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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옥에서 들리는 소리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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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이 박사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분이라 연일 연야 교회가 교회가 보조의자를 놓을 정도로 꽉꽉 찼습니다. 하루는 “내일 지옥설교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다음 날은 반도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설교는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는 지옥을 알아야 천국을 알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딕슨 목사닙은 “만일 우리가 강단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더 많이 하였더라면 우리 사회에 지옥과 같은 현실이 많이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번에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에서도 얼마나 놀랐는지 교회에서 어느 목사님은 “이제 삼풍바람 그만 타고 조용한 신앙생활로 들어 갑시다.”라고 광고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때 하와이에서 미국 군인들이 사용하는 신음 탐지기를 수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옥과 같은 현장에 여기저기 대고 땅 속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를 탐지해 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옥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지옥에서는 어떤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일까요

1. 고통의 신음 소리
부자는 가난한 자를 외면하며 예수를 영접치 않고 살다가 음부에 갔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낙원으로 갔습니다.
(눅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음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신음소리였습니다. 음부는 불꽃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신음소리였습니다. 음부는 불꽃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중국 하얼빈에 가면 일본군이 운영하던 731부대가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애국 지사들을 데려다가 생체 실험을 하던 곳입니다. 그곳에는 뜨거운 곳에 사람을 두면 몇분만에 죽는가를 실험한 곳이 있습니다. 유리로 창을 내고 사우나탕같은 곳에 사람을 넣습니다. 그리고 유리창을 바라보며 몇 분부터 고통을 시작하는가 몇 분이 지나면 의식을 잃어 버리는가 얼마나 땀을 흘리면 사람이 죽는가 이런 사항을 관찰하는 곳입니다. 그런 생체 실험 대상자를 마루타라 합니다. 마루타들은 고통스러워 하다가 나중에는 죽고 맙니다. 그러나 음부는 죽고 싶어도 도저히 죽을 수 없는 고통만 계속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음부는 고통의 신음소리만 나는 곳입니다. 영화나 텔레비전을 볼때 아무리 불이 크게 난 장면이 나타나도 보는 이는 결코 뜨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닿아있는 불은 견딜수 없이 뜨거운 법입니다. 음부는 고통의 신음소리가 나는 곳입니다. 바로 내 마음이 지금 음부일수가 있습니다.

2. 후회의 신음소리
음부는 후회의 신음소리가 나는 곳입니다. 부자는 후회만 하였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예수를 믿을 걸.”
“이런 세계가 있는 것을 알았으면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줄 걸. 그랬으면 지금 물 한모금을 얻어 마실 수 있을 텐데.”
“내 다섯 형제를 전도할 걸”
부자는 온통 후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후회하며 돌이킬수 있는 것이 있고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나가 허랑방탕하였습니다. 그는 먹을 것이 없이 돼지죽을 먹고 고독 속에서 후회하고 아버지 앞으로 돌아 왔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음부에서 후회하여 보았지만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회개와 후회는 유용한 것이지만 음부에서의 후회와 회개는 이미 돌이킬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입니다.
음부에서는 후회의 신음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침이슬과 같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손바닥만큼 이 땅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약하고 약한 존재입니다. 짧은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콧털 한개를 뽑았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죽었습니다. 어느 TV의 장수무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90노인이 나와서 마이크를 붙들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장수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노인은 “장수의 비결은요....윽.”하더니 중계현장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인생은 언제 무슨일을 당할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언제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후회없이 살아야 합니다.
후회없이 살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떤 수필가는 후회할 것이 없는 일곱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1). 나이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2). 화가 났을 때 쓴 편지를 찢어 버리는 것.
3). 우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먼저 사과하는 것.
4).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
5). 청소년들이 자아를 발견할수있도록 도와 주는 것.
6).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
7). 날마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심판하여 보는 것.
그는 이렇게 일곱가지만 잘하면 후회없는 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탄원의 신음 소리
부자는 음부에서 간절한 탄원의 신음 소리를 소리를 세 번 냈습니다. 1). (눅16:24)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부자는 살았을 때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던 사람입니다. 최고의 음식만 항상 실컷 먹으면서 대문에서 자고 있는 나사로에게는 개에게 주는 빵을 던져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제는 손가락 끝의 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 한컵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 한방울을 요구하였습니다. 비참한 탄식입니다.
2). 불꽃 가운데서 고통스러우니 낙원으로 건너가게하여 달라고 탄식의 신음을 하였습니다.(24) 그러나 낙원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런 소리였습니다.
(눅16:26)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부자가 있는 음부에서 나사로가 있는 낙원까지 건너올 수 없다는 절망의 대답이었습니다. 죽음 후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신음하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3). 자기 형제 다섯명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여 달라는 탄원의 신음을 하였습니다. (눅16: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눅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세상에서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 약 2천만원이나 되는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니 다 일장춘몽이었고 헛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비참한 탄원만 있을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여야 합니다.
4). 전도하여 달라는 소리
부자는 자기의 형제 다섯 명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사로에게 잠깐만 낙원을 벗어나서 자기 집에 가서 전도하게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낙원의 소리는 (눅16:29)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29절)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죽었던 자가 잠깐 나가서 전도하면 믿고 이곳에 오지않게 될것이라고 전도를 절규하는 마음으로 부탁하였습니다.
(눅16:30)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그러나 낙원의 소리는 (눅16: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와서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을 수 있는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지옥에서 온 사람이 간증하면 우리는 믿기가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의 신음소리를 지금 우리는 들을수 없습니다. 사람이 와서 간증하여야만 간증이 아닙니다. 책도 간증입니다. 성경은 더 놀라운 간증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이 지금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무디의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어린 외동딸을 데리고 바다로 낚시질을 갔습니다. 그는 개펄 위에 솟은 바위위에 앉혀 놓고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잡다보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딸생각이 나서 딸이 있던 자리로 가 보았습니다. 이미 바위는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딸은 살려 달라고 아빠를 목타게 부르다가 물 속에 잠기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빠져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이웃과 자녀와 친척과 동료들이 죽고 있을까요
지금도 부자는 음부에서 “이곳에 오지말라. 이곳은 고통스러운 곳이다. 제발 이곳에만은 오지 않게 전도하여 달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오늘 열리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죽음 후에는 음부와 낙원 두 곳에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낙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음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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