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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원의 인간과 돕는자 여자 (창 0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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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있다. 둘 다 처음 하나님께서 세 상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창 1:1-2:4a의 이야기는 웅장 하고 거대한 전우주적인 창조의 서사시를 모사하는 반면 창 2:4b-3:24 은 아기자기하고도 아름다운, 그러나 끝내 인간의 타락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단절로 끝나는 작은 범주에 속하는 창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먼저 등장하는 창조 이야기는 P문서 기자의 작품이며 창 2:4b에 등장하는 것은 J 문서기자의 이야기인데 이 두 이야기의 묘사와 주된 관심사가 다른 이유 는 이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제사문서기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 로서 가질 수 있는 범우주적인 하나님의 주권이 녹아져 있고 야웨문서기자 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수 초기에 기록된 양식이면서도 성숙하고 세련된 신학적 양식을 갇추고 기원전 10 C의 솔로몬으로 야기된 신앙과 문화의 위 기에 직면하여 야웨 신앙의 정신으로 대항했던 그 정신을 가지고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되 하나님과의 단절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살았던 참 인간과 그 의 동산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기의 지혜문학적 영향은 이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에 녹아진 상태로 드러나 있다.

야웨문서 기자가 전하는 창조의 이야기는 에덴 동산에서 벌어지는 하 나님과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간과 신이 함께 거하는 낙원의 표상은 이집 트나 바벧로니아의 신화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창세기에 등장 하는 낙원은 다른 신화들과는 달리 신은 그 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거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낙원으로서의 에덴이 묘사되어 있다. 이 동산 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과 친교를 나눈다.

 본문의 구조 본문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사람 아담과 여자의 등장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먼저 전체 이야기의 구조를 살펴보자.

 낙원의 인간도 돕는 자를 필요로 한다

I. 하나님의 결심 v. 18 A. 동기 v. 18a B. 결과 v. 18b II. 하나님과 아담이 일하다 (I) vv. 19-20 A. 하나님이 일하시다 v. 19

1. 짐승을 만드시다 v. 19a

2. 아담에게 데려오시다 v. 19b B. 아담이 일하다 v. 20

1.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다 v. 20a

2. 돕는 자가 없었다 v. 20b III. 하나님과 아담이 일하다 (II) vv. 21-23 A. 하나님이 일하시다 vv. 21-22

1. 아담에게서 취하다 v. 21  a.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다 v. 21a  b. 여자를 만들다 vv. 21b-22a  1) 아담의 갈비뼈를 취한다 v. 21b  2) 살로 채우다 v. 21b  3)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다 v. 22a

2. 아담에게 데려오시다 v. 22b

B. 아담이 말하다 v. 23

1. 고백 v. 23a

2.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다 v. 23b IV. 결과 vv. 24-25 A. 아담과 여자의 연합 v. 24

1. 남자가 부모를 떠나다 v. 24a

2. 아내와 연합하다 v. 24a

3. 둘이 한 몸을 이루다 v. 24b B. 연합의 결과 v. 25

이 이야기는 인간을 자세히 살피고 그를 돕는 자를 지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인 간과 함께 일을 한다. 모든 동물들(들짐승과 날짐승)을 흙으로 지으신 하 나님은 그들을 아담에게 이끄시고 아담은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 나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그를 도울 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결과 하나님은 다시 일하신다. 이번에는 아담을 취하여 생명을 만드시는 것이다.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몸에서 갈비뼈를 취하신 하나님 은 그것으로 또 하나의 인간, 여자를 만드셨다. 그녀를 아담에게 데려 왔 을 때 아담은 탄성을 지르는 것으로 그녀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고백 하고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여자는 아담에게서 이름을 받고 이 둘은 한 몸이 된다. 이제까지 보호해주고 인도하고 훈계하고 함께 일하시던 하나 님을 떠나 남자는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주석 결과의 해설

전통적으로 이 이야기는 여자를 만드신, 그래서 아담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이해되어 왔다. 돕는 자로서 창조된 여자 는 다른 창조물들과는 다르게 남자의 몸의 뼈를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다. 그래서 둘은 동등한 존재이며 다른 부분의 성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 성의 비하적인 표현은 인간성의 왜곡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창세기를 제외 한 성서에서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사회적 배경 내에서 아버지와 남편에 종속되어 있는 여성을 묘사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 여성에 대한 "소유 권"은 결혼과 함께 남성에게 양도되고 여자는 한 가족 내에서 가족들이 요 구하는 일들을 행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여성의 활동은 모두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행하여지는데 분명 창 2:18-25에서의 이야기는 이런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본문이 남녀 사이의 partnership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당시의 문화에 반대되는 입 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 모든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 다. 그러면 본문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겠 다.

첫째, 여자의 등장은 아담의 일 중의 한 부분에 속해있다. 하나님의 선언이 있었지만 여자는 남자와는 다르게 독립적인 등장을 하지 못한다.

아담의 뼈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녀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손에 이끌리어 아담에게로 나온다. RSV에서는 같은 동사(brought) 로 이끄심을 표현하고 있다. 여자를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본 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다르다는 것이겠지만 2차적으로는 아담이 이름을 짓기 전에 그에게 감탄을 털어놓았다는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스라엘 인에게는 이름과 소유권은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 자의 존재는 하나님과 아담의 행위와 고백에 종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 다.

