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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시야의 정신혁명 (왕하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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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새 대통령께서 신한국 건설을 재창하고, 그 신한국 건설을 위해서 놀라운 개혁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서는 단 순한 개혁운동이 아니라 `무혈혁명'에 가까운 엄청난 개혁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상고하여 보면, 3대 개혁운동이 일어났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 북왕국에서 에후가 일으켰던 개혁운동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남 왕국 유다에서 제사장 여호야다가 일으켰던 개혁운동입니다. 세번째로, 오늘 본문 에 기록되어 있는 요시야왕이 일으켰던 개혁운동이 바로 그것 입니다. 그런데 에 후가 일으켰던 운동은 군사 쿠데타였습니다. 군사력으로써 아합과 이세벧을 살해 하고, 그 추종자들을 제거한 다음에 에후가 왕위를 찬탈하는 그런 군사혁명이었습 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일으킨 개혁운동도 군사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 력을 이용해서 악한 왕 아달랴를 몰아내고, 왕자인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는 그런 군사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기록된 요시야가 일으킨 개혁운동은 정치혁명도 아니었고 군 사혁명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민들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내적 개혁운동'이었 고, `정신 혁명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군사혁명을 체험했습니다. 군사혁명이 일어나서 많은 부정과 부조 리를 척결했습니다. 무력으로써 암자나 우상의 전당을 파괴하는 모습도 보았습니 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군사혁명을 일으켰던 분들이 더 무서운 독재자로 변 해버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파괴된 암자나 우상의 전당도 더 화려하고 아름다 운 우상의 전당으로 재건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것을 부수고 제도를 바꾸는 그러한 외형적인 혁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 키는 내적인 변화,"정신혁명"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 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요시야왕이 어떻게 정신혁명을 일으켰으며, 내적 심령 의 변화를 일으켰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요시야왕은 백성들을 성전으로 모으게하는 일 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왕이 모든 장로들과 또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다 성전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모이느냐'하 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왕궁에 모이게 한 것도, 국회의사당에 모이게 한 것도, 종합청사에 모이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을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모이게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 습니다. 초대교회도 사도행전 2장 46절에 보면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에 힘썼다 '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안수집 사님들이나 서리집사님들이나, 모든 성도들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낮 예배도, 밤예배도, 새벽예배도 열심히 모여서 기도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날마다 성전에 모여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 고 부르짖으면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만을 받고, 재 충만 받아서 우리의 심령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와 집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내적 변화가 오는 겁니다. 정신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와 지는 겁니다.

그런데 성전에 모였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에 모였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 살 수 있게 했다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가 우리 곁에 있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겁니다. 순경 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만 해도 죄 지을 수 없는 겁니다. 하물며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보시며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고







고 우리가 행하는 행동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고넬료가 베드로 사도를 초청하여 고백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예배를 드릴적에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모 인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시여 말씀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나이 다."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아무도 없고 우리 단 둘이 있으니 죄를 짓자고 꾀였습니다. 그때 요셉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 를 굽어 보고, 내려다 보고 계시는데 감히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그런 말입니다.

사울왕이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깊은 굴 속 에 숨어있는데, 사울왕이 피곤하여 굴 안에 들어와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 윗이 가까이 가서 사울왕의 옷자락만을 베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말합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요, 단칼에 사울의 목을 베어서 복수를 하겠나이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사울의 옷자락만 베었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 찔림을 받고 떨리는데, 감히 기름부은 하나님의 종을 어떻게 손댈 수 있느냐"고 만류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신앙을 가졌습니까 '하나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시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시다.' 이런 신앙을 갖고 살 았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4천 3백만이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살아간다고 하면 어 찌 죄를 범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될때 정말 하나님이 바라시는 아름다운 나라가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웃에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사 랑입니다. 이웃에게 정직한 것이 용기입니다. 사명에 정직한 것이 충성입니다. 바 라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시야왕의 정신혁명은 두번째로 언약책을 백성들에게 들려주는데서 일어났습니 다. 2절 하반절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시야왕 이전의 므낫세,암몬과 같은 왕 들은 성전 문을 닫아버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예배를 폐지시킨 악한 임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왕위에 오른 다음에 이 사실이 가슴에 아파서 성전을 수리하게 했습니다. 제사장 힐기야가 앞장서서 성전 문을 열고 성전을 수리할때에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언약의 말씀, 성경말씀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언약의 말씀을 왕에게 들고와서 읽어드렸습니다. 왕이 그 말씀을 들을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 국민을 성전에 모이게 한 다음에 그 언약의 말씀-성경말씀-곧,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 씀을 듣는 백성들이 크게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느 시대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만 하면 정신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어서 좌우의 날 선 예리한 검보다도 예리해서 신혼골수를 찔러 쪼개며 해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 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태 복음 4장 4절에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날마다 음 식을 먹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농사를 지었는데, 감자를 많이 재배해 가지고 감자를 계속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몸 에 배어가지고 지금도 감자라 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60평생 먹었는데 물리지도 않아요, 질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어도 읽어도, 들어도 들어도 새로운 겁니다. 우리 모두는 하 나님의 말씀을 예배때마다 듣고 또 항상 성경을 읽어서 우리의 심령이 싱싱해지 고, 우리의 생명이 차고 넘치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든든히 세워줍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보면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듣고 지켜나가는 사람은 신앙이 든든해 집니다. 견고해 집니다. 비바 람이 부딪혀 오고, 또 창수가 날지라도 그 신앙은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 나 기분과 감정에 기초를 둔 신앙은 환란과 시련과 풍파의 비바람이 부딪혀 오고, 창수가 나면 곧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맡씀은 영혼을 깨끗케 합니다. 시편 119편 9절에 보니 '청년이 무엇으 로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청년들 은 피가 끓고 정욕에 강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너무나 도 큰겁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어떻게 성결한 삶,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 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갈적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는 사람은 심령이 깨끗해 집니다. 깨끗한 정신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활이 깨끗해 집니다. 결코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 습니다. 물욕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겁니다. 이번에 장관들, 차관들, 국회의원들, 고급 공직자들이 재산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이 양반들이 정치는 하지 않고 부동 산 투기만 했나"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탐 심은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 물욕으로 가득차 있으면 이 것을 청소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상을 청소하는 일입니다.

