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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웃사의 비극 (삼하 0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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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거나,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말이 이미 벌어진 불행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무지와 우둔한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란, 때로 그 자신과 남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배워 알아야 하고, 또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바알레유다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새로운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몰았습니다. 다윗과 백성들은 갖가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주악하며 행진하였습니다.

 2. 웃사의 잘못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오는 다윗 일행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습니다. 떨어질지 모르는 하나님의 궤를 붙들은 웃사는 당연히 칭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그 곁에 있었어도 웃사처럼,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웃사를 치셨고, 웃사는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일이요 칭찬을 들어야 할 행동인데, 하나님의 눈에는 죽어 마땅할 정도로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웃사는 레위 지파였고, 또한 그의 집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를 섬겨 온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승승장구하던 다윗 왕이 화를 내며 그 곳 이름을 웃사를 침 이란 뜻인 베레스웃사 라 칭했겠습니까 우리 역시도, 설사 웃사가 잘못했다 하여도 경미한 잘못 같은데, 하나님께서 너무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모든 사람을 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처사를 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처사까지도 자기 자신의 잣대로 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간에 자신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느 후보 부부가 정장을 한 채, 아주 공손하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 때마다 출세욕이라는 잣대라면 모를까, 제 잣대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잣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처사를 재지 말 고,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처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웁기는 하나, 웃사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받아들여야 할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에 의하면, 일반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에 절대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규례를 따라야지,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웃사의 경우는 불가피한 사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생각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인 인간의 사정 여하에 따라서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될 정도로 하찮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절대자이시며 영원한 구원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행동을 통해서 당신에 대한 무엄과 불경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한 웃사의 무엄과 불경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윗 왕을 비롯한 숱한 백성들에게 파급되는 문제였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아주 조심스럽게, 또 매우 경건하게 하나님과 말씀이 담긴 법궤를 대했던 웃사가, 그 궤를 그토록 경홀히 대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궤를 오래도록 모시는 동안에 친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수양이 덜된 사람들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경홀히 여기고, 수양이 잘된 사람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존경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시원찮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그 말씀을 하찮게 여겨 거역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 지켜야 할 규례를 지키지 않은 다윗 왕과 백성들에 대해 엄히 경고하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웃사를 치신 것입니다. 역대상 15:13에 보면,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시고,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그 말씀을 귀중히 여겨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다윗의 분노와 두려움

웃사의 행동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다윗 왕은,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 화가 나서 그 곳을 베레스웃사 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처사를 따르는 대신에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보다도 자기의 의가 더 옳다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축복의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하나님께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 다윗 왕이 전날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승승장구하던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제의 내 믿음이 좋았다고 해서, 오늘의 내 생각과 내 행동이 믿음의 생각이요 믿음의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정신을 차려 말씀을 묵상하시고, 늘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적 혼란기에는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마귀의 도구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다윗 왕은 나중에 깨닫고 회개합니다.

 4.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진 궤

다윗 왕은 법궤를 블레셋의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하였습니다. 이방인인 오벧에돔은 웃사가 죽은 것과 다윗 왕이 두려워한 것을 알았을 텐데, 핑계를 대거나 불평하는 대신에 오히려 기꺼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들였습니다.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이나 다윗 왕의 두려움이 하나님의 궤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궤란 복들이 아니라, 만복의 근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국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번번이 이기는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궤 때문임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실로, 에벧오돔은 지혜로운 믿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고, 남이 걸려 넘어진 돌을 피해서 자기의 복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는다면 누가 복을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궤를 인하여 그와 그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5. 맺음말

어제의 믿음이 좋았다고 오늘의 믿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제 말씀이 담긴 하나님의 궤를 잘 모셨다고 오늘도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신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정신을 차리고,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셔서 우리와 우리의 온 집안에 하나님의 복이 날로 더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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