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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벨과 그 제사를 열랍하신 하나님 (창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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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세기 3장을 두 시간 동안 배웠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아담의 불순종과 인간 타락이 기록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원시 복음을 허락하셨습니다.(3:15) 아담은 자신의 불순종을 깊이 깨닫고 원시 복음을 받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며 부끄러운 수치를 면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계시하시며 희생 제사를 통해 우리의 죄과를 가릴 그림자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이들은 각각 그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제사를 둘 다 받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것을 받으시고 가인것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할까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은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았습니다. 가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였습니다.
‘가인’이란 이름의 뜻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得男)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와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결코 자기와 남편으로 비롯된 아들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자녀는 부부간의 사랑의 열매로서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오, 인간의 노력으로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시127:3)
그 후 아담은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이란 이름은 “허무”,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낙원에서 쫓겨나서 사명을 잃어버리고 다만 먹고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고 땀 흘려야 하는 그 생활이 너무나 허망하고 “허무”한데서 아벨이라 그 이름이 지어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라서 아벨은 목축업을 하는 양치는 자이었고, 이 양을 처서 의복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식량문제를 해결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인은 땅에 농사를 지어 그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도 목축업을 하면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4,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랍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랍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가인의 제물은 태워지지 않으니까 가인은 심히 분해하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제사만 열랍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열랍하시지 아니하셨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은 하고 있지 않지만, 다만,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의와 진리로 행하시는 자비한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셨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드린 두 종류의 제물은 레위기 2장에 비추어 볼 때 둘 다 열랍될 수 있는 제물입니다. (레위기 2:1,4,14,15)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것을 받지 않으신 것은 어떤 제물이었느냐 하는 제물에 있지 않고 제물을 드리는 자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적인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해 줍니다.
히브리서 11: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아벨은 믿음으로(by Faith)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물이란 그 사람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장 첫 번째의 것, 가장 기름진 것, 가장 좋고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벨이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해 줍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떤 믿음의 소유자였습니까

첫째,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믿음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했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 중에 가장 기름진 것으로, 살찌고 기름진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서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제물을 준비할 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가 지은 땅의 소산 중의 일부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첫 소산이란 말도 없고, 소산 중에 가장 기름지고 알찬 것이란 말도 없습니다. 있는 것 중에서, 먹던 것 중에서 대충대충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 중에서 가장 기름진 것으로 골라서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자기가 기른 양이 첫 새끼를 낳았을 때,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기의 수고의 열매요, 보람입니다. 마치 직장 생활이나, 개업을 해서 첫 월급, 첫 수입이 나왔을 때,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 첫번 것은 쓸데가 많습니다. 첫 월급은 귀한 것입니다. 그 동안 부모님의 은혜도 갚아야 하겠고, 자기가 번 돈이라서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욕심을 미루고 먼저 첫 번째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귀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그의 평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자기가 수고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양을 주시고 양을 자라게 하시고, 기르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아벨의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같이 먹다 남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쓰다 남은 돈으로 헌금하는 분, 자기 할 것 다하고, 자기 쓸데 다 쓰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것, 자기를 위하여 귀한 시간을 다 쓰고 남은 시간으로 교회 심방이나, 교회 일을 하는 분, 이런 분은 가인과 같은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들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것을 얻어먹고 꾸어 먹는 거지가 아닙니다. 억지로 짜 붙이는 구두쇠가 아닙니다. 거지가 아니시기 때문에 먹다 남은 것, 쓰다 남은 돈, 쓰다 남은 시간, 억지로 드려서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때 시간이면 가장 귀한 새벽 첫 시간을 드려야 하고, 또 내게 하나님이 시간이 필요하다시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뒤로 미루고라도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더러 교회서 심방을 하자고 간절히 부탁을 하면 바빠요, 오늘 친구 모임이 있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돈이면 새 것으로 깨끗한 것으로, 또 주님이 교회나 하나님의 일에 필요하시다면 그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진 것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바치는 그 제물을 먼저 받지 않으시고 사람을 먼저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헌금을 하면 하나님이 헌금을 먼저 받으실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4절에 사람을 먼저 받으시고 제물을 열랍하셨습니다. “아벨과 제물을 열랍하셨습니다” 잠언 3: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세기 3:15절에 구속의 씨를 주실 것을 약속하실 때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원수가 되어 그 놈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의 머리통을 뭉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류 구속의 역사는 피 흘리는 영적 투쟁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계시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짐승의 희생을 통한 제사 드릴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3:21)
가죽 옷을 지어 입히려면 짐승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희생을 통해서 아담의 수치와 죄를 가리워 주셨습니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자기의 의를 버리고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계시의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이 계시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자기가 양을 치는 자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에 대한 계시의 말씀에 절대적 자세로 순종한 것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순종의 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그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그와 그 제물을 열랍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이 계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했거나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농사 짓는데 구태여 동생이 치는 양을 희생으로 제사 드릴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가인은 이런 교만한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방법에 순종치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가인 같이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아벨 같이 목축을 할 수 있고, 세일즈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다른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드려지는 삶, 생애라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이 자기 제물을 거절 당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5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심히 분해하며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으면 왜 안 받으실까 뭣 때문에 안 받으실까 혹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자기를 살피고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① 분해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기는커녕 마치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잘못을 한 것처럼 분해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오만 불손하고 제사를 안 받으시는 하나님을 불평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② 안색이 변했습니다. 아벨을 쏘아보고 하나님을 쏘아 봤는지도 모릅니다. 곧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은 눈치라서,
6,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하셨습니다. 가인이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대게 사람은 마음에 악한 계획을 하고 죄를 짓게 되면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가인은 마음에 생각과 계획이 악했으므로 낯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를 보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했습니다.
가인은 자기의 제사가 열랍되지 않음을 보고 분해하고 동생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마음 속에 못된 생각이 들어서 죄를 범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나” 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적극적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하셨습니다.
동생에게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린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가인의 마음 속에는 죄의 소원이 숨어 있었습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뱀이 삼킬 것을 찾기 위해 똬리를 틀고 혀 질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 속에 죄의 소원이 숨어 있는 것을 보시고 뱀처럼 엎드려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투쟁할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면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이기고 믿음으로 살도록 방향을 잡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아벨 처럼 첫 번째의 것, 기름지고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 아벨의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또, 꾸지람을 하실 때 하나님이 사랑 하사 책망하시므로 순종해야 승리합니다. 또, 잘못을 했을지라도 하나님이 소망을 거시고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잡아 주실 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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