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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유의 아기 (눅 0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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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바로 눈앞에 왔다. 믿는 사람이건 안믿는 사람이건 이날에 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여러가지 파티도 벌리고 행사도 한다. 선물도 주고 받는다. 보너스도 많이 받고 싶어한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행복한 시간을 갖고 싶어하다. 그것도 좋다. 어떤 방법으로건 행복해 지는 건 좋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려는 것은 그 수준이 아니다.

 이 성탄절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에 확실하게 오셨다는 증거이 다. 하나님이 먼 하늘에서 그냥 인간을 돕고 축복하는게 아니다. 세상 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내려 오신 게 아니다.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다. 그가 왕궁에서 난게 아니다. 그가 부자집에서 난 것도 아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마구간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황제가 신민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자기가 속한 곳에 가서 호적에 등록하라는 것이다.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고향 으로 부리나케 돌아갔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호적하러 베들 레헴으로 달려갔다. 해산날이 되었는데 여관에는 방이 없었다. 아마 돈이라도 많이 있었더라면 구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남의 집 마구간 을 숙소로 빌린 것이다.

 이야기는 본래 여러 백년 전부터 예언된 것이다. 구약의 여기 저기에 서 부분적으로 예언된 것이 모아져서 이루어진다.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기에 천사가 설명해 준다. 목자들이 밤에 양들을 지킬 때 천사들 이 나타나 말해준다. "너희가 기다려오던 구세주가 나셨다."그리고 그 증거까지 말해준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그것이 바로 증거이다.

 이상한 증거이다. 더러운 말구유에 아기가 놓였는데 그것이 증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사로이 보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마구간에서 나고 아기 놓을 침대가 없어서 차마 땅바닥에 놓지 못해 말밥그릇에 놓였을 까!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처럼 한심한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말구유의 아기야말로 구세주의 참된 증거인 것이다.

 이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질고를 짊어진 것이다. 그의 한평 생 어디 인간의 질고를 외면한 것이 있었던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부터 인간들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 받으려함이 아니다. 섬기려하는 것이다. 오! 이 원리를 우리 모두가 깨닫는다고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저 다 주고 섬기려고 한다면!

키엘케골은 성탄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나라에 임금이 있었다.그에 게는 모든게 있었다.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 그것은 바로 아내였다. 그 는 아내를 원했다. 그는 변장을 하고 거리를 자주 다녔다. 혹시 자기 마음에 드는 처녀를 찾을 것 같아서였다. 어느날 그는 가난한 농가를 지나다가 들에서 일하는 처녀를 보았다.그리고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 잡히고 말았다.

 그는 그녀 앞에 왕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면 결혼하는 것은 문 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와 명령을 가지고 결혼하는 것 이다. 그렇게 되면 완비는 얻겠지만 아내는 얻을 수 없다. 그러면 중 매를 통해서 만날 것인가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변장을 하고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거짓의 방법이다.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그는 감탄했다. 나는 농부가 되겠다. 국사는 믿을 사람에게 맡 기고 나는 농부가 되겠다. 그는 품군 농부가 되었다. 농부의 옷을 입 고 음식을 먹었다.완전히 그들중 하나가 되었다. 힘든 일을 하면서 그 아가씨의 사랑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세상에 오 시는 마음이 그것이다. 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 속에 이 마음이 주어졌음을 알아야 할텐데.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자기 입장에서 하는게 아니다.자기 원 하는대로 자기 입장에서 마구 말하고 명령하는게 아니다. 사랑은 같 아지는 것이다.상대방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비판할 자격이 되 어 있지 않다.또한 상대방의 입장이 되기 전에 그들을 이끌어나올 힘 도 없는 것이다. 왕은 이렇게 해서 농부의 딸과 결혼했다. 이것이 그 리스도의 방법이었다.

 성탄은 구원의 시작이었다. 왕이 농부가 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영 원하신 하나님이 유한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인 형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인형이 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일을 하셨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는 사람중에 가장 천한 사 람이 되셨다.

 그뿐이 아니다. 그의 33년은 온통 섬김의 삶이었다.왕이 농부를 섬기 는 것은 차라리 참을 수 있는 일이다.하나님이 자기를 배신할 인간을 섬기는 것, 그리고 영원한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었다. 그는 이간으로 서 보통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모든 삶을 인간으로 극복했다. 죽음까 지 지옥까지 하나님의 진노까지 다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말한다. " 이게 다 너희 것이다."

이 하나님이 우리 속에 태어나야 한다.마굿같이 어디인가 우리 마음 속 아닌가! 나는 깨끗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마굿간이 아니다. 그것은 왕궁이다. 사람들은 왕궁 옆을 배회한다. 화 려한 모습의 사람들 속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 에, 거기 아무도 날 도와줄 사람이 없다. 교만한 마음, 정죄하는 마음 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구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복음의 말씀이다. 거기에 구세주가 담겨 있다. 들여다보라. 거기 아기가 있다.거기 구세주가 있다. 스스로 확 인해 보라. 강보에 싸여 말씀에 누워있는 하나님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가 확실하게 살았다 는 그 사실이 우리에게 증거가 된다. 실제로 그가 우리를 구원했다는 증거이다.