 둘째,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 었다. 아담은 이름을 말함으로 일을 했는데 그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여자 는 (본문상에서는) 한 마디 말도 없다. 그리고 돕는 자로서 여자에게 주어

진 일은 아담과 같은 일 , 즉 이름을 짓는 일이 아니다. 이미 아담에 의해 "모든" 짐승들은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서는 여자 가 어떤 일을 통해 그를 도울지는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세째, 이야기의 두 주인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별자로 구분할 수 있 는 이름은 가지지 않았다. 단순히 사람(man)라 표현되고 여기서 파생된 여 자(waman)라는 말이 이름으로 등장한다. 특별한 이름이 없다는 의미에서 둘은 동등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네째, 이야기를 마감하는 24, 25절은 예수께서 결혼을 규정하는데 사 용하신 이래 결혼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문 의 맥락에서 이 결론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돕는 배필을 지으시리라는 하나님의 결심 또는 선언은 분명 이 결론과 연관이 있다. 이것이 단순한 결혼과 연합의 문제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로서의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이야기를 마감하는 벌거벗었으되 부끄러워하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다섯째, 이 이야기는 여자의 창조를 말하고 있으나 무대 정면에 등장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남자의 이야기이다. 즉 여자 자체에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여자를 배필로 맞은 남자의 이야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결론 부분에는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 하지만 그 속에서는 남자와 함께 복수형으로 등장한다. 즉 여자 존재 자체 로서 이야기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상을 고려해 볼때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본문의 창조이야 기에 대한 이해는 다분히 재평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 세기 2장 18절로 25절에 묘사되어 있는 이야기는 가부장적 사회의 틀에 다 분히 대항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만으로는 일을 완전히 이루어 나갈 수 없다는 사상이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 에도 여자와 남자 사이의 구분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남자를 돕는 자로서 창조된 여자의 존재는 남자에게 속한 것으로 지어지지 못했다 면, 또한 아담에게서 자신의 일부라는 고백을 듣지 못했다면 다른 피조물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여자는 아담이 하는 일을 돕지도 않 았을 뿐 아니라 아담과 같이 하나님과의 교제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일 하지도 않았다. 다만 돕는 자로서 지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과 그녀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아담이 드러날 뿐이다. 결국 현재 우리 현대인의 사고 에서 상상이 가능한 독립적인 모습으로서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Man)을 돕는 자로서 여자에 대한 평가는 새로워 져야 한다.

 그러나 본문이 의도한 여자를 지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본 문의 결론부분(창 2:24-25)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사에 여자의 존재 의미와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돕는 배필의 의미 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담과 여자의 연합을 기술하고 있는 24절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남자는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고 둘은 한 몸을 이룬다. 즉 남자는 그가 이전까지 의존하였던 존재를 떠나 자신의 아내와 연합한다. 이때 쓰이는 연합(CLEAVE)은 아교로 굳게 붙이는 행위를 뜻하며 바울은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 의 굳은 결속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합함으로 여자와 남자는 한 몸을 이룬다. 한 육체(one flesh)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묘사는 바 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신비이다. 그리고 돕는 자로서 여자를 지으셨던 하나님의 의도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몸으로서 가지는 질서와 책 임감, 그래서 여자는, 아니 아내는 남편과의 연관 속에서 묘사되는 것이며 이 관계 안에서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연합은 남편으로 하여금 책임감을 나눌 사람 함께 질서를 이루 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인식하고 그가 해야할 일 ( 모든 생물 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다스리는 일 )에 정성을 다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실제적인 남녀간의 종속관계, 또는 우열관계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며 또한 여성의 절대적인 독립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료원:한국컴퓨터선교회모음 발행일:940315 분 류:조직신학

제 목:오경에 나타난 가나안 땅의 성서적 의미 ( 3 에덴 동산과 땅 / 2 인간에 게 주어진 축복의 땅, 에덴동산 )

B.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의 땅, 에덴 동산

하나님은 인간을 다른 어느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교제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교제를 통해 하나 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며 피조물들의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 동산을 허락하시고 땅과 땅위에 있 는 다른 동 식물들을 지키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명령을 내리신다 ( 창 1:28). 인간에게 허락하신 에덴 동산은 인간의 영 육간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곳이였다. "에덴" ( )은 '기쁨','즐 거움','희락'이라는 뜻을 갖는다. 즉 이 동산은 기쁨의 동산이며, 양식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동산(창2:9) 이였다.

 그 동산에는 특별한 두 종류의 나무가 있었다. 그것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생명 나무는 아담이 무죄한 가운데 계속 순종만 하 면 장수와 행복,더 나가서는 불멸과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는 징표와 확증 이었다. 또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받음으로 서 인간은 자연을 하나님 께로 부터 받았듯이 율법을 받게 된다.이것은 아담에게 주신 현재의 축복 을 확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이 축복은 유지되나 불순종 할 때는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실상 인간은 낙원 밖에서 지음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낙원밖에서 지 으신 다음에 동산 안에 두셨다( 창 2:8). 그는 낙원의 흙이 아니라 보통 흙으로 지음받았다. 그는 낙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왜냐하 면 모두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동산에서 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다.

인간 존재의 조물주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 또한 그 축복의 장본인이신 것이 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은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평화가 공존하는, 인 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완벽한 조화를 이룬 곳이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은 하나 님이 인간에게 단순히 거주지로서만 창조하신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자 신의 거주지로서, 하나님과의 교제에로 인간이 특별히 받아 들여진 곳이며 후세에 이르러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제시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상태를 나타내며 역사의 마지막에 다가 올 종말적 형태의 재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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