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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유에 누인 예수 (눅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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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로서(빌 2:6) 천지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계 19:16). 오늘은 십자가의 도 아홉번째 시간으로 주님께 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왜 구유에 누이게 되셨는지 그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증거하겠습니다.

 1. 짐승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본문을 보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인구조사를 위하여 천하로 다 호 적하라 고 명령하였으므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로마의 통치 하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도 자신의 고향이나 혹은 본적지로 간주되는 곳으로 호적하러 갔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었던 다윗의 집 족속 요셉도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호적하 러 갔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고 있었는데 거기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이 호적하기 위하여 대이동을 하므로 사람이 묵을 수 있는 사관에는 있을 곳 이 없어 요셉과 마리아는 외양간에 들어가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싸서 규유에 뉘었습니다. 구유란 흔히 마굿간에서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두는 통으로서 긴 통나무의 반을 갈라 속을 파낸 나무통을 말합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보통 온돌방이나 침대 위에서 태어나는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짐승의 우리인 외양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셔야 했을까요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는데 알고 보면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하나입니다.

전도서 3:18을 보면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들에게 시험환란이 오면 짐승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조인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생령이었으며(창 2:7)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 나갔기 에 영의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바로 생령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의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원수 마귀 사단의 사주를 받게 되었으며 혼과 육으로만 지음받은 짐승 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하나님 의 형상을 잃고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이나 강도, 인신매매, 마약 등 선한 양심을 잃은 인간의 행위를 보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며 심한 경우에는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영이 없이 혼과 육 으로만 지음받은 짐승은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짐승과 다름이 없을 때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성령체험을 하고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과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생명인 영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배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생명의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을 일구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3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고, 잠언 8:13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악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이미 마음 안에 입력되어 있는 악은 버려나가야 합니다. 또한 그 명령을 지키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마라, 지키라, 버리라' 고 명령하신 대로 행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잃었던 사람의 본분을 되찾고 짐승과 다른 영의 사람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본분을 잃고 짐승과 다를 바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누추한 곳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음을 깨달아 그 사랑과 섭리하심에 감사 해야 하겠습니다.

 2.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한 길을 가신 예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또한 창조주 자체가 되시니 천지만물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0에도 보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태어나시고 또한 가난한 길을 가셨습니다. 때로는 잡수실 것이 없어 굶주리셔야 했고 주무실 곳이 없어서 들에서 주무셔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베푸신 예수님께서 왜 그런 길을 가셔야 했 을까요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길을 가신 것은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요, 또 짐승과 다름이 없는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9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가난의 의미는 주님의 영적 가난이라고 하는데 주님에게 는 영적 가난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인 주님이 어찌 영적 으로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주님은 우리의 육적인 가난을 대속해 주시 기 위해서 가난한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요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이 됩 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우리를 부요케 하는 수많은 축복의 말씀들이 있는데 신명기 28장이나 요한삼서 1절은 그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을 사랑할뿐 아니라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이 임하 여 만사가 형통하고 부요하며 장수하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 6:7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가벼이 여기고 등한히 하고 소홀히 한다는 뜻입니다. 심지 아니하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니 바로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만일 백마지기의 옥토가 있는데 게을렀던가 아니면 종자가 아까웠던가 해서 한마지기에다만 씨를 뿌렸 다고 합시다. 그러면 옥토가 백마지기라고 해서 백마지기의 소출을 거둘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옥토가 많다 할지라도 한마지기밖에 씨를 뿌리지 않았으니 한마지기의 소출밖에는 거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로 우리가 아무 리 믿음이 크다 할지라도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9:6-8을 보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 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하나님 앞에는 반드시 믿음을 따라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나는 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심어요'라고 하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상고 해 보면 없는 중에도 믿음으로 심은 사람은 넘치게 축복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사렙다 과부나, 연보궤에 두렙돈을 넣은 여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대속해 주기 위하여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부요한 자로서 가난한 길을 가셨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며(신 28:1-6) 사람의 본분을 되찾고 열심히 충성하며 믿음으로 심는 자가 되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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