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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예배 (계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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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예배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계속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면 참 난 처할 것입니다. 한 시간의 예배도 지루해 하면서 어떻게 영원 히 영원히 예배드리겠습니까? 당신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이번 과(科)에서는 참된 예배가 어떠한 것인지 네 가지로 생각해 보고, 참된 예배의 결 과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참된 예배는 이기심을 버리는 것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예배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을 보십시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 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주께서 천국의 커튼을 살짝 열어서 천상의 예배 광경을 보여 주 시는 내용이 4,5장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구절은 신구약 시대 의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드리는데, 이때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졌다 고 했습니다. 이 면류관은 아마 천국에 이르렀을 때 주께서 상급으로 주신 면류관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랑입니다. 그런데 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이 면류관을 벗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나를 인정해 주신 것조차도 주님께 드리기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나에게서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의 가장 커다란 방해물은 이기심입니다. 여기서 이기심이란 말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기 자신 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 착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든 간에, 예배시에는 참으로 하나님 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의식을 벗어 버리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서 도 자기 생각 하기에 바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심지어 대표 기도 하는 사람조차도 내가 기도하다 실수하면 다 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을 합니다. 예배는 하 나님께 드려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과 초점은 계속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예배답지 못한 것 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출발점은 이기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기심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예배하는 자리에 그냥 서게 되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식을 벗어나기 어 려우니까 먼저 하나님을 묵상하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정말 주님 을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서조차도 하나님께 관심을 갖기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그 끈질긴 이기심을 먼저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 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참된 예배에는 언제나 묵상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예배당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 사모하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이며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 다. 그러나 좋은 설교를 듣고자 하는 생각이 지나쳐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집중하면 그것도 일종의 이기 심입니다. 예배는 문자 그대로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기 도도, 찬양도, 헌금도 모두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진정한 예배는 이기심을 넘어서야 하고, 이기심을 넘어서 기 위해서는 묵상과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이기심을 버리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 다. 참으로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예배를 합당하게 드렸 는가는 그 예배를 통해서 내 생각이 얼마나 주님을 향해서 움직 여 갔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찬양으로 주님을 영 화롭게 했는가? 주님의 보좌 앞에 섰는가? 기도로 주님 앞에 정말 나왔는가? 내 시선이 얼마나 주님께 향할 수 있었는가? 주님을 얼마나 바라볼 수 있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초점입 니다.

 앞 과(科)에서 예배를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에 대한 피조물인 인간의 응답이라고 정의(定義)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은 나에 게 어떤 분이셨는가? 사랑이신 하나님,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 공의로 나를 책망하신 하나님…또 하나님 은 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 지난 주간에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내가 의기 소침했을 때 하나님은 나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서 배신당한 슬픔 가운 데 있을 때 하나님은 그분만이 참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깨우쳐 주셔서 나로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의 삶에서 내게 생생하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내 삶의 자리에 던져 주신 그 놀라운 의미를 생각하면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님이 행 하신 일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고백입니다. 자백 과 고백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른데,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고 하고 주님이 행하신 일을 인정하는 것을 고백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참 자비 로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정말 능력 있으신 분입니다.

예배를 통한 이러한 인정의 고백이 바로 아멘이라는 고백입니 다.

 요한계시록 5장 14절을 보십시오.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왜 네 생물이 아멘을 했습니까? 11,12절을 보면 천천 만만의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상을 한번 해 보십시오. 백오십 명의 찬양대가 찬양을 해도 압도당하는데 그 많은 수의 천사들이 찬양을 하면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천 사들은 음정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찬양의 주제는 예수님의 구속(救贖)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신 그분의 희생의 사건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를 내어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어린양으로서 자기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두 심으로 피를 흘리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과 사랑!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 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12절).

이렇게 천사 찬양대가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속(救贖)을 찬양하자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또 이어서 찬양을 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 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 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 니(13절).

이때 네 생물이 감격으로 아멘 하고 외칩니다. 이것은 우리 를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인정이며 고백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이야기가 끝나면 옳소 하고 박수를 칩니다. 제 가 평양의 봉수 교회에 가서 이 부활절 날에 제가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인 줄 믿 습니다라고 했더니, 봉수 교회 성도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 르지만 옳소 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거 기에 가서 목회하고 싶더군요.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이러한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멘, 아멘 하면서 무 조건 박수 치고 소리 치라는 말은 아닙니다. 참된 예배에는, 주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생각할 때 우러나는 진 정한 감사와 고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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