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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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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두 관계 속에서 삽니다. 첫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둘째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십계명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명령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5계명부터 10계명에 걸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처음 관계를 갖는 것이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잘되지 못하고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잘 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가장 중심이 되며, 가장 기초적인 관계입니다.

`공경하라'
허브리 원어에 `카베드(kabhad)'는 본래 `무겁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 명사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우리의 내장 중에 가장 무거운 간장(肝臟)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간장의 중요한, 간기능의 중요함과 같은 뜻입니다. 간(肝)은 신체의 여러 장기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모를 이렇게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

1. 엄숙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신5: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주안에서 옳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태도는 인간의 가장 사악한 태도입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억하며'(딤후3:1-3)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열심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서 이것을 `고르반'(막7:6-13)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드렸노라' 그래서 주님은 그 사람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이여!'라고 분노하셨습니다.

2. 권위에 대한 순종을 배우는 훈련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권위가 바로 이 부모의 권위입니다. 그 다음으로 숱하게 많은 권위를 만나며 우리의 삶을 형성시켜 나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순종을 바르게 배운 사람이 이웃과 각 사람의 권위에게도 또한 하나님께도 올바른 순종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자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 할 수 있느냐'고했습니다. 공경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3.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로 새서 3:20절의 말씀은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요.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순종이나 공경은 단순히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영적인 하나님께 대한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비'는 여러 종류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단순히 자신의 육신의 부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넓고 포괄적인 면에서 `아비' 혹은 `부모'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트 124문에 보면 `제 5계명에 있는 부모는 누구를 뜻하는가' 제 5 계명에 있는 부모는 혈육의 부모뿐 아니라 연령, 은사의 모든 윗사람과 특히 하나님의 규례에 의하여 가정, 교회, 국가를 막론하고 우리 위에 권위의 자리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라고 했습니다.
1)위에 있는 권세자들도 행정장관입니다.
그 나라의 권세자들은 그의 나라의 아비입니다. 성경은 왕들을 `아비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사49:23)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 관리들입니다. 동리에서 동장, 면장,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등을 의미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2)연륜으로 보아서 윗사람들입니다.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레19:32)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이웃의 있는 연령자는 부모와 같이 공경하여야 합니다.

3)교회에 있는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은 영적 아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후4:15)라고 하였습니다.
토마스 왓스는 성직자들이 존경과 공경을 받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둘기처럼 감람나무 가지를 입에 물고 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까1)가장 귀히 여길 것(살전5:12,13)
2)옹호자가 됨으로써 성직자에게 부당하게 닥쳐오는 비방을 씻어 줌으로써(딤전5:19)
3)그들의 교훈에 순종함으로써(살전2:19, 고후3:1)

4) 자연적인 육신의 아비들입니다(히12:9)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
육신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도록 행동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의 모든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경을 받도록 살아야 합니다.
1) 주의 두려움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여야 합니다(엡6:4)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그의 자연 출산보다도 그의 영적 출산을 위해서 더 산고를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그를 어릴 때부터 교훈 하였습니다(딤후3:15) 그녀는 그에게 모유를 먹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말씀의 순전한 젖'을 먹였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라고 하였습니다.

2) 자녀들에게 사랑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부모의 모든 권고와 명령에서 그들로 하여금 사랑을 알게 하여야 합니다. 부모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자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하는 자녀 양육법입니다.

3)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들을 노엽도록 격동시키지 않는 것이 신중성의 큰 핵심점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자녀들을 격노케하기 쉬운가 그것은 자녀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함으로서 입니다. 사울은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패역부도의 계집 소생아'라고 말했습니다(삼상20:30)
어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저주와 악담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그들을 격노케 합니다. 사울은 아들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은 격노하였습니다. `요나단이...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고'(삼상20:23)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들의 자녀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을 거부할 때입니다. 자녀들에게 주기를 싫어하고 너무나 부족 한대로 내버려두었을 때입니다.

