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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과 아브람의 선택 (창 1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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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 거한 아브람에게 기근이 닥쳤습니다. 그는 기근을 면하기 위해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리따운 아내로 인해 두려움에 빠진 아브람은 자기가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 결과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게 되고 자기 머리로 기근 문제(물질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문제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고”(창1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하신 언약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와 바로의 가정에 큰 재앙을 내려 사래를 구해 주시고, 소와 약대, 나귀, 은금이 풍부하게 해서 돌아오도록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이렇게 애굽에 내려갔다가 하나님의 보호를 알고 전에 장막을 쳤던 벧엘에 돌아와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난 것을 후회하고 이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고 아마 아브람은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이러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람과 롯에게 큰 물질의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살 때 하나님이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그 때 거기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롯과 아브람이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Ⅰ. 양보하는 아브람(5-13)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갔을 때도 하나님이 언약 때문에 아브람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며 물질을 풍성하게 해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애굽에 내려갔던 것을 회개하고 약속의 땅에서 잘 살아가는데 축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풍요로히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일행 롯에게도 소와 양과 종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브람에게도 소와 양과 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유는 풍부하고 가축은 많이 늘어나고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땅이 좁았습니다. 목초지가 좁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7)
브리스 사람들은 촌락 또는 들에서 거하는 사람들로서(삿3:5) 방랑 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일족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이 떠돌이 백성들 앞에서, 이 이방 백성들 앞에서 불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 앞에서 다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덕이 되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고전 6:6-7절 믿지 않는 이방인들 앞에서 송사 하거나 다투지 말 것을 성경은 당부합니다.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 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는 피차 송사 하므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했습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고(故) 김 용기 장로님은 한국 사람이 싸우는 것은 두 가지로 인하여 싸우는데 그렇게 미워하고 싸우다 총으로 사람을 쏴 놓고 그 총소리 표현을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총을 쏴 놓고 그 소리를 표현하기를 “땅”, “빵” 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싸우는 것은 먹는 “빵” 문제와 “땅”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땅” 이것 때문에 골육이 싸운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불신자들 앞에서 자기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했습니다.
아브람은 다투지 않았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다투지 않고 양보했습니다.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했습니다. 자식처럼 기른 젊은 조카에게 너는 젊으니 여기서 살든지 저기 살든지 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물질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① 그의 소망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이요,
② 또한 아브람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애굽에 내려갔는데도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현재 말씀대로만 살면 어디에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디서든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자,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소알까지 땅에 물이 넉넉하고 기름지고 비옥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했습니다.(10)
롯은 좋은 찬스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놓치지 않고 물이 넉넉한 땅, 여호와의 동산 같은 아름다운 땅, 기름지고 비옥한 땅, 양치기에 좋은 풀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습니다. 달걀의 노란 자위와 같은 곳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롯은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롯은 요단강 양편의 계곡과 온 들을 택하고 그 장막을 점점 옮겨 소돔으로 들어갔습니다.(12)
그러나 창세기 저자는 그 당시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보았다는 것은 세상적인 조건을 따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탐욕의 눈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롯의 가치관은 물질적이었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간 것을 볼 때 육신적이었고, 썩어질 세상과 도시 문화 생활을 마음 깊이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롯은 거기에 가서 거하며(14:12) 또 거기서 집을 사고(19:2) 거기 사람이 되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어떤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생활에 편리한 대로 생활했습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온갖 불법과 더불어 우상 숭배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겔16:49,50) 또한 성적 타락이 된 도시였습니다.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딸과 통혼되는 비극도 당했습니다.(18:20-19:35) 이는 세상에 연연하는 성도를 보여 주는 듯합니다. 하여튼 롯은 좋은 곳을 택해 가 버렸습니다.

Ⅱ.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하나님(14-18)

롯이 아브람을 떠나 좋은 곳으로 간 후 아브람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피붙이란 다 떠나고 없습니다. 이젠 낯선 땅, 늙은 종이 풍요롭지도 못한 황량한 광야 지대에 한 명의 자녀도 없이 남게 되었습니다. 노란 자위와 같은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람은 좀 서운한 생각에 잠겼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4,15)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12:1절에서 말씀하셨던 약속으로 거듭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의 땅에 나아가면 수고하지 않고 그 땅을 취할 줄 알았는데 가 보니까 가나안 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실망하고 있을 때, 12:7절에 다시 하나님은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평 발 붙일 만큼의 땅도 주시지 않았는데(행7:5) 하나님이 주신다니 아브람은 거기서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때와 같이 오늘도 롯이 좋은 땅을 택하여 아브람을 떠나간 후 허전해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 오셔서 이 땅을 너와 내 자손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땅에 티끌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힘없이 앉아 있는 아브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땅을 종(縱)과 횡(橫)으로 이리저리 사방으로 발끝 가는 대로 가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 눈 끝이 닿는 데까지 보이는 동서남북의 땅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해진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힘을 주시고 다시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용기를 주시며, 밀어 주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헤브론은 현대 아람어로 “엘 카릴”(El khalil)인데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헤브론은 고대의 중요한 도시로서 예루살렘 남방 약 36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아내 사래의 묘실을 마련한 곳이기도 합니다.(창23장)
아브람은 이 땅을 주신다니까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여기서 단을 쌓았다는 말은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린 것을 가리킵니다.(8:20) 하여튼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습니다. 이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다가 연약해진 그 택하신 자들을 반드시 찾아오시고 위로와 소망을 주시며 말씀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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