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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⑤ (고전 15: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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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도신경-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하여 배우려고 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고생을 싫어하며, 병을 꺼리며, 노쇠를 탄식하며, 마지막에 다가올 죽음 앞에 질겁을 합니다.
이는 본래 고난, 질병, 죽음이 인간에게 와서는 안 될 것이었는데 죄값으로 이런 것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근본을 따진다면 인간 시조의 범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행복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잃은 영생을 끝없이 사모하다가 무능함으로 이루지를 못해 한 폭의 그림을 쳐다보듯하다가 죽음으로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타력의 구원을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의 해답이 사도신경 마지막 부분 곧 ‘몸이 다시 사는 것과...’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첫째... 이 고백은 죽음은 마지막이 아님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눅8:52에서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고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보지를 않고 ‘잔다’고 하셨는데 이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집니다. 하나는 무감각 상태로 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드시 깨어난다, 곧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실 때 그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으며 모든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비겁하지 않고 조용히 기쁨으로 평화스럽게 맞아들이는 이유는 죽음은 영혼이 아버지의 품안에 안기는 것이요, 육신의 고생이 끝나고 쉬는 것이요, 장차 반드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순교자는 불 가운데서도 ‘오늘은 결혼식 날보다 더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 고백은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요5:28-29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두드러지게 두 교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바리새파요, 또 하나는 사두개파였습니다. 바리새파는 지금으로 말하면 정통보수파이고 사두개파는 자유주의 신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는데 이들은 모세오경은 부활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안믿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부활의 새로 남을 모르고 이 세상의 연장인 줄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모세오경에 부활이 없다고 했는데 출애굽기 가운데 가시덤불에 관한 글이 있지 않느냐 가시덤불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느냐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자의 하나님이라’(마22:23-3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실 죽음이라고 하는 말은 인간끼리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혼이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이적 가운데 부활의 이적도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 부활입니다만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런 이적은 다 부활의 가능성을 실증하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마지막에 자기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살아나셔서 모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었습니다. 죽은 후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하시고 이 다음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고전 15:51에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은 자들이 다시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고 우리가 변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째... 그러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산다는 말입니까
성도는 믿을 때 예수님의 영으로 속에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벧전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씨는 때가 되면 반드시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롬8:11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시 사는 몸의 성질은 어떤 것입니까 성경의 여러 곳에 말씀하셨지만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곳은 고전15:42-44인데 곧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한 몸은 지금의 몸을 기초로 하여 변화하겠지만 땅에서 가진 체질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몸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3:21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①썩지 않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체질은 다 썩는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벧전1:24에 ‘모든 육체는 풀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셨고, 고후4:16은 ‘겉 사람은 후패’한다고 하셨고, 잠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젊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죽으면 썩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사는 몸은 썩지 않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사 잡수시기도 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혹은 상식에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겠지만 그때는 우리 몸도 새롭고 만물도 새롭고 무엇이든지 부패성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몸으로 사는 무궁 세계인 천국은 식사는 하지만 부패가 없으니 악취도 없는 그야말로 공해 없는 맑고 깨끗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②영광스러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땅의 사람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부활하신 주님이 그에게 빛을 비추시니 보지 못하고 쓰러져 눈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부활하면 그런 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시기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같이 빛나리라’고 하셨습니다(마13:43)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과 부활한 성도들의 몸에서 나는 광채로 말미암아 대낮처럼 밝다는 의미에서 밤이 없다고 묘사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③강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불경기일지라도 약방, 병원, 장의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연약성을 드러내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균의 침식으로 병들고 사고로 부상을 입고 죽곤 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병도, 부상도, 사망도 당하지 않는 강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성도가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은 것처럼 부활체는 강한 몸인 것입니다.
이렇게 내세 천국에서의 성도의 생활은 질병이나 부상, 혹은 죽음이 없는, 그야말로 건강과 희열과 행복이 넘치는 낙원인 것입니다.
④신령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영과같이 몸이 자유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의 육체는 둔하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문이 닫혔는데도 출입하셨고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시고 떠나기도 한 것처럼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네째... 그러면 이러한 복은 어떤 자가 받을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요11:25-2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고, 요20:29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슬프고 끔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이유는 죽어도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으로 살고 이 복음을 직접 간접으로 전하는 자가 됩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을 통하여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고, 장차 부활하게 됨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을 알고 이러한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복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습문제>>

1.죽음은 왜 찾아 온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므로

2.우리의 구원은 자력구원이 아니라 어떤 구원입니까
.타력구원

3.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은 무엇이 마지막이 아님을 믿는다는 고백입니까
.죽음

4.예수님은 죽은 것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잔다

5.잔다는 말의 뜻은
.무감각 상태로 쉰다는 뜻과
.반드시 깨어난다(부활)는 뜻6.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은 무엇을 믿는다는 고백입니까
.부활

7.부활할 때 선한 일과 악한 일을 한 사람은 각각 어떤 부활을 하게 됩니까
.선한일-생명의 부활
.악한일-심판의 부활

8.유대교의 두 교파는
.바리새파(정통보수파)
.사두개파(자유주의 신신학)

9.부활을 믿지 않은 파는 어느파입니까
.사두개파
10.이들이 부활을 어떻게 생각했기 때문에 믿지 않았을까요
.이 세상의 연장인 줄 알았다.
1

1.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을 3번 행하셨는데 무엇입니까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나사로를 살리심
1

2.그러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까
.썩지 않을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강한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1

3.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기 때문에 천국에는 무엇이 없겠습니까
.부패, 공해
1

4.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무엇이 필요없습니까
.해가 필요없고, 밤이 없다.
1

5.강한 몸으로 다시 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무엇이 없는가
.병,사망,고통 등이 없고
.행복만 있다.
16.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무엇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재를 받지 않음
1

7.그러면 이러한 복은 어떤 자가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
1

8.본과를 배우면서 나의 깨달은 점과 결심을 말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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