 이제 그의 삶을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 그리고 그가 자기를 통해서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경험한다. 그리고 구원의 능력을 맛 보게 된다. 구원의 경험이 무엇이고 구원의 능력이 무엇인가지금 우 리의 마음이 참으로 평안하고 기쁘다면 우리는 맛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에 의해서 되고 있다면 우리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 다.

 지금 마음 속을 들여다 보라 양심에 깨끗함이 없다면, 불안하다면 걱 정과 근심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건 구원을 맛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남에 대한 미움, 역시 마찬가지이다. 돈 걱정, 미래 걱정, 병 의 고통,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상태이건간에 괴로움에 잡혀 있다면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주는 이것들 에서 해방하신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 이런 근심 걱정이 저혀 없단 말인가병도 없고 실패도 없고 실수도 없단 말인가그렇다면 이미 천국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세상에 있다. 고통과 결핍과 배신 그리고 오해 각 종 아픔으로 붉게 물들어져 있는 곳이 바로 세상이다. 바로 죄와 악의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괴로움들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는 이런 문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문제를 피하려면 죽어야 한다.사람마다 잘 극복하는 문제도 있고 약점도 있다. 잘 못하는 분야 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이루어진게 아니다. 신자도 불신자와 똑같은 세상에 산다. 아니 신자 는 불신자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다. 그래서 각자의 십자가 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곧 능력이다. 이것들을 다 극복하고도 남을 능력이다. 그것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자기의 머리를 잘 쓰거나 재 산이나 권력으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모든 고난에서 자유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유케 하 는것이 바로 그 능력이다. 그것을 사용해보기 전에 아직 우리는 구원 을 맛볼 수 없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바로 성탄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세 상에 오시는 기적으로 그친다면 그래서 우리 밖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그친다면 우리에게 구원은 없다. 그리스도의 성탄이 우리 속에서 일어 나야만 우리에게 구원이 경험된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과 삶이 나를 통해서 실제로 이루어져 가겠는 가이것이 신자의 삶인데.

 중요한 모임에 가기 위해서 마음 속에 입을 옷을 생각한다. 그래서 준비를 다하고 마지막에 옷을 입는다. 옷장에서 꺼내보니 형편없이 구 겨져 있다. 구겨진 옷을 입고 나갈수는 없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다 리미니다.다리미는 구겨진 옷을 펴는 필수적인 기구이다. 사람들이 사 는 동안에는 반드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집가는 색시는 꼭 다리미를 가져간다.

 이 다리미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열이 있어야 한다. 자기 혼자서는 절대로 힘을 쓸 수 없는게 바로 다리미다. 요즘에는 편리한 전기 다리 미를 많이 쓴다. 그러려면 한 쪽 끝이 소켓에 꽃혀야 한다.그렇게 되 면 저절로 뜨거워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다리미라도 전원에 꽃히지 않으면 절대로 힘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끝을 꽃아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지려면 그리스도에게 꽃혀야 한다.

포도나무가 줄기에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 도그리스도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삶이 시작된다. 그것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 보라. 정말로 그 리스도가 내 속에 지금 계신가내가 지금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를 대하고 남을 대하는가

이 질문에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누가 말을 하든간에 무엇이 속상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에 언제 나 계셨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언제나 사랑으로 뜨거웠다.이제 똑같 은 일을 하나님은 내 속에서 하고 싶어하신다. 자.부정하지 말자. 이 말씀을 받아들이자. 하나님은 예수를 마굿간처럼 낮추셨다. 그리고 거 기 탄생하시고 사셨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성탄이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자. 그러면 그리스도처럼 극복할 것이다. 그는 외로웠 다. 그는 가난했다. 그는 연약했고 그는 오해받았다. 그는 모두에게 배신 당했다. 그는 비참하게 너무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속의 하나님으로 구원을 받았다. 지금 우리도 그것을 맛보 아야 한다.

 가난도 역경도 미래도 모두다 같은 방법으로 극복한다. 그리스도가 한 것처럼 나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마굿간 같은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가 그리스도는 잘난 곳 왕궁에는 나지 않으신다. 겸손히 회개하 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에 나신다. 마음에 꺼리낌이 있다면 그리스도는 안계신다.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확실하면 일어나 라. 그리스도로 일어나라.

 이 말을 당위론으로 들으면 안된다. 왜 할 수 있는데 저항하겠는가! 하나님이 도와주시겠다는데 반대할 것인가안된다. 하나님께다 맡기 자.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자. 그리스도처럼 가슴을 덥혀보자. 원 수를 용서하고 자기 모욕하는 사람을 사랑해 보자. 이것이 이상론인 가! 아니,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을 경험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 것이 성탄을 경험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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