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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휼히 여기는 심령 (마 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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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복음은 우리들의 행위나 우리들이 무엇을 하느냐 보다도,우리들이 어 떤 품성을 가졌느냐에 더 강조를 둡니다. 우리들은 기독교인으로 행동하기 이전 에 기독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행위는 우리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예 ) 나무와 열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겉으로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인격 전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된 다는 것은,헌집에 페인트칠만 하는것이 아니고, 환전히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그의 사상,전망,행동이 달라지고,세계관,인생 관,사회관,결혼관이 달라집니다. 바울사도는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팔복의 말씀은 우리에게 도 전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팔복의 말씀처럼 되어야 하고,행동해야 하 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팔복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심령이 가난한지","애통하는지","온유한지","의 에 주리고 목마른지","긍휼한지",를 팔복에 비추어 저울질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팔복을 읽을 때,별로 관심이 없고, 그 내용이 싫어진다면,우리들은 신 약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팔복을 읽을 때, 죄 때문에 마음이 아파지며 고통을 느끼고, 그럼에도 그것이 좋은 것으로 여 겨진다면 우리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의인의 반열에 선 사람으로 계속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팔복의 성품과의 연관성

앞의 네가지 성품이 개인적이며 수동적인 내적성품 이라면 긍휼히 여기는 심령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애통하는 심령,온유한 심령,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이 이루어진 사람은 자연히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을수 밖에 없는 죄 인이였다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임을 알때,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긍휼이란 무엇입니까 1) 말뜻--라틴어에서는 misericordia 라고 하는데 이 말은 miseria(misery) + cor(heart) 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은 남의 불행에 대해서 마음이 움직이고 고통을 느끼는 온정적인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2) 무조건 적당히 덮어주는 안일한 적당주의는 아닙니다.

긍휼이란, 어떤일의 시종을 살펴 옳고 그름의 분별없이 무조건 덮어주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3) 느낌뿐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동정적느낌 (측은감) + 어떤행동 = 참된 긍훌입니다. 한 예로 선한 사마리아인 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만이 동정 + 행동으로 나타냈습니다.

구체적으로 내게 해를 끼친 자도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예,예수님,스데반 ) 애매한 행동은 선의로 해석합니다.

실패한 자 용납하고 격려합니다.

죄인에 대해서:죄는 미워하나 죄인은 용납하고 불쌍히 여겨줍니다. 죄의 희생물,마귀의 희생물로 봅니다.

 3.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이 무엇입니까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1)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행20:25). 주는 기쁨을 모르는 자는 참 신앙생활의 기쁨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2)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긍휼을 얻었다는 표가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 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면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면 다른 성경 구절과 상치가 됩니다. 한 저자이신 성령이 서로 상반되는 진리를 주실 리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우리를 하나님께 화목시키셨다." 는 등의 말씀은 우리들의 공로 를 근거로 은혜를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의 뜻은 우리들이 긍휼을 베풀 었기 때문에 긍휼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요,오히려 우리들이 긍휼을 받았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긍휼을 베풀면 우리도 계속 긍휼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속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없는가는 내가 주님께 긍휼하심을 얻었는 가에 대한 시금석입니다. 내가 진정 일만 달란트의 빛을 탕감받은 자입니까 그렇다면 내게 백 데나리온 빛진자를 탕감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한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서로 긍휼히 여겨야 하지 않 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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