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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벤하닷 왕의 죽음 (왕하 0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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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2,왕관의 무력함 3,부패한 사람의 본성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칠 년 대 기근의 상황에서 귀한 여인의 칭호를 받던 수넴 여인의 종말론적인 신앙을 살펴 보았읍니다.

 1,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대에 오늘은 아람 왕인 벤하닷의 죽음과 관계된 사건을 통하여 함게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7절입니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라고 시작을 합니다.

 다메섹은 아람 나라 수도였읍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통회하면서 회개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을 잡아 죽일려고 할 때 엘리사는 그곳에 있지 않이하고 다메섹으로 갔던 것입니다.

 재난의 시작은 하나님의 사람이 떠남으로 시작이 됨을 말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떠났다함은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되었다함입니다.

 양에게서 목자가 떠나면 그 버려진 양들은 길을 잃게 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목자가 없으니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도 없기 마련입니다.

목자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이제는 재앙의 시작인 것입니다.

마지막에도 말씀이 거두어져 가는 시기가 옵니다.

회개의 영이 거두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그 때는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는 때를 말합니다.

 아합 왕때 삼 년반의 기근이 있었는데 끄때 엘리야가 말씀을 선포한 기록이 없읍니다.

 사람들이 육신저인 징계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함께 받게 되는 것입니다.

 룻1'1절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참 하나님의 사람들의 부재 시대에는 말씀의 집에 흉년이 들게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타락상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이 강단에서 선포될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이 강단에서 사람들의 귀나 즐겁게 하는 또 세상의 잡다한 것들을 전한다면 그 자체는 재난을 자초하는 일이 됩니다.

 육신만이 재난을 자초함이 아니라 그 영이 죽게된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의 삶의 과정에서 가장 불행함이 무었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언제 여러분의 불행을 느끼곤 합니까

양에게서 목자가 없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까요 성도에게서 말씀이 멀어져가는 이 사실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암8;11절에 "그때에 내가 땅에 기근을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읍니다.

 선지자가 사마리아를 떠났다는 것을 문자상으로는 간단하게 표현을 했지만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결과가 무었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은 죄의 댓가가 무었입니까

결코 축복이 아니었읍니다.

나라 없는 서러움의 긴긴 2,000년의 고아의 유랑 생활이었읍니다.

 행13;46절에서도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28'28절에도"그런즉 하나님이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고 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엘리야가 삼년반동안 시돈에 머물렀던 것처럼 엘리사도 사마리아를 떠나고 말았읍니다.

 지금 엘리사가 당도한 곳은 어딥니까 다메섹이라고 했읍니다.

 다메섹은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주전 2,000년 경에 셈의 후손인 우즈에 의하여 세워진 도시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곳이 바로 이 다메섹입니다.

 많은 역사의 변천과정을 격으면서도 오늘 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다마스카

역사가 말하고 있듯이 참으로 찬란한 도시였읍니다.

여기에 아람 왕 벤하닷이 살고 있읍니다.

 2,육신만의 사람 벤하닷 왕

"7절입니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에 이르렀나이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도착했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은 병들어 있었읍니다.

대단한 중병이었읍니다.

 그래서 8절에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나겠나 물으라"

벤하닷은 옛날 나아만 장군을 거느렸던 왕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문둥병을 치료받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왕입니다.

 왕이 그 엘리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신하 하사엘을 옛날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러 올때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던 것과같이 좋은 예물을과 함께 엘리사에게 보내어 자기의 육신적인 병만 낳을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큰 나라의 왕이 이정도의 중병에 걸려 있을 정도면 나라 안의 명의는 다 와서 진찰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병에 좋다는 진단이 나려진대로 별의별 좋은 약도 다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이 다메섹에 왔다는 소식을 듣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 왕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었을 구해야 했을까요

8절 하반절에 "....나의 이 병이 났겠나 물으라"

벤하닷이 지금 그 병의 났겠음을 물어야 합니까 자기의 영혼을 위한 어떤 것을 물어야할 것입니까

물론 성도에게 병이 들었을 때 그 병을 물리치기 위하여 온갓 정성을 다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해야할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게서 왜 내게 이런 질병을 주셨는가를 먼저 찾아서 그거부터 고쳐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의 순서로 질병의 치료를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질병을 치료하면서도 이 질병을 통한 하나님의 교훈은 무었인가를 알려고 힘써야합니다.

 시편기자는 시119;7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읍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레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벤하닷이 자기들의 사신 우상을 믿지 못하고 전능자 하나님의 사람을 찾은 것 까지는 참으로 좋았는데 끝내 자기의 영혼에 관심을 연장하지 못했읍니다.

 이때 왕이 하나님의 사람을 청하여 당처에 손을 언게하고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자기의 영혼을 위한 상담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읍니까

온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었이 유익하리요 무었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는가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신 것은 육신의 목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설사 육신의 목숨이 그토록 귀중하다면 우리들의 영적인 목숨이야 얼마나 더 귀하겠읍니까

지금 죽을 병에 들려 있는 사람은 왕관을 쓰신 분입니다.

 일구에 제일 가는 어른 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다 하면서 살아 온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한가지를 못하고 있읍니다.

자신의 병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자기의 죽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의 권력이 그의 왕관이 그의 재물이 그 문제의 해결을 돕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 누가 다메섹에 당도한 것입니까

그 상황에 하나님의 사람이 당도한 것이라면 여기엔 뭔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날만함직도하지 않습니까

벤하닷은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것만 그를 가까이 청하지 않았읍니다.

 자기의 영혼을 부탁하지 않았읍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았읍니다.

 우리가 이렇게 먹고 마시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영혼입니다.

 3,벤하닷의 죽음과 엘리사의 분명한 선언 9절에 하사엘 엘리사에게 와서 왕의 물음대로 물었을 때 10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이 말은 참으로 아리송한 말입니다.

병은 낳는데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엘리사의 예리한 눈은 누구를 향하고 있읍니까

`1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 하기까지 쏘아 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엘리사에게 물었읍니다.

왜 우는냐고 물었읍니다.

 12절입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엘리사는 이 왕의 신하인 하사엘이 장차 어떻게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을 계시로 보고 있었읍니다.

 칠년의 긴 세월동안에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할 것이가를 잘 알고 있었므으로 그 앞에서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사엘은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13절 "하사엘이 가로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었이관대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이까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였느니라"

엘리사가 담대하게 하사엘에게 예언할 때에 하사엘은 태연한체 무어라 말을 하고 있읍니까

">>>당신의 개 같은 종이........"

그러니 15절을 보십시요 "그 이튼 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엘리사를 향하여 개 같은 종이라고 하던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음을 봅니다.

 하사엘은 자기를 길러준 그리고 자기의 왕을 이렇게 비참하게 죽이고 있읍니다.

 이게 마지막에 있을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물론 아람 왕이었던 벤하닷의 죽음이 우리들에게 주고 있는 큰 교훈은 사람 죽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자기도 결국 그렇게 죽임을 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심입니다.

 지금 이렇게 왕이 된 하사엘의 운명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들이 배워야할 교훈이 많았읍니다.

 과연우리들은 육신을 위한 사람들입니까 정말 영혼을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그런 사람들입니까

벤하닷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읍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회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시하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언제나 내가 필요할 그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이 내게서 멀어지지 않게되도록 힘써야합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다메섹에 왔을 때 나의 영온을 상담할 수 있었야합니다.

또 사람은 반듯이 죽는 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육신을 이하여 살지 말고 힘이 들더라도 우리들의 영혼 소중함을 알고 영을 위하여 사시는 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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