4)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분여재산을 저축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의 재산을 저축하여야 합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기도와 눈물의 아들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들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 시대의 감염으로부터 보전되기를 위하여, 그들의 얼굴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와 그릇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5) 자녀들에게 선하고 칭찬할 만하다고 보는 바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덕성은 칭찬을 받으면 늘어납니다'(Virtus laudata crescit) 즉 선은 칭찬을 받을 때 늘어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선한 일을 칭찬하면 그들이 덕있는 행동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5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6계명: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

현대는 인명을 경시하는 시대입니다. 즉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죽이듯 앗아가는 시대입니다. 가스가 폭발해 죽거나 돈 몇 푼 때문에 제자까지 죽이는 시대입니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볼 때마다 매일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대하고는 우리는 몸서리를 칩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에서는 휴머니즘이 판을 치고 있고 신학에서도 인본주의 신학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의 가치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슬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T. V나 라디오의 뉴스면의 시간을 지워 버리고 싶은 많은 사건들을 우리는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사람의 그 영혼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값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체 먹지 말라'(창9:4)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2.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빚어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입니다. 인간을 모독하고 살해함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어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곧 하나님의 주권을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살인이 아닌 것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씀, 히브리어는 이 단어의 뜻에 몇 가지 경우에 해석이 따릅니다.
살인이 무엇입니까 살인이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살인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전쟁은 살인이 아닙니다.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소돔 고모라를 쳐들어 와서 노략질하고 훼파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붙잡아 갔습니다. 조카의 위급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밑에 있던 부하 300명을 이끌고 다섯 왕의 연합군을 습격해서 그들을 쳐 승리하고 조카인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이때 많은 다섯왕 연합 군사를 죽였는데 이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사무엘하 10장에 암몬족속이 못된 짓을 할 때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전쟁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허락하셨습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는 자기 재산과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살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2. 정당방위는 살인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2:2절에 보면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처 죽이면 피흘린 죄가 없으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수아 20장에 보면, 살인의 의도가 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를 동기로 사람을 죽이게 된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도피성의 제도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침략하는 것을 살인이지만 쳐들어오는 적군에 대항하여 방어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으로 표시하지 않습니다.

3. 법의 집행을 위해서 실시되는 사형은 살인이 아닙니다.
창세기9:6절에 보면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삶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말씀하심을 봅니다.

4. 동물 살생은 살인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죽이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령 식물은 동물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식물이나 동물을 죽여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래의 생활 방식입니다.

`살인'이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살인의 동기까지도 미워하셨습니다.

1. 상대방의 이름을 손상시키는 것
자기 집에 중요한 물건을 도적 맞고 자살한 사람은 없어도 자기 이름이 모함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말로 손상을 입을 때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살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처럼 쉽게 하는지요! 다른 사람의 인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가면서 이것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없이 이야기하고 헐뜯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타인의 이름을 손상시키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타인의 육체를 살해하는 것
생명은 신성불가침입니다. 창세기 9:6절에 보면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는 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분노입니다
사람이 분에 너무 복받치면 사람 죽이는 것쯤 쉽게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살인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살인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말했습니다.

2)시기와 질투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원흉입니다. 가인은 시기 끝에 자기 행동 아벨을 죽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시기해서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시조 아담의 무죄와 낙원의 영광을 시기했으며, 그래서 죄를 짖게 한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기를 살인과 동등시 하였습니다. `투기와 살인과'(갈5:21)라고 하였습니다.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

3)증오입니다.
미움은 피를 먹고 사는 해충입니다. `네가 옛날부터 미움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피를 흘렸음이라'(겔35:5)
하만은 모르드게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으므로 그를 증오하였고 유대인의 전 족속과 자손을 멸하고자 한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이 먼저 죽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극기하고 자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성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날 때 자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물론 위대한 왕이었지만 술좌석에서 자기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하였다고 화를 내고 그 자리에서 그 부하를 창으로 찔러 죽엿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는 기록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는 다스릴줄 알았지만 자기 자신은 다스릴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물론 이것이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은혜를 받아서 성령의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타인을 타락시키는 것
인간의 중심은 육신이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죽음이란 분리를 뜻합니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곧 죽음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일은 바로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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