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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머나 교회:주인없는 면류관 (계 0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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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우리가 본 받아야할 만한 몇몇 교회가 소개되어 있다. 이 교회들을 보면 몇가지 특징들이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예루살렘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서 성령의 사역이 증거된 교회였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과 방언과 빈부로 인하여 멍들었던 교회였으나 바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로 우리 가운데 전해지고 있다.

1.서머나 도시
항구도시로 아릅답기가 아시아의 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서머나는 동방의 문지기였다. 특히 유럽으로 가는 출구인 서머나는 에베소도시가 점차 쇠퇴하자, 가장 관심을 끄는 지역으로 급성장하여 갔다.

2.서머나교회의 복음 전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 가운데 칭찬을 받은 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뿐이다. 다른 교회들은 우리 주님에게서 꾸중을 들었으나 이 두 교회는 오히려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위로를 받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선한 수고가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신자에게 결코 칭찬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며 애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가를 헤아려 보시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칭찬받은 이유는 신앙으로 생기는 고난을 잘 참았고 장차 올 고난에 대하여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역사가들도 칭찬한 교회였다. 당시 서머나 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도 있으며 인구 약 20만이 살고 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구의 1/3이 신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회는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칭찬하시고 또 세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을만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좋은 상급을 준비하여 놓으셨다. [생명의 면류관] 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경기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우승 트로피 혹은 메달이 많고 프로경기에서는 거액의 상금까지 곁들여 있어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것들은 우승자가 누구인지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오직 우승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면류관이 천국의 진열대에 있다는 것을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파멸의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면 나를 위하여 천국에 마련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주인을 잃고 진열대에 외롭게 남아 있을 것이다. (우수작이 없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보고 마음 아파하실 것이며 주인 없이 놓여있는 수많은 면류관을 보고 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상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서머나교회를 향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나타나 여러분 개인과 우리 교회를 위하여 마련해 주신 생명의 면류관이 결코 주인없는 면류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머나 교회의 칭찬이 곧 우리의 칭찬이 되고 우리가 그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주인이 되자.

▣본론

I.환란과 궁핍을 살아 온 사람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의 처지를 알고 계시다고 하는 말 처럼 힘과 용기와 소망
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 인간은 두가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①나는 알지만 하나님은 모르기를 원하는 마음.
②나는 부족하게 알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세하게 알아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
하나님이 알고 계신 것은 궁핍과 환란이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다는 것은 실상은 부요한 자이라고 한다. 당시 서머나는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현대과학과 의술이 가장 앞서있는 도시였다. 첨단 장비를 갖춘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너희의 환란과 궁핍을 안다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서머나교회의 교인들의 물질적인 궁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부를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온갖 시련은 육체를 단련하기도 하지만 영혼을 단련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신 바된 인생은 행복하다.

Ⅱ.장차 올 고난(Suffering)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

(V.10)“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하지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의인의 고난을 의미한다. 루마니아의 공산세계에 복음을 密輸出하던 범브렌트 목사는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세어 보았더니 365번 기록되어 있더라고 하였다. 이 숫자는 1년 365 번에 꼭 하루씩 해당되는 수였다. 인간이 얼마나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아시고 하나님께서 매일같이 권면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은 환란과 두려움이 와도 처음이요 나중이신 내가 함께하고 있으니 투옥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고 환란을 받더라도 두려워 하지말라고 미리 깨닫게하고 계신 것이다. 투옥은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이 당하는 첫 관문이다. 요셉을 봅시다.(창 39:20) 삼손과 세례 요한 그리고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은 투옥은 겨우 첫번째 관문이 것이다. 투옥은 우리를 파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하는 통로이다. 사단이 와서 여러 모양으로 유혹의 올가미를 씌워 넘어뜨리려 하여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열흘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의를 외치며 말씀대로 살다가 옥에 던지우고 빈곤의 늪을 헤매는 성도들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다. 교회의 멸절을 위하여 사단은 교묘한 방법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러나 시련들은 우리를 잠간동안 묶어놓을 뿐이지 영원히 결박할 수는 없다. 충성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한다.
(예화) 추운 겨울에 여행하는 사람이 만난 한 여인은 아이를 업고 있었다. 허나 말에 태워 주었으나 엄마가 죽을 지경이 되자 말에서 내리게 하고 말을 달렸다. 아이를 찾으려는 여인이 악을 쓰며 달여왔고 숨이 턱에 찰만큼 달려온 여인에게 아이를 돌려 주었다. 모두 살았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를 바라신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주후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하였는지 우리는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로마의 시가지 밑에 뚫려 있는 카타콤의 광대함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 박해였는지를 말한다.
계산에 의하면 885Km 내지 1,207Km로 보고 거기에 매장된 시체의 수는 350만 에서 600만 명까지로 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기 위하여 사단의 무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더욱 돕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 성도의 신앙은 결코 말살해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유혹의 올가미로 접근하여 온다고 하여도 고난의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신앙의 충성을 드리자. 생명의 면류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예화) 두 마리의 꿩이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한 마리는 죽고 또 한 마리는 다리를 절며 살려고 도망간다면 사냥꾼은 어느 것을 잡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놈을 먼저 잡으러 갑니다. 이와같이 이미 그 靈이 죽은 사람에게는 시헙이 필요없다. 그러나 살아있는 이는 시험을 받습니다.

Ⅲ.말씀의 경청자가 주인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는데 하물며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아서야 되는가 귀를 가졌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귀가 어두워서 그렇다. 성령은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뵈어 온 자상한 선생님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은 성령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가 현대에 교회를 통하여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일상생활에서 표현되는 말로서 알 수가 있다.
나누는 대화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듯 하자. 어른들이 계시면 앉고 일어서는 것이며 음식을 나눌 때에 가져야 하는 예법이며, 나아가 어른들 앞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일에도 주의해야 한다. 어른들의 말씀이란 대개가 먼저 산 인생의 지혜가 대부분이다. 어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다가 영원한 형벌에 던지운다면 그것은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겸허한 영혼이 되자.
서머나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환란과 궁핍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며 영혼의 부를 이룩한 교인들이었다. 옥에 던져도, 고난이 극심하여도, 서머나교인들은 이 시련이지나가면 모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영광의 승리자가 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나누는 사랑의 교인들이었다.

“라디오 설교를 듣는 것과 교회에 나가서 설교를 듣는 것의 차이는 당신의 여
자 친구와 전화로대화하는 것과 그녀와 직접 만나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과
의 차이와 거의 비슷한 것이다.” MOODY

병자에게 건강한 피를 수혈하는 것처럼, 교인의 교회 참석은 필수이다. 모든 성도들이 감격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가운데도 더러는 소외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변이나 어지러운 시기엔 반드시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돌변하기 쉽다. 이것은 6.25을 통하여 이미 경험한 바있다. 당시 서머나교회도 지배층이면서 세속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앞장 섰던 유대인들이 가장 악랄하게 사단의 앞잡이로 성도들을 괴롭혔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소외받고 있는 분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서 사회가 결코 살벌한 곳만은 아님을 걔닫게 해 주어야 한다.

맺는말

하나님 앞에 주인없는 면류관을 두게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이 생명의 면류관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바울 선생이 남겨 주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 보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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