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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후손과 불 신앙의 후손 (창 0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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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앙의 후손과 불 신앙의 후손에 대하여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신앙의 후손은 셋의 후손(25:26)을 말하고, 불 신앙의 후손이란 가인의 후손을 가리켜 있습니다.(16-24)
오늘은 이 두 후손의 모습을 대조해 가며 조상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배우고, 동시에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겠는가를 방향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불신앙자 가인의 후손들(16-24)

지금까지의 말씀의 대략은 이러합니다.
아담이 낳은 형제가 가인과 아벨인데 아들이 자라서 자기들이 얻은 소득으로 가인은 곡식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아벨과 그 제사는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랍지 않으셨습니다. 일의 발단은 여기서부터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린 제사가 열랍 되지 않자 가인은 자기를 뒤돌아보고 성찰하고 회개는 하지 않고 오히려 심히 분해하고, 안색이 변하므로 하나님께서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네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 네가 선을 행하였으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시며 가인의 잘못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무엇인가 안색이 변하고 분해하니까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아서 선(善)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린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또, 지금 가인이 잔뜩 동생을 시기하여 쳐죽이고 싶은 욕망이 일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유인해 나가서 돌로 처 죽였습니다. 이런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대답하기를 ①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②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며 오만 불손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가인을 하나님은 네가 네 아우 아벨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시며 이런 가인을 하나님은 징계하셨습니다.
①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 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노력한 만큼 열매를 주지 않을 것이요,
②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 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이 하나님께 구하기를 “내 죄벌이 너무 중(重)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주께서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오면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땅에서 피하여 유리 하는 자가 되리이다 무릇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고 가인이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을 아무도 헤하거나 죽이지 못하도록 표를 주셨습니다.
이런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길이 참으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길이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앞을 떠났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가” 한 것을 보면, 가인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13:30절에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 것을 마음에 굳히고 예수님이 주시는 떡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더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가인도 하나님을 버리고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라 했는데 놋이란 “방황함”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니 방황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성을 쌓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성(城)을 쌓았습니다. 진정한 보호는 하나님께 돌아오는데 있지, 성(城)을 쌓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 돌아오지는 않고 성을 쌓고 세속적인 왕국을 건설해 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내와 동침하여 에녹을 낳았습니다. 에녹을 낳고 그 성을 아들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5대째 내려가서 라멕이 태어났는데 라멕은 자라서 두 아내를 취하였습니다. 이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결혼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신성한 결혼을 더럽혔습니다. 이때부터 일부다처 주의의 비극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라멕은 첩을 두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원래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것으로 이렇게 결혼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 윤리가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습니다.
아다라는 이름의 뜻은-“꾸민다”라는 뜻이요, 씰라는-“딸랑거림”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여자들의 이름을 볼 때 육신을 꾸미고 화장을 짙게 하고 귀걸이, 목걸이, 코걸이를 하여 딸랑거리고 이기죽거리고, 하여튼 육신의 정욕으로 더럽혀 갔음을 말해 줍니다.

아다는 자식을 둘 낳았는데 ① 하나는 야발로 이는 장막에 거하면서 육축을 치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목축업을 했는데, 이들은 벌써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육식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의 식물은 1:29절을 보면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것인데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어겼습니다. ② 또 다른 하나는 유발이었는데,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관현악을 사용한 최초 음악가였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삶이 너무 외롭고 괴롭고 고달프니까 그 외로움과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서 음악이 생겼습니다. 아마 팝 뮤직이나 록 뮤직의 조상이 된 것 같습니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그는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최첨단 과학은 최첨단 무기를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땅이 소산을 내주지 않으니까 날카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자연과학이 발달한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해야지요, 그러나 결국은 무기를 만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불 신앙의 후손들은 계속 육신의 정욕으로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이 비극적인 일은 23-24절입니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고 회개하기는 커녕, 그 죄악을 노래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23,2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라멕은 아다와 씰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아내들이여 나에게 귀를 기우려 보시오.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어보시오. 한 젊은 이가 나를 쳐서 상처를 입히기에 내가 그를 죽이고 말았소. 가인을 죽이는 자가 칠 배의 벌을 받았다면 라멕을 죽이는 자는 칠십 칠 배의 벌을 받을 것이요”
이 내용을 보면 사람을 죽이고 회개하기는 커녕 살인을 자랑하고 노래했습니다. 첩들의 귀에 대고 가인을 죽인 자가 칠 배의 벌을 받을 것 같으면 이 라멕을 죽이는 자는 칠십 칠 배의 벌을 받을 것이라 하니 이 얼마나 오만 불손합니까
하나님이 가인에게 회개하도록 주신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비웃었습니다.

오늘 날 세속의 모든 시문학이라든지,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죄악을 미화하고 자랑하고, 노래하는 것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화장을 하고 꾸미는 것도 아이샤도를 붙이고 귀에 달고, 목에 달아 덜렁거리는 것이나 달아서 딸랑거리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꾸밉니까 무엇 때문에 “아다”처럼, “씰라”처럼 많이 끼고 달고 해서 이기죽거리고 딸랑거립니까
시문학이며, 뭐 모든 노래들이 독백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 가인의 후손들의 사회상을 볼 때, 오늘 날 불신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화를 오래 건다고 칼로 찔러 죽이고, 아내가 외출 준비를 빨리 하지 않는다고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보통이 되었고, 결혼을 해 보고 안 맞으면 또 다른 여자와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인의 후손, 불신자의 후손들은 이렇게 살아가도 됩니다만, 하나님의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진리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진리로 살도록 투쟁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本)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Ⅱ. 신앙자 셋의 후손들(25-26)

25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는데 그가 셋입니다. 이 셋은 “보상”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셋을 아벨 대신 보상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가인의 후손은 불신자의 후손이라면, 셋의 후손은 신앙 자의 후손입니다.
이제 셋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 지어 불렀습니다. 이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연약하다”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공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4:16절에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갔지만, 반대로 26절에 셋의 후손 에노스 때부터는 여호와께 돌아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두 부류의 신앙 자들을 보았습니다.
5장은 계속 신앙 자의 후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나는 가인의 후손에 가깝습니까 셋의 후손에 가깝습니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신앙의 후손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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