하면! 천국의 위로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제 하나님께 절하고 굴복하고 노동하며 겸손하며 낮아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뭔가 아이러니 함을 줍니다.

A. 온유와 비굴
여러분은 온유한 것과 비굴한 것을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저는 온유와 비굴함이라는 정의를 이렇게 합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용서하면 온유한 것이 되지만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를 용서하면 비굴한 것이 된다. ]]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힘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무릎을 꿇을 때 온유한 것이고
힘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절할(복종의 의미)수 있습니다.
힘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겸손함으로 낮아 질 수 있습니다.

힘이 없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껍대기는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온유가 아니라 비굴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래의 말씀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의 온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까
단순히 하늘 영광 버리고 성육신 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단순히 이새의 아들 다윗의 혈통에서 난 메시야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온유는 성부 아버지 하나님과 한 점의 오차나 오류가 없이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 권능으로 온유하신 것입니다. 나를 보았으므로 아버지를 보았다고 선포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권능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온유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분, 그래서 온유함으로 정복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실력자 힘이 있는 분이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온유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온유함을 갖는 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예수처럼 되어야 진정한 온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 나는 지금 온유한 사람이다 라고 백번, 천번, 만번 기도를 해서 자기 체면에 빠진다고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한 몸 한뜻이 될 수는 없을까

.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온유함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담(인간)을 창조 하실 때는 분명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습니다. 무한한 천국이 있고 그 즐거움이 있는 원인이 첫째요 극치적 천국의 즐거움을 인격적으로 나누어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동기가 둘째요 그 천국을 주시데 한없이 끝까지 완전하게 주시고자 하는 목적이 셋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어 패역을 하였기에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N극인데 인간인 나는 S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꺼꾸로요 반대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본질(本質) 본성(本性)적으로 달라져 버린 나 자신의 타락한 기존 성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를 닮데 껍데기만 닮고 예수를 소유하데 껍데기만 소유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하류층의 때를 벗고 상류층 문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 하에 창조된 인간 본성을 소유하는 그 구체적 수단이 뭔가 하면 심령(心靈)이 가난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가난하여 지기 위해 우리는 애통을 해야 합니다. 애통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를 해서 바른 것 옳은 것 영원한 것을 갖도록 하자는 적극적 신앙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신앙 자세가 없으면 심령이 가난하여 질수가 없습니다. 이 애통이라는 말은 회개라는 말과도 일맥이 상통하다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1-3]] 예수님이 우리를 불렀다고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불렀느냐 하면 죄악으로 죽은 상태에서 이질적 성분에서 불러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냈다는 뜻입니다. 불러낸 자의 본분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천국을 온전히 완전하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 주기를 원하시고 교회인 우리는 이것 받기를 갈망 해야 합니다.
내 심령 안에 천국이 있는데 내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임시것 세상의 것을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웁겠습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되어 버렸는데 그들을 사랑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 힘 그 실력이 나를 감동하고 감화해서 내가 상대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풉니다. 그러면 그것이 상대의 입장에서 아! 저 사람 참 온유한 사람이구나 하는 말이 나오고 스스로도 하나님의 온유한 성품을 소유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땅과기업
신의 성품을 덧입으면 하나님이 땅을 준답니다.
요즘같이 땅이 금값인 세상에 얼마나 반가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암만 생각을 해도 이 땅이 토지(土地)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저는 이 땅을 세상으로 봅니다.

A. 땅

땅은 문자 적으로는 토지를 뜻합니다. 더 나가 지구를 뜻하기도 하고 한 지경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땅은 지역이나 지경을 뜻 한 다기보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땅을 세상이라는 뜻으로 은유해 쓰여진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본문도 그런 맥락에서 땅이라는 말을 세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땅은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죄악된 세상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세상이라는 말은 천상과 구별해서 쓰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세계가 아닌 인간이 사는 세계를 일컬어 세상이라고 합니다.

천국 선(하나님의 본질,본성,본능 적인 것)만이 존재 하고
지옥 악(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만이 존재하고
세상 선과악(하나님의 것고 하나님의 것이 아닌것)이 공존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낙원이라 여기는 에덴 동산도 세상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여기는 성도 자신도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어 천국이 저희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받은 영(중생된 영)이 재세(在世-성도가 구원받아 사는 세월)동안 활동하는 공간을 땅 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중생된 영이 활동하는 공간 그것은 육신과 마음과 이성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일류 일수 있으며 더 나가 지구촌 일수도 있으며 어쩌면 우주밖일 수도 있습니다.