저는 어제 서울시의 옛 사람들이 가는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용미리'를 가 보니 다 세평 남짓한 조그마한 무덤속에 말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래서 이런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토지많아 무엇해, 나 떠나갈때 삼척광지 일장지 넉넉하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이 가졌다고 해서 많이 갖고 가는 것이 아 닙니다. 사도바울은 너무도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6장 10절 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육신적으로, 물질적 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심히 가난한 자였지마는 영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 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영적인 진리를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게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 105 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 나 말씀의 등불을 밝게 켜들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 이 말씀의 빛이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시야왕의 개혁운동은 말씀을 들려준 다음에 그 말씀대로 살 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게 하고 결단을 하게하는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백성이 하 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들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이제 부터 나도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 다. 언약의 말씀을 지켜나가겠다.'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 결심하고 그대로 행동 으로 옮겨 나가는 것,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도 산상보훈을 말씀하신 다음에 "내 말을 듣고 지키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결단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요시야왕도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우며 그 언약을 지켜 나가야 된 다고 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나가겠다고 백성들이 다짐을 하고, 또 그 말씀을 좇아 나가겠다고 결심을 하고 결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모든 우상을 불살라 버렸 습니다. 모든 우상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강에 뿌려 버렸습니다. 철 저하게 우상을 타파해 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사고방식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옛 관습을 버리지 못해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그런 사람은 철저하게 우상을 타파하고 버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저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주일날 장례를 치뤄서는 안되지요. 그래서 하루를 앞당겨서 어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이런 모 습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그런 결단의 표현입니다. 옛 습관을 버리 지 못해 가지고 '꼭 사흘장을 치뤄야 된다' 그런 구습에 얽매여 가지고 예수님을 믿기는 믿으면서도 옛 습관대로 살아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시야왕은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죄악을 청산해 버리게 했습니다.

'미동의 집을 헐었다'고 했습니다. 요시야왕 당시에 창녀의 집 뿐만 아니라 이러 한 창남의 집도 있었는데, 요시야왕은 이것들을 모조리 헐어버렸습니다. 오늘 우 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모든 죄악, 악습을 철저하게 척결해 버리고 철저하게 제거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요시야왕은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유월절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을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받은 것입니 다. 그때에 어린양 피를 힘입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월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회복이 되야 합니다.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였는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죄사함 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십자가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 지고 감격스러움이 새로워지는 유월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속에 차고 넘쳐야 합니 다.

교회 앞에 나와서 주 앞에 엎드려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심령이 메마른 증거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주님!"하고 부르짖으면 눈물이 핑돌고 '주님의 십자가' 생각만 해도 감격스러워서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이 우 리 심령속에서 차고 넘쳐야 합니다. 이게 바로 유월의 은혜를 회복하는 겁니다.

요시야왕은 정신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십시다. 말씀을 멀리했던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날마다 읽고 열심히 듣고, 이 말씀을 지켜 나가십시다. 하나님하고 언 약을 맺으십시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나이다."하는 결심을 하십시다.

그리해서 모든 우상을 척결해 버리십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도 제거해 버리시십시다. 모든 탐욕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 씻어 버리십시다. 그리고 악습 도 버리십시다. 유월의 은혜를 회복하십시다.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감 사합니다."하는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부르짖고 감사하면서 이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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