B. 기 업(크레노미아)

성경에서 기업이라고 하면 상속 후사 장자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렇게 쓰인 히브리 어는 나할라, 모라쏴 등인데 역사적으로는 생명의 가계(家系), 부족의 가계(家系), 민족의 가계(家系) 국가의 가계(家系) 등으로 쓰였고 그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는 신앙 사상을 이어 받은 신앙의 상속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여호와 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아담의 생명을 이어 받은 아들은 카인이 아닌 샘이었습니다. 아담을 닮은 아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후대는 압살롬이 아닌 솔로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계보를 이어 받은 사람은 유대인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었습니다. 에서의 사상을 가지고 압살롬의 욕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게 되면 기업을 물려받은 자는 어느 면으로 보나 아버지의 여호와 신앙을 이어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볼 수 있습니다.

3.땅을기업으로받은자

땅이라는 말은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상속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온유함과 무슨 연 관이 있습니까 온유함의 복이 세상 상속이라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세상에 살고 있으니 세상은 이해가 갑니다. 세밀하게 심령적세상 육적 세상 종교적 세상을 구분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세상이 뭔가 한것은 이해를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상속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상속을받았습니까 누구에게 장자의 권리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입니다.

A. 하나님의 상속

하나님은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신앙 계보를 이은 샘의 인생이었고 아브라함의 신앙 계보를 이은 이삭의 인생이었고 형의 생명 계보를 욕심낸 야곱의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라는 구원의 생명 계보를 타고 내려오십니다. 그 자신이 구원의 본질이면서도 다윗의 뿌리라는 신앙 계보를 인용하신 것은 우리에게 그 구원 계보 속으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암시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세레의 본질이면서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듭남의 계보 속으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업이라고 지목하여 주신 것은 천국입니다. 천국을 주셨으면 주셨지 왜 땅과 연 관을 지으셨을까요 땅이란 인간이 살아 있을 때 가치가 있지 죽으면 그 가치가 없습니다. 활용 성이 없고 존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살아 있을 때 땅이 왜 필요합니까 우선은 발을 딛고 서야겠지요. 인간이 피조물인데 공중에 붕 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활동을 해야 합니다. 번식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땅이 가치가 있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이 모든 것이 땡입니다 , 끝입니다. 예수 믿으며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진리 법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를 확장하라는 말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았다는 말씀은 활용 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계보 자들, 구원 생명을 이어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 구원 생명을 확장한 사람도 있고 축소한 사람도 있고 그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어 진정으로 온유할 진데 사는 동안(땅이라는 말뜻)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은 성품을 성장시켜 보아라 ]]입니다.
[[ 왕 ]] 이라는 구원 계보 최고봉에서(신앙적 종교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나 라는 내가 나를 다스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하는데도 바알과 아세라와 밀곰을 모셔다 놓고 그 우상에게 절을하며 여호와 하나님에게도 절을 하는 이 패 역함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복종하며 무릅꿇어 절하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진리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나라로 가꾸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일차적으로 내가 내 심령을 진리로 다스려야 하고
이차적으로 내가 내 가족을 진리로 다스려야 하고
삼차적으로 내가 내 이웃을 진리로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진리로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서 남을 다스리겠다고 하는 자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가시를 뽑겠다고 설치는 돌 파리 의사 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C. 기업의 목적은 생산에 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기업은 하나님의 것을 생산해야 합니다.
온유함(호프 프라에이스)에서 얻은 기업이니 온유함을 생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끔가다 엉뚱한 것을 생산하는 기업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를 호세아의 아내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받은 기업을 하기고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 정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 입으로 뱉어 지는 수많은 말들 , 손으로 이루어지는 사건들 , 가는 곳마다 남겨 지는 발자국 진정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생산하였느냐 하는 점에 정검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4 . 결 론
호프 프라에이스 라는 말로 시작되는 온유라는 말씀이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단순히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 온유 속에 그렇듯 큰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깨달아 알면서 새삼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짐으로서 바른 것을 붙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심히 애통하게 됩니다. 이 애통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머리에 재를 뿌리는 철저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이 애통의 울음을 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인 온유함을 갖게 되고 그 온유함은 세상(땅)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보의 기업을 상속받아 하늘 나라를 확장하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내 안에서 내 심령이 하나님의 법이 다스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이 구분이 되어 지고 가치의 환산이 정확하여 지니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고 따라서 하늘에 것 영원한 것만을 생산하는 아름다운 기업이 되는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구원 계보가 더욱더 아름다운 번